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올바른 과학] 난자 냉동법의 개발을 보며...


차차 *


   조금 지난 이야기이다. 국내 최초로, 냉동 보관했던 난자로 인공 수정된 아기가 성공적으로 태어났다는 뉴스가 있었다.
   뭐, 정자를 냉동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이 오래된 이야기라, 사람들은 별로 특이할 만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난자라고 달라? 라고. 그래도 내가 이 뉴스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건, "정자보다 5만 배 정도나 큰 난자는 얼릴 경우에 손상될 확률이 크다"는 것을 생각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도 그 기술을 활용해서 좀 잘 살아 볼 수 있나하는 호기심과 함께, 난자를 얼리는 기술로 또 뭘 얼마나 망칠까 하는 두려움이 함께 들었던 것이다.

  기술이란 것이 개발되면, 어떻게 유용한지 과학자들은 열심히 설명한다.
  난자 냉동법 개발은 많은 여성들에게 복음과 같다고 기자들은 말했다.
   "이에 따라 사회활동을 위해 출산을 미루는 여성, 폐경 여성은 물론 항암치료 등으로 난소 기능이 상실된 여성도 임신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난자 냉동법이 여성운동에 큰 도움이라도 줄 것처럼 보인다. 분명 어떤 여성들에게 난자 냉동법의 개발은 긍정적인 의미가 된다. 정말 아이가 갖고 싶은데, 혹은 아이를 갖고 싶어질지도 모르는데.. 난자를 생산할 수 있을 때 난자를 보관해놓는다는 건 꽤나 괜찮은 일일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난자를 따로 보관해놓으면, 지금 당장 아이를 빨리 가져야한다는 등의 소리도 덜 들을 테고... 담배 좀 피우는 거 가지고 아기의 건강 어쩌고 하는 이야기도 덜 들을 테고... 말도 안되게 부여받는 여러 가지 행동제약에서 다소나마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란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그것마저 사라질 테니까) 또 뭐가 좋을까.. 아기를 갖고 싶을 때 불임이 될까봐 막 걱정하는 것도 좀 덜 수 있고... 또 미리 난자를 보관해놓고 불임수술을 하면, 피임하느라 신경쓸 필요도 없고, 원치않는 임신에의 두려움(늘 강간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므로)도 없어질 것이고...

   어려서부터 나를 규정짓던 내 몸의 일부인 난자와 자궁. 이 두가지를 떼어 놓으면 나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나는 자유로워질 것인가.
  여성억압의 뿌리가 생물학적이라고 보는 이들은 생명공학의 발달이 여성해방의 필요조건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여성은 난자은행에 난자를 기증하고, 남성은 정자은행에 정자를 기증하고, 아기는 인공태반에서 자라고, 여성이건 남성이건 관심있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 아이의 요구를 돌보아 주는 것. 그것이 여성이 해방되기 위한 물적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성을 집에 잡아 두어야 할 이유도 없어지고, 생물학적인 가족의 개념도 사라질 것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생식기술의 개발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또다른 시도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여성의 능력을 성적 관심의 대상, 생식 등으로 분해하고 사물화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실상 이러한 기술들의 꾸준한 개발은 여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출산 능력을 가지지 못한 남성들이 어머니의 능력을 제한하고 관리하려는 소망에 의해 추동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보여진다. 그들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러가지 규칙들을 만들어낸다.
  가부장적 법질서 안에서는 법적인 아버지가 꼭 필요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아버지로서의 권한이 정자제공자(생물학적 아버지)에게까지 주어지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적인 아버지를 원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과연 난자제공자에게 어머니로서의 권리를 그만큼 부여하게 될 것인가? 예상컨데, 어머니의 의무를 위해서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권리를 위해서는 무시되기 쉬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생물학적으로 부모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 다른 측면에서 여성에게서 난자를 떼어놓을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는 것은,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떼어놓고 남성의 통제하에 두려는 전략에 중요한 무기로서 작용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찝찝한 마음의 또다른 이유는, 그게 잘 될까하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가 위험덩어리임을 은폐하는, 늘 실수덩어리일 수밖에 없는 과학이 내 몸을 가지고 실험을 한다는데, 어떻게 걱정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난자의 냉동은 여성의 몸에 관련된 기술이다. 이 논의에는 여성이 빠질 수 없다. 나는 여성없이 이 기술의 효과와 미래를 논의하는 것이 우려가 된다. 현재 이러한 생식 기술들을 개발하고 실험하고 적용하고 승인 또는 제재하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남자들이 많다. 또한 돈과 명성에 대한 과학자들의 욕구와 전문가에 대한 맹신적 믿음, 이윤을 추구하는 병원 및 기술연구소 등의 위협까지 생각하면, 이 기술들이 과연 누구를 위하여 이용될 것인가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일례로, 난자 냉동법의 혜택에 대한 이야기 뒤에는, 그 대상이 되는 여성들의 몸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의가 은폐되어 있다. 남성이 정자를 '모으는' 것과 달리 여성의 난자는 기계로 난소에서 '채취'되어야 한다. 특히, 생식기술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시술비가 아주 비싸기 때문에, 한 번 난자를 채취할 때는 많은 양을 채취하는 방법을 쓰게 되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것이 과배란 유도제라는 것이다. 기존에 시험관 아기 시술 때도 임신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난자를 한번에 배출시키도록 불임여성에게 7∼10일간 과배란 유도제를 투여해왔다. 그러나 과배란 유도제를 쓴 여성의 5∼10%는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복수가 차며 △호흡이 곤란한 등의 ‘과배란유도제 증후군’을 겪었다고 한다. 또한 '채취'된 난자는 수정시킨 후에 다시 여성의 자궁 안에 '주입하고' '착상'시켜서 그 안에서 '자라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러한 기술들은 여성의 몸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으면서도 그런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양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는 불임이라는 것이 엄청난 결함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기술들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물론 아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실제 그 기술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사람이 그 기술을 사용해서라도 임신을 하고 싶은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모든 여성이 임신을 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임신을 하더라도 그것이 여성이 일생동안 해야 하는 유일한 일도 아니며,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모든 여성은 임신하고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며,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여성을 아기가 자라기 위한 숙주정도로 생각하는 한, 신생식 기술은 그 위험 속에서 가능성을 뒤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언제 나을까를 결정할 권리와 아이를 갖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 등 완전한 자유를 먼저 가져야 하니까.
    지금까지의 불임치료 연구는 불균등했다. 좀 심하게 말해 산모는 죽지 않을 정도로 고생시키고 아기만 성공적으로 얻어내면 된다는 식의 연구경향 말이다. 먼저 여성의 몸에 미칠 영향과 스트레스 등에 대한 충분하고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기술은 사장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아저씨들이 훌륭한 기술이라고 떠들어댄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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