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잘라보기


성은이    

0. 글에 앞서

  저번 호에 영화평 (3호 별칭 "달나라 영화觀")이 없음을 알아차린 정말 고마운 독자께 심심한 사죄의 뜻을 표하면서 시작하지요. 3호의 "우리들의 저녁식사"라는 타이틀의 글이 생각나십니까? 페미니즘을 마케팅 개념으로 전용하여 만든 '발칙한'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빈번한 몰래카메라와 같은 엿보기 시선 때문에 페미니즘 칭호를 붙이기에 문제점이 많았다는 견해를 다소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었지요.

1. "13인치"의 자신감 : 영화 광고

   이번에 이야기할 영화는 <부기 나이트>입니다. 하하! 벌써 감 잡으셨나요? "13인치"가 먼저 떠오르지요? 인치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버젓이 내건 광고 카피는 사람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 환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으리라 장담하고 있죠. 그리고 버스나, 지하철역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포스터에는 거만한 포즈의 남자가 부푼 팬티 바람으로 누워 있습니다.
   그 위의 큰 글씨 "13인치... 엄청나게 큰 영화가 온다!"
이 영화는 우리 나라에서 이미 97년 겨울 영화 잡지들을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일상적인 이해의 영역에서 배제된 포르노 업계를 다룬다는 데 일단 의의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시선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데뷔작인 감독에 기대를 건다....' 등등 찬사 일색인 영화평은 상당히 유혹적이었고 그래서 은근히 기대도 했었지요. '메타' 포르노? 뭐 대강 이 정도를 상상해보면서 말이죠. 그런데, 광고는 포르노 고객의 사행심리를 곧이곧대로 이용했더군요. 평론가가 준 별 네게와 '13인치'의 자극이 최대한의 시너지효과를 주리라고 기대했나 보죠. 하긴 광고의 태생과 본질을 모르는 건 아니니 우선 넘어가죠.

2. 잘라보기-시선들의 향연 : 영화

'포르노 업계를 너무 낭만적으로 그렸다.'
'주인공의 흥망성쇠 스토리가 너무나 진부하게 전개된다.'


   이 영화가 이런 비판을 받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합니다.
영화 줄거리는 '한 포르노 스타의 인생 역정/비참한 말로'로 요약됩니다. 벼락 스타 이야기-연예계의 숨은 파행적 실체 ... 이런 이야기는 널려있습니다. 결국 뻔한 도덕적 진술을 포함한 단조로운 이야기 구조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게다가 영화 안 포르노 제작진-배우간의 관계는 몰인정한 세상에 의해 얻은 상처를 서로 보듬어 가면서 흡사 가족과 같은 끈끈한 유대로 맺어져 있어 성적 착취, 폭행, 인신매매 등으로 얼룩진 포르노계(!)의 현실적 문제를 덮어두고 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인 법. 이 영화는 이야기만으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순간 순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르노 배우 덕 디글러의 데뷔작 첫 촬영 시퀀스 안의 쇼트 구성 및 편집이 좋은 사례지요. 덕이 상대역 엠버와 정사를 벌이기 시작하자, 카메라는 정사 자체, 그것을 보는 스텝들 동향을 교대로 보여주다가 정사를 찍는 카메라 렌즈를 클로즈업하고, '플레쉬 포워드'(? : 플레쉬 백-회상-의 반대로 미래를 앞질러 보여주는 영화 서사의 기법입니다) 하여 프린트된 영화 필름 상영본 안에서의 정사씬을 보여줍니다. 포르노 제작 장면을 보여주는 앞서의 쇼트들이 이야기구조를 이끄는 일차적 시선이 라면, 렌즈 클로즈업을 통해 포르노 찍고 있는 시선 자체를 환기시키고, 그 시선에 의해 완성된 작품을 교차로 보여주는 것은 일차적 시선의 연속성을 깨뜨리는 이질적인 시선입니다.
   포르노 상황에 몰입할 수 없게 하는 이 시선의 조합은 영화가 포르노를 소재로 하면서 어떻게 포르노적인 충동과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 에서 여성들의 능동적인 쾌락 향유라는 설정이 몰래 카메라 시선으로 인해 요란스러운 '볼거리'에 그친 것에 비교하자면 이 영화의 시각적 재현은 이러한 위험에 잘 대처하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벗어나기- '다르게' 보기 라는 의도가 지나쳐 포르노 스러운 모든 것들에 우리가 익숙한 주류 영화의 관습을 일대일로 도입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보자면 영화는 차라리 리얼리즘적 리얼리티를 없애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같습니다. (위의 예를 들자면 우리 나라의 소위 비판적 리얼리즘이나 이탈리아의 네오 리얼리즘 혹은 다른 리얼리티이긴 하지만 다큐멘타리 등등이 있겠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포르노 배우에 동일시가 완전히 되어 착취당하는 포르노 배우들에 연민 혹은 공감을 느끼거나, 포르노 산업의 문제점을 논하거나, 아니면 그들 의 성행위를 보며 즐기는 모든 것이 대체적으로 어색하게 되니까요. 이 모든 어색함의 효과는 극장에서 나타납니다.

