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화면의 꽃은 새움터의 전업센터에서 일하는 언니들의 꽃이다. 결코 쉽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들과 하루를 함께 하면서 느끼는 것은 그 꽃으로 둘러 싸인 듯한 묘한 아늑함과 편안함이었다.



차차, 완두, 야옹

어느 봄날 아침에 차차, 완두, 야옹이는 버스를 타고 동두천의 한적한 거리에 내렸다. 기지촌이라 불리는 이곳에 있는 '새움터'의 언니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기지촌 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TV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선정적인 화면들을? 아니면 잔혹한 살인사건으로 얼룩진 뉴스를? 차차에게도 기지촌은 (안타깝게도)생소한 장소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애써 지워온 것일까?
기지촌은 45년 우리나라에 미군이 주둔한 이래 미군을 상대로 하는 매춘과 상업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지역이다. 이곳에는 미군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사회적 편견과 많은 어려움들이 감추어져있다. 이곳에 자리잡고 있는 '새움터'는 기지촌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삶을 살고있는 여성들과 아동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1일 기활(기지촌활동)을 하고 인터뷰를 하기로 한다. 이것으로 이곳, 그리고 이곳의 사람들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절대로! 당연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한걸음이 생소함을 넘어 조금이나마 그곳에 다가가게 해줄까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대답해주신 분들은 새움터에서 활동하고 계신 간사 주영언니, 시로언니이다.(감사해요!)


* 새움터는 언제 만들어졌어요?
- 동두천 두레방부터하면 10년 정도 되었죠. '두레방'은 의정부에 있었고, 이 자리는 두레방 동두천 지부처럼 있었던 거에요. 새움터는 96년 11월, 두레방에서 일하던 실무 자들과 자원활동가들이 힘을 모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사무실 자리에서 전업 프로그램과 공부방, 24시간 탁아, 사무 업무를 진행했었구요, 1998년 여성발전기금과 시민운동지원기금의 지원을 받아(물론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새로 직업재활센타와 아동센타를 분리하게 되었어요.)

* 새움터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 이곳에는 직업재활센터(전업(轉業)센터), 아동센터, 상담실이 있구요, 기본적인 사무업무와 회지발간, 대외사업 등을 하는 사무실이 있어요.

* 직업재활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 직업재활센터는 탈매춘과 전업(轉業)을 돕는 곳입니다. 기술교육과 종이꽃, 허브, 포프리(향기나는 주머니) 등을 만드는 일을 해요. 기술교육으로 자격증을 취득하신 분이 2분 계세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재정이 좋지 않아 교대로 2명씩 자격증을 얻을 예정이에요. 시작한 지 1년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 다른 직업을 얻고 나가신 분은 없지만, 생활이 어려우셨는데 전세금을 마련해서 나가신 분도 계시고 그래요. 꽃과 허브는 기활오는 학생들이 문화제 같은 것을 할 때 가서 팔고 그러지만, 사실 수익성이 많지는 않죠.

* 예. 그런데 사업 아이템을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나요?
- 처음엔 허브를 직접판매하기도 했고, 우유팩재활용 같은 일을 하기도 했어요. 아이템을 정할때 사실, 수익성보다는 특별한 기술이 없이도 스스로의 손으로 무언가를 키우고 만들면서 피해의식이나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고 자기 존중감을 찾을 수 있기 위한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어요. 아이템은 계속 변했었고, 지금도 어떤 아이템이 좋을까 고민중이에요.

[단속으로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려는(과연 정말 해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부의 방식과는 달리 전업센터는 탈매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완두와 차차는 인터뷰 후에 전업센터인 꽃가게에 갔다. 언니들과 종이꽃을 만들면서 보낸 오후. 그 오후를 조금 더 보고 싶다면, 여기('꽃가게에 가기')를 누르세요.]

