나는 누구인가?
현존하는 정체성 對 획득된 정체성
Who Am I ?
Living Identities Vs Acquired Ones

마두 키쉬워(Madhu Kishwar)
번역: 차차/달리/묘루

이번 호와 다음 호에 걸쳐서 연재될 이 글은 인도란 국가적 테두리 안에 존재하는 다중적인 정체성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 어느 것도 자발적으로 가질 수 없는 난민의 위치에 처한 여성에 대하여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앞으로 달딸 번역은 포스트식민주의란 이름으로 통칭되는 현상과 쟁점들 속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가, 민족 정체성과 여성의 관계, 문제점에 관한 글들을 몇 차례에 걸쳐 다룰 예정이다. 아래 글은 이러한 논의를 특히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남아시아 여성들의 현실과 기본적인 생각, 주장들을 비교적 평이하게 소개하고 있어 다음 글들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많은 단면들을 가진, 다층적인 정체성들(identities)의 산물이다.
예를 들면, 내 정체성의 매우 중요한 부분은 젠더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나는 또한 (그 밖의 다른 것들 중에서) 딸이고, 언니 또는 여동생이고, 단과 대학의 선생님이고, 작가이고, 펀자브(Punjab;파키스탄 북동부와 인도 북서부에 걸쳐 있는 지방-역주)사람이고, 힌두 사람이며, 특정 지역 거주민이고, 인도의 국민이다. 대부분의 정체성들(예를 들면, 국적, 종교, 언어에 근거한 것들)은 후천적이거나 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생물학적 태생과 같은 극히 소수의 정체성들만이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다. 태어난 나라, 마을 또는 한 인간이 태어나고 길러진 장소에 근거한 정체성들 역시 고정되어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러한 정체성의 층들을 인정을 받기 위해서 사용하고 때에 따라 그들의 적절한 영역에서의 표현을 찾는다. 그러나, 한 집단이나 개인은 특정한 정체성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데, 카스트(인도의 세습계급; 승려, 무사, 평민, 노예의 4계급이 있음-역주)나 젠더에 근거한 직업을 우선적으로 얻고자 할 때와 같이, 이러한 정체성의 층이 권력이나 기회에 대한 훨씬 탁월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할 때이다. 반대로 만약 그녀 또는 그가 위협받고 억압당하고 있을 때 그것을 지각한다면, 특히 그 정체성이 그 개인의 인간적인, 그리고 경제적, 사회적인 복리에 본질적이라면, 개인은 특정한 근본적인 정체성에 높은 우위를 두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내가 작가로서 내 작품을 자유롭게 출판, 유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검열법을 정부가 실시한다면, 나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검열에 반대하는 싸움에 많은 양의 내 시간과 노력을 쏟을 것이다. 비록 작가들 각자의 정체성과 현실참여에 있어서 공통점이 거의 없을지라도 이러한 투쟁은 무수한 다른 작가들과의 동맹을 필요로 할 것이다.

남부 지역을 여행하면서, 나는 북인도 사람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 곳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이를 장애라고 느꼈다. 이와 달리, 파키스탄에서 온 펀자브 사람과는 문화적으로 더욱 가까움을 느꼈고, 말도 잘 통했다. 심지어 그들이 인도와 긴 대립의 역사를 가진 국가의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국, 특히 서유럽으로 여행할 때만이 인도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정확히 알 수 있었는데, 이는 그곳에서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부딪치게 되는 인종적 편견과 문화적 오만으로 인한 사건들 때문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나는 나의 젠더때문에 차별 받거나 특히 불리함을 느끼는 몇몇 경우에만, 예를 들면,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나 고용시 성차별에 직면할 때와 같은 경우에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젠더 정체성은 조화롭게 공존하는 다수의 겹쳐지고 교차된 정체성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만약 오늘날 너무 많은 여성들이 그녀들의 젠더 정체성에 갇힌 듯이 보인다면, 그것은 사회가 그들의 젠더를 이유로 부과하는 불리한 조건들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모성(motherhood)은 많은 여성들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경험이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현재의 사회적 압력 아래에서는 여성들에게 끔찍한 짐이 되고 있다. 너무나 자주,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젊은 소녀들이 결혼과 출산을 강요받고 있다. 너무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을 언제, 얼마나 낳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 여성들은 이러한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을 점점 증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억압들이 없다면, 여성이 되는 것(womanhood)은 남성이 되는 것(manhood)보다 훨씬 더 풍부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성으로서 직면하는 모든 차별들에서조차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그녀들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여성들은 일생동안 참여하게 되는 수많은 사회적 상황들에 대해 과도한 부담을 갖지 않으며 대단한 융통성과 적응력을 보여준다. 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항상 서로 경합하는 정체성 중에 하나를 고집해야 한다고 느낀다. 따라서, 남성들은 훨씬 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경향이 된다. 동시에 그들 자신을 증명하려는 끊임없는 욕구는 그들의 에고를 상처받기 쉽고 불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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