3. 생각할 수 있다면 자조하게 된다. : 영화관에서

   영화 속 포르노 감독 잭 호너는 벅찬 비젼에 목소리까지 떨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관객들이 보면서 그냥 싸버리는 영화가 아니라, 끝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거야.' 비록 관객의 심리라기보다는 아랫도리를 기준으로 논하고 있지만 그는 헐리우드 영화가 창출하는 서스펜스를 그 영화의 이상으로 설정해 놓은 듯합니다.
   하지만 포르노는 실질적으로는 잘 구조화된-봉합된 이야기를 파괴하는 장면들의 연속체입니다. (그 표현 형식이 특정 목적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목적이냐고요? 아시면서. 호너가 비판하고 있잖아요.)    포르노 관습을 좇아가면서 1~2 시간에 걸친 영화가 끝날 즈음 '절정'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그의 바램은 사람의 생리를 고려할 때 참으로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영화 만들기 작업을 보면서 그의 바램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지요.
   이런 그의 바램, 그리고 주인공 애디(덕 디글러)의 바램,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다른 배우들의 바램은 모두 헐리우드가 일구어 놓는 "꿈"을 바탕으로 합니다. 스타가 되고, 자기 아이를 돌보고, 오디오상을 하고, 비디오에 대항하여 영화 작업을 계속하고... 인물들의 욕망은 헐리우드 영화 인물의 욕망과 다를 바가 없지요. 그들의 일탈적 성행위가 다를 뿐인데, 이것조차도 일반 영화 관습상의 삭제 혹은 위의 예와 같은 일정한 거리 두기 장치로 희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낭만' 이니 '진부함' 이니 라고 평하는 소리에 찬성할 수는 없습니다.
   아까 말했던 '어색함' 이란 것 때문이죠. 인물들의 헐리우드적 발언과 행위는 모두 관객에 의해 조소당합니다. 영화관에서 그칠 새 없이 튀어나오는 관객들의 실소는 이 영화에 도저히 몰입할 수 없다는 적나라한 표현이죠. 동시에 포르노와 관련한 그들의 선입관을 유추해볼 수 있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3인치를 강조하는 광고에 기꺼이 응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신.
주인공이 내놓은 성기는 빨간 딱지로 가려지고... 마침내 관객의 실소는 실망으로 바뀝니다. ("으윽" 하는 신음소리, "저게 뭐야" 하는 좀더 큰 소리... "에이~" 극장을 나서며 내뱉는 작은 원망 등등 극장이 들끌었지요. 제가 관람할 때만 있었던 일일까요? 젊은이들의 신영화-문화 선두에 있다(?)고 하는 시티 극장 금요일 저녁 7시에---?) 빨간 딱지- 우리 극장판에만 있는 것일까요? (충분히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2시간 32분 원작이 2시간 10분 정도로 삭제된 것만 봐도 그러하죠.) 하여간 실망의 크기는 "13인치의 거대함"에 대해 얼마나 기대를 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거대함에 인생을 걸어 본 한 사람의 일생에 조소를 보내는 것이죠. 평자들은 이 영화가 포르노업자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이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혀 먹혀들지를 않는데 말이죠. 넌센스는 곧이곧대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함의로서라면 모르지만, 이 영화는 아이러니도 블랙 코미디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 특이한 넌센스가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이라고 할때의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잣대에 타격을 가하고 있죠. 무지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행태에 조소하고 있지만, 그 조소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4. 덭붙여 : 영화 표현의 자유와 영화 앞 현실(pro-filmic reality)