* 아동센터에는 어떤 친구들이 오나요?
- 기지촌 문제 중 하나가 혼혈아동에 대한 편견의 문제이죠. 일단 기지촌의 폭력적인 환경이 유해해서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데, 혼혈아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들 때문에 ( 부모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아이에게 이전되어서) 이곳을 벗어나기는 매우 힘든 상황 입니다. 중퇴하는 학생도 많구요. 그래서 등록금이 상당하더라도 외국인학교에 보내 는 분도 계세요.
아동센터에는 혼혈아동과 실직가정, 모자가정의 아동들이 오고 있어요. 예전에 운영 되던 놀이방은 닫은 상태이고 초등학생 대상으로 매일 공부방 프로그램이 있어요. 초 등학생들은 현재 6-7명정도 되구요, 선생님은 공공근로로 1분이 오시고 자활선생님들 이 오세요. 자활선생님은 대학생들이 많아 방학중에는 그래도 좀 오는데 학기 중엔 적 어요.
중고등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주고 있고, 현재 대학졸업생 1명, 유학준비하는 친구까지 해서 새움터에서 지원하고 있는 아동은 모두 약 35명 가량 됩니다. 그리고 학부모상 담도 합니다. 시작한지 3년정도 되어서 어느정도 기반은 마련되었다고 볼 수도 있어요 . 중고등학생의 경우 비정기적인 상담과 장학금 지급외에는 거의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욕심이 나는 부분 중에서 하나가 청소년기 혼혈아동에 대한 상담 인데 여건상 잘 안되네요.

[야옹은 아동센터에서 공부방 1일 교사를 했다. 아이들의 "또 와요?"라는 질문을 너무나 많이 들었단다. 공부방에서는 아동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성숙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

* 상담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 주로 집단상담을 하는데요, 매일 1시에 공동식사프로그램이 있어요.
정기적으로 오시는 분들은 20여분 되시는데, 이곳 사무실에 오셔서 함께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죠. 서로의 모습을 보며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성을 기르는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활온 학생들과도 많이 어색해하셨는데, 지금은 많이 편하게 대하게 되셨어요.

[우리도 이날, 언니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넉넉한 웃음으로, 와서 밥먹으라는 한마디에 우리들은 벌써 편안해졌다. 서로의 안부며, 누구네 집 걱정이며, 반찬얘기며, 그렇게 즐거운 수다들이 오고간다. 언니들과 같이 있다보니 조금만 먹겠다고 덜어놓은 밥을 다시 담아 먹는 부끄러운 행동까지 저지르고 말았다.(-.-)(사실 밥이 너무 맛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

* 상담실에서는 주로 어떤 일들로 상담하시나요?
- 기본상담으로 직업재활센터의 여성 대상으로 탈매춘 및 직업 상담, 생계비 지원과 같은 재정상담, 건강, 의료 지원, 외롭고 어려운 노인분들에 대한 상담 등을 해요. 특히 법률적인 부분에 관한 상담으로는 포주 등과 얽힌 빚에 관련된 문제, 호적정리문 제(국가에 등록해야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이 그래도 있으므로), 폭행, 살인사건 등에 관한 민사청구, 범인 검거와 형사 처벌을 위한 활동 등이 있어요.

* 운영은 어떻게 하세요?
- '실업극복국민운동'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서 기금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밖에 공동모금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후원금인데, 사실 인건비, 아 이들 교육비, 허브 가게 운영 등을 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죠. 소액개인지원자들이 많 이 확보되어야 해요. 국가보조금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습니다. 정부에서도 주려고 하지 않았고 저희도 받으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 단지 실태조사와 같은 일부 프로젝 트에 대해서만 공모를 통해 적은 액수의 기금을 받은 적은 있습니다. 정부에서 주는 기금은 어느정도 선을 그으려고 하고 있어요. 미군 문제와 관련된 기지촌 운동의 특성 상 정부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 여기 상근자는 몇 분 되시죠?
- 6명이 일하고 있는데, 새움터대표는 외근이 많구요, 2분은 반상근이구요. 실제로 많다고 볼 수 없죠. 1사람이 문어발식(?)으로 센터운영을 하고 있어요.(웃음)

* 부대는 이 지역의 얼마나 차지하고 있어요?
- 훈련장까지 하면 동두천시의 반정도 차지해요. 골프장, 수영장, 바베큐 파 티하는 곳까지 있답니다.

