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적인 일들

투덜이


흉악 연쇄 살인의 범인이 잡혔다면, 우리는 범인의 얼굴로 어떤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가. 아마도 수염을 며칠 깍지 않아 거무튀튀한 입주변에 더벅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람을 떠올릴 게 가장 흔하다. 여기까지 상상한 후에 누군가가 멋적은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귀띰해준다면? "근데 범인이 여자래." 그럼 상상의 방향을 돌린다. 아마도 사람들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여성 살인범의 이미지란, 현실세계에서보다는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검은 썬글라스를 끼고, 훤칠한 키에 본드걸 같은 인상을 지닌 세련된 연쇄 살인범을 떠올릴 것 같다. 그리곤 아, 뭔가 사연이 있나보다 할 걸… 다시 누군가가 실수를 정정해주자. "아줌마래." 아하! 그럼 범인의 인상은 아마도 남편의 폭력에 반쯤 찌든, 철지난 파마머리에 고무줄 바지를 입은 달동네 욕쟁이 아줌마 정도일거라고, 생각한다.

아줌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사람들 중 어느 소수는 자신의 어머니는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어머니는 아줌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어떤 소수는 자신의 아내는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아내는 아줌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어떤 소수는 결혼하지 않아서 자신은 아줌마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뺀 더 많은 다수의 사람들은 그녀는 아줌마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아줌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다수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아줌마라고 불리우는, 그리고 아줌마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던 한 여인이 바로 연쇄 살인의 범인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떤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직감적인 반응일 수 있다. "범인이 아줌마래."라는 말에 말이다.

그 아줌마는 남자만 일곱을 죽였단다.

그녀는 처녀였다. 결혼은 안해서 처녀가 아니라, 섹스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처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포르노영화 광이었다. 그녀가 살고 있던 동네의 비디오 가게 알바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 아줌마요? 말도 마요. 매일같이 와서는 신프로하고 일반프로 있는데서 한 참 어슬렁거리다가, 결국은 빨간줄 비됴만 빌려간다니까요. 그래도 안목은 있어요. 어리버리한 건 절대 안빌린다니까요. 사실 나도 저것들 언뜻 봐선 어느게 재밌고 그런지 하나도 모르는데, 그 아줌마가 빌렸던 걸로 보면 확실하다니까요. 뭔가 그쪽일에 종사하고 있는 아줌마 아닐까했죠, 뭐. 모니터요원이었을 것 같아요. 하하하"

남자와는 한 번도 섹스를 해본 적이 없지만, 거의 매일 밤 그녀는 허공과 섹스를 했다. 허공과 섹스를 했다는 말은 말이 안될테지만, 그녀의 경우는 정말 그랬다. 허공과 섹스를 했다는 표현에 부조리를 느낄 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다른 식으로 표현해보자. 그녀는 매일 밤 온 몸 가득 흔들렸다. 아니 그녀 스스로 흔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혼자 몸을 흔드는게 섹스냐고 반문한다면, 뭔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자. 그녀는 매일 밤 누워서 그것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찾아와서 그녀의 온 몸을 꼼짝 못하게 해 주기를 기다렸다. 사실 기대에 차서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두려움에 떨며 기다렸다. 아니면 그녀는 매일 밤 신음소리를 냈다. 헉, 또는 으음… 또는 아아 뭐 이런 소리들 말이다. 이제 아마 좀 믿음이 갈 것이다. 그녀가 섹스를 했다는 것, 그런데 누구와? 허공과 했다고 위에는 썼지만…다시 말해야 겠다. 그녀는 매일 밤 가위에 눌렸다고, 솔직히.

그녀의 얼굴은 못생겼다. 귀여운 못생긴 형이라기 보다는 얄미운 못생긴 형이다. 그녀의 성격은 못됐다. 상황봐서 못된 형이라기 보다는 똑똑하지도 못하면서 못된 형이다. 예를 들어 청소하기 싫을 때 대충 슬적슬적 시간만 때우면서 농땡이까기 보다는 아예 가방들고 친구들앞을 걸어 나가버리는 형이다. 도대체 눈치라는 걸 볼 줄 모르는 형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한 번도 귀여움이라는 걸 받아본 일이 없다.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을 한 번 꼽아보라면, 정말로…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는 공부를 못했다. 공부를 하지도 않았으므로 당연했다. 담임 선생님들은 그녀를 무시해버리거나 싫어했다. 그녀는 말하자면 그림자같은 아이였다. 중학교 때는 그녀는 그림자이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모두의 관심을 벌었다. 그러나 그것은 미움의 관심이었다. 그녀는 공부를 잘했으나, 그것으로 모두에게 거슬림을 받는, 그런, 공부잘하는 아이였다. "쟤가 일등하는 꼴은 정말 못보겠는거 있지. 쟤만 일등안해도 된다면 내가 꼴등해도 좋을 것 같지 뭐야." 라는 말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동급생 남자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동급생 남자 아이 역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찮가지로 그녀를 싫어했다. "너랑 같이 다니면 나까지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쩌라구."라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정확히 20년 후에 그녀는 일곱 명의 남자를 죽이게 된다. 그 말을 듣고 정확히 20 년간을 밤마다 가위에 시달린 후이다.



[ 링크 모음  |  목 차  |  게시판   |  웹마스터   |  과월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