   부기 나이트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적 관점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했을 때 자기 자신에게서 떠오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겠죠. 만약에 '모르겠다' 라든가 어디선가 읽은 책의 영미 혹은 프랑스 페미니스트 이론가 개론의 약식 소개글 정도가 단편적으로 떠오른다고 해도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이전에 구축된 어떠한 관점, 더 나쁘게는 수단만을 좇는다면 또 다른 왜곡을 낳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성의 태도는 모두들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 노파심이라고요? 솔직히 제가 이러한 오류에 자주 빠져들기 때문에 하는 소리죠. 여러분이 그러하지 않다면 저만의 문제 고백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이상적이지만,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여성인 자신의 관점, 남의 침해를 받고 있다 혹은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좇는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사는 나날이 아닌 날들보다 훨씬 많으리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는 여성의 관점이 바로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문제 제기를 하도록 하지요.
   "포르노" 는 너무나 의견이 분분한 골치 아픈 쟁점 중의 하나입니다. 특히, 페미니스트들은 이 문제를 놓고 보수니 진보니 하는 구분을 하기도 합니다. 여성 착취의 온상이냐, 성적 구속-억압으로부터의 해소를 꾀하는 사회의 균열부냐 논의에서부터 표현의 자유 문제가 거론되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문제를 논할 때 흔히 있는 이러한 태도나 쟁점 설정의 방향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영화를 찍고 있는 상황은 현실입니다. 이 둘을 분리해서 보는 가 아니면 하나로 묶어서 보는가 이것이 사람들의 태도를 만드는 기본적인 전제이겠지요. 저는 일단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입니다. 포르노는 전적으로 여성을 성노리개로 생각하고 그것을 남성들에 유포시키는 원흉이며 실제로 포르노 여배우들에 대한 성착취가 심한 만큼 상영을 금지해야 한다고 하거나, 또는 포르노가 표현 자유 수호의 이상을 위해서도 금지되어서는 안되며 이것은 차라리 사회의 금기와 억압를 깸으로서 이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을 만든다는 이유로 옹호하는 경우는 모두가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여성 문제-성문제가 하나의 논리 구조를 통해 타당한 해결책을 얻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닫힌 논리, 근거를 가지는 한 쪽의 시선에 불과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요? 우선, 메시지 또는 표현 형식으로서의 영화와 영화 제작시의 실제 현실 문제(pro-filmic reality)를 구분해서 보면 이런 닫힌 구조를 벋어나는 길이 보일 것입니다. 절충주의 논리같지요? 하지만 두 가지 흐름에 대한 우리 행동(말보다 중요한 것임에 모두 동감하겠지요)을 다르게 할 수 있는 유연성을 부여합니다. 만약, 포르노 제작 및 수입, 상영을 전면 금지하고 포르노적이라고 제도적 기준에 의해 판단받은 표현의 부분을 강제로 삭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포르노 영화 제작 중에 실제로 발생하는 배우 들에 대한 가해, 폭력, 어린이-동물(!) 학대 등등의 문제에 대해 항의하고 이를 저지하는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너무 뻔한 일이라고요? 마음이 가는 대로라면 그러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는 仁자들의 말씀이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담론의 장, 논쟁의 장은 이토록 이상적인 유연성을 항시 잃게 마련인 속성으로 인해 이렇게 해서라도 환기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한지 궁금하군요. 사이버 네트워크 안의 포르노에 대한 쟁점은 너무나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위와 같이 닫힌 논리 안에서 스스로 모순을 만들어가며 핏대 세워 목소리만 높이는(혹은 더럽게 하는) 소리들이 난무합니다. 우리의 독자들 중 그런 분은 그다지 많지 않울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건 또하나의 편견, 환상일 뿐일까요?


제게 ,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셔요.
( 게시판 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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