* 이곳 동두천이 '관광특구'라면서요?(거리에는 관광특구지정 축하 플래카드와 만국기 등이 걸려있었다)
- 기가 막히죠. 사실 동두천이 관광특구인 의미가 뭐겠어요? 관광하면 꼭 성매매와 연 계되어서 성산업을 조장하는 측면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관광특구로 지정되려면 방문 외국인이 1년에 10만이 넘어야되는데, 여기에서 외국인 에는 장기체류자나 군인은 제외되거든요.

그러니까 동두천은 해당이 될 수가 없죠. 그 래서 관광특구 지정에 로비의혹이 제기되고 있어요. 여기 도의원으로 김모씨는 한국특 수관광협회장인데, 이 사람이 예전 포주에요. 지역에서 권력행사하는 유지들은 대부분 클럽 포주죠. 그래서 지역내에서 집회 한번 하기도 어려워요. 지금 CAMP(Coalition A gainst Militarism and Prostitution, 군사주의와 매매춘에 반대하는 여성주의자 연대 )모임을 하고 기지촌에 대한 담론을 구성하려고 하고 있어요.


[ 기지촌 여성들의 죽음은, 잔혹함으로 인해 사회에 알려진 92년 윤금이씨 사건을 시작으로 조금씩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전과 이후에도 알려지지 않은 윤금이는 많다. 지난해 신차금씨, 이정숙씨사건에 이어 올해에도 이태원 미군전용클럽 살인사건, 서정만씨 사건 등이 일어났다. 이 사건들의 진행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 얼마전 의정부에서 있었던 서정만씨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 수사단계인데요,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고, 수사권을 미국이 확보하고 한국측 수사는 차단되고 있는 상태에요. 미군측에 압력을 가할 방법을 찾고 있고, 장례를 준비하면서 공론화하는 과정에 있어요. 인근주민의 증언을 얻기가 힘든데, 지역의 경제적인 타격을 우려하거나 자랑이 아니니 덮어두자는 식의 생각때문이에요.

* 이정숙씨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요?(이정숙씨는 기지촌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오시다가, 97년부터 새움터의 직업재활센타에 근무하시고 계시던 분이다.)
- 수사가 종료되어 법률적으로는 힘든 상태에요. 심증으로 범죄가능성이 많았는데, 증거가 확실치않아 어려움 속에서 중단이 되었어요. 신차금씨 사건, 이태원 사건, 이번의 서정만씨 사건까지 알려진 4건을 함께 문제제기하고 정확한 처리를 요구하려고 합니다. 특히 한미행정협정에는 기지촌여성, 혼혈아동 등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어요. 기존 한미행협 개정운동에서 언급되지도 못했던 부분인데, 이부분들에 대해 개정요구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법적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분들이 느끼는 좌절감같은 것이 더 크죠. 일단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다른 단체와의 연대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 여연의 회원단체로 있구요, 두레방과도 사안별로 연대하고, '매매춘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인권단체들, 그리고 1일기활오는 학생들 등 대학생들과 연대합니다.

* 얼마전 참세상 플라자에서 민족주의에 관한 논쟁이 있었잖아요. 민족운동이나 반미운동과 연대하는 중에 어려움이 많으실 것 같아요.
- 사실 기지촌 문제가 '민족주의'나 '여성'이라는 이름 어느것 하나로 환원할 수 없는 것이에요. 이번 플라자에서의 논쟁처럼 '기지촌 여성문제'가 중심 화두로 논의된 적조차 없었어요. 주로 주한미군철거논리의 도구로 생각되어 왔죠. '우리는 순결한 민족이다, 강간은 너희 나라에 가서 해라'식의 논리에요. 또한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달리 이 문제가 사람들에게 잘 수용되지 않는 것은 '자발성'문제인데, 강제적으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원해서 하는 것이라고 여성들을 비난하죠.

*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이 기지촌 문제에 대해 많이 개입해오지 못한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 '여성'의 범주가 고민의 유효한 틀이지만, 기지촌문제는 여성운동 안에서도 활동면에서 많이 배제되고 주변화되어 왔어요. 성매매나 기지촌 문제는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면이 있어왔죠. 하지만, 이 여성들을 특별한 피해자로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폭력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신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달딸에서는, 기지촌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사실 많이 어려웠어요. 어떤 면에서는 혜택을 받은 교육받은 우리들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했구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을 차근차근 풀어야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 인터뷰를 기획하게 되었는데요, 기지촌여성출신 운동가인 김연자씨 등과는 달리, 대학졸업하시고 여성운동을 하시는 분으로서 활동하시면서 이런 부분의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 예. 사실 피해자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쉽게 대상화될 수 있다는 생각 이 들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말걸기'라는 생각을 합니다. 언니들이 가지고 있 는 상처나 억압들을 고통스럽겠지만 스스로 바라보고 풀어갈 수 있도록 말을 건네는거 죠. 자신의 시선이나 목소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타자화시키고 가 부장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 큰 상처가 되거든요. 사실 저희가 상담 을 하고 있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내담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상담자 가 내담자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문제 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을 걸고, 대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들의 말이 이야기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마음대로의 편집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는 거죠. 앞으로 회원들 이 직접 쓴 성명서도 나갈 예정입니다.

* 기지촌 문제를 풀어나갈 제도적인 측면의 과제에는 한미행정협정개정 외에 어떤 것이 더 있을까요?
- 먼저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쌍벌조항이 있는데, 이를 폐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조항은 매춘여성을 범죄자로 규정해서 이들이 받고 있는 착취, 폭력에 대해 전혀 보호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요. 물론 매춘을 직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만, 매춘여성이 범죄자로 규정되는 것에는 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관광특구 지정문제가 있고, 성병검진문제가 있는데, 과거에 행해졌던 것처럼 통제수단으로 작용하는 것에는 물론 반대하구요.(과거 깨끗한 성적 도구를 제공해야 한다는 식으로 성병검진을 행하여 여성들을 통제하고 상품화했다) 여성들이 자율적으로 민간단체를 통해서 검사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야 하고, 정보제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유명무실한 상황이에요. 그리고 사회복지관련법으로 쉼터 등이 만들어지고 보호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포주들과의 채무관계를 해소해줄 방안이 필요합니다. 이 채무관계는 불법이라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실제 불법이라고 증명하기 어려워 맞고소 사태등이 있고 이를 집행하는 판사 등의 인식도 문제가 되요.

[암담한 현실에 조금 가라앉은 우리는, 여기서 잠시 딱딱한 인터뷰를 조금 벗어나기 위해 인터뷰를 성실히 해주고 있는 주영언니와 시로언니에 대한 개인적 질문을 했다.]

* 주영언니는 어떻게 여기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주영언니: 학생운동의 활동성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터에 이곳 기지촌이 미군문제 등 가장 소외된 곳이라는 생각을 했구요. 전여대협에서 기활을 간다고 붙인 포스터를 보고 가고 싶었는데, 남성은 안 된다고 해서 못갔어요.(어머나..) 그래서 기 활 다녀온 친구에게 부탁해서 오게 되었죠. 이후로 자활을 하면서 계속 고민해오다가, 재작년말부터 상근하고 있어요.


주영언니
(그냥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 시로언니는요?
시로언니: 이곳 활동하시는 분들이 자활하면서 많이 시작하셨어요. 7년차도 계시고. 저는 지금 1년차입니다만, 대학때(98년, 99년) 기활을 처음 와서 경험했고, 이곳 언니들하고 관계가 큰 동기가 되었어요. 언니들과 편안했고, 믿음이 형성되는 것이 신기했고, 애정관계가 돈독하다보니, 새움터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활동하면서 특히 느끼시는 점은 어떤 것이에요?
주영언니: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실제 이야기 나누고 만나면서 느끼는 것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 주위에서의 반응이나 활동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세요?
시로언니: 일단 집이 부산이라 여기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집이 멀다는 점이 어렵죠. 집에서는 단체의 성격 등을 잘 모르시고, 밖으로 유명한 것도 아니니까 불안해하세요. 결혼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동감!)
시로언니: 얼마전에 결혼한 한 언니집에 갔었는데요. 사람들이 무슨일하냐고 해서 설명했더니, "좋은 일하네"라고 해요. 그러더니 또, "근데, 오래 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반응이 그래요. 다른 사회운동들도 그렇긴 하지만, 특히 기지촌 운동에 대한 선입견이 많아서 (특히나)처녀 몸으로 험한 일을 한다고 걱정들을 해요. 베푸는 입장으로 많이들 생각하는데, 저는 정말 그런 생각한 적이 없어요. 스스로 배우고 있고, 이곳에서 운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하면 죄송스럽고 그렇죠.

* 동두천 지역이 별다른 곳이라고 어떤 테두리를 만들어 생각해온 것 같은데, 아까 오면서 보니까, 그냥 중소도시의 한적한 거리 같았어요.
시로언니: 저도 처음에 여기 새벽에 터미널을 도착했을 때 무서웠어요. 영화 장면이나 친구들 이야기도 떠오르고, 도시자체에 대한 기운도 좀 있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기운부터 다른 것 같아요.(전 좀 그런 걸 믿거든요) 음기가 센 곳이라는 말도 있는데, 언니들 기도세고. 지금 기싸움에서 조금 이긴 것 같다고 한답니다. 사실 이 지역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알려져야 왜곡되게 나가고 그러잖아요. 살인사건 등 뉴스에 나가니까, 선입견이 많이 생기죠.

[밤 9시가 넘어서 우리는 주영언니와 함께 이 지역을 한번 돌아보았다. 한적하던 낮과는 다르게 어둠이 내린 거리는 불빛으로 가득 찼다. 클럽들과 옷가게가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새움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신차금씨가 살았던 집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에는 삼삼오오로 걷고 있는 미군들과 꽃을 든 할머니, 헌병들이 보였다.]

* 나이든 할머니들이 거리에 나와 계시네요.
- 나이가 들어 업소에 고용되지 못하고 거리에서 매춘을 하거나, 꽃을 파는 여성들을 '히빠리'라고 하는데, 이분들은 폭력에 더욱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죠. 대책이 전무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심해요.

* 현재 기지촌에는 외국여성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 20대여성의 경우는 한국여성보다 필리핀이나 러시아에서 온 여성들이 더 많습니다. 30-40대나 그 이상은 한국여성이 더 많구요. 국내에는 30여개의 알선업체가 있다고 합니다. 이 여성들은 가수나 댄서 등의 서비스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들어오는데, 불법체류자라서 도망나오면 법적 보호자체가 불가능해요. 기지촌 외국인여성에 관한 단체도 없는 상황이구요. 송탄쪽은 이런 일이 더 심합니다.
도의원인 김**라는 사람은 이것에 대해, 싸게 수입해서 관광수입도 올리고 우리나라 여성이 아닌 다른 나라 여성으로 내국인 남성들의 수요를 만족시킨다고 애국적인 활동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어이가 없어요.

기지촌은 성매매문제, 성폭력의 문제와 더불어 인종, 민족, 지역, 계급, 군사주의 등에 관한 여러가지 모순들이 얽혀있는 공간이다. 이중적인 성규범 등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편견들이 이 지역의 아픔을 만들고 있고, 우리들의 비난과 무관심이 이 고리를 끊지 못하게 하고 있다.
덩치큰 미국인남자들이 여럿 지나다녀 일종의 위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는, 거리를 마저 돌고 나서 차를 얻어타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차차는, 늘 타고다니던 지하철이 이상하게도 생소하다고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내 손에 들려있는 꽃가게에서 사온 종이꽃 바구니가 언니들이 있는 곳을 계속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 아닐까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어려움들과 싸우는 언니들이 있다는 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내가 선 공간은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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