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저녁식사]

   1. 이야기 전에 : 군말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보신 분들은 잠깐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꺼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판에 밖은 수사들, 흥분으로 논리 같은 건 찾기도 전에 튀어나오는 감정적인 발언들 뭐 이런 거라도 좋습니다.
   우선, '재미있다/없다', '좋다/싫다'라고 하고선 더 이상 군말이 필요 없다고 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조금 더 할 말이 있으신 분들, 영화의 내용과 그 표현 형식에 대해 의식적으로 인식하는 분들은 'XX는 어떠했다', 'XXX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 등등 이야기하고 싶어할겁니다. 나아가 이것과 산업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분들은 그 안에서 유용한 여러 가지 흥행요인들을 분석해 낼 것이고, 영화를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 위치한 제도, 장치로서 파악하고 계신 분들은 기존의 이론적 성과물들을 대입시켜서 이래저래 자기의 논지를 꾸려낼 수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가지각색의 반응들은 모두 나름의 의미 영역을 가지고서 <처녀들의 저녁식사>의 의의를 재구성하는데 한 몫 하겠지요.


   그리고 오늘날 영화에 대한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로서는 위의 다양한 반응 모두를 종합하는 다양한 시각과 논리를 복합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거나 버겁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영화를 둘러싼 말들, 담론들이 많아지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선, '동일화'를 주축으로 하여 설명되는 모든 무의식적 관람 형태 자체에 대해멀찍이 떨어져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감정에 푹 젖어서 눈물도 흘려보고 싶고...' 운운하는 감상 태도를 희구하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의도적이고 실로 불편하다고 생각될 지도모르겠으나, 이러한 생각들이 또한 풍요로운 인식의 장을 열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굳이 영화를 가지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필자의 주장입니다.

   2.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둘러싼 이야기들

   그러면 이 영화에 대한 의견을 잠시 들여다 볼까요? PC 통신에 올라 있는 글 중 두 개를 골랐습니다. 어차피 모두 보라고 게시되어 있으니 인용해도 괜찮겠지요.

# ... 남성 중심의 성담론에 대한 혁명을 불러일으킨 . . .
노골적 . . 거침없는 . . 수다를 통한 대사들 . .
특히 . . 男子들을 조소하는 대사를 통해
어떤 통쾌감이 . .
강수연의 모습 또한 . . 심한거 가트면서두 . .

당당하게 . . 새롭게 . . 비춰졌다~! ~ !!
여성이 쾌락에 대해 거론하는거 자체만으로
비정상적으로 여기는 사회속에서 . .
남성중심적 성행위를 평등의 개념으로 그려 낸 점에서 . .
한국 영화의 새 지평을 연거 같다~!
진희경 . . 김여진의 연기가 퇴폐적으로비치지 않았고 . .
반감도 일으키지 않았다~!
연기를 위한 진실된 열정으로만 내게 다가왔다 . .

그러나 . .
세 여자 역시 끊임없이 sex와 남자에 목매단 모습으로 등장.
결국 성에 종속된 존재로 표현한게 넘~~~ 아쉽다 . .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종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 ??


# ... 저는 스크린과 여러 영화 잡지, 그리고 친구들의 권유로 보게 되었는데 보고난 후, 전 너무나 기가막히고 후회스러웠습니다. .

sex로 시작해서 sex로 끝나더군요.
<완전히 포르노를 본 기분을 받았습니다. . >
누가 그러더군요. 이 영화를 보면 여성들이 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리고 기존 우리 남성들의 생각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요. 전 이 영화를 보고 너무나 찝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 한국의 여성들이 다 영화의 세 주인공처럼 그러한 생각을 갖고 산다면

친구들과 영화를 본 후 모두들 스토리 없는 포르노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단지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 선 듯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는군요.
<우스개> : 주인공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출연했더라면 . . . ^^

(후략)

 ----나우누리: <월간 스크린> "내가 쓰는 영화평"에서 발췌

   여러분은 이 의견들 중 어떤 것에 얼마만큼 동의하십니까? 아예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필자의 경우엔 이 영화가 어떤 의도를 상당히 앞세워서 나온영화라는 것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싶군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일정한 담론이 의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위의 글 모두가 영화의 의도성을 인식하고 있고 그것이 보기의 쾌락을 얻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가 의도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그 의도를 기존의 암묵적인 합의들, 관습들을거스르는 데 두었기 때문에 이러한 독해가 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 영화에서 기존의 영화적 양식을 거스르는 특별한 시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등장인물의 말이나 생활 양식이 성적 금기를 살짝 비껴가고 있으며 이것을 보란 듯이 재현해낸 점에서 성적 재현에 대한 영화적 관습을 탈피하고자 한 의도가 보인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고, 이를 영화 홍보에서 매우 강조하면서 그 의도를 분명히 하고자 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www. samsung.co. r/ seg/virgin...)

   "여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남자와 여자의 섹스에 관한 보고서다. 단 한 번의 섹스를 통해서도 여자들을 소유할 수 있다는 남자들의 성 인식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다. "

   마치 페미니스트 선언과도 같은 비장함이 있지요? 허나, 그 다음을 봅시다.

   " 20대의 처녀들이 생각하고 경험했던 섹스에 대한 수다가 넘쳐난다. 자기 삶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세 여자의 삶과 섹스가 낯 뜨겁지만 경쾌하고,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여성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따뜻한 시각이 있다. 그리고 처녀들의 방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혼란스럽군요. 훔쳐보는 재미와 낯 뜨거움이 위의 선언과 공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오늘날 모든 투쟁적인 실제적 운동들의,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선형적 구속이라고 하면서 중첩되고 분산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며 진지함을 아이러니와 패러디가 한 방에 날려보내는 데 있어 죄의식 같은 것은 없는 즐거운 포스트 모던 시대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한 매체라면 그것을 접한 수용자들의 무의식적 욕구들과 사회 의식적인 사고 간에 적절하고도 효율적인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어야 얼마간의 의의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 까요?

   이 영화는 그 안의 여자들이 섹스를 능동적으로 하든, 그것을 여성의 힘으로 인지하는 말을 하든 그것이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 만드는 기존의 관습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므로 다른 의도로 전유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가능성을 은근슬쩍 숨기기만적 행태에서는 벗어나 위의 문구와 같이 이런 가능성을 일종의 전략처럼 노골적으로 표방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바로 이런 노골성이 조금이라도 페미니즘 및 여성, 성 문제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방만함, 경솔함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그 생산자들의 의도만큼이나 텍스트 에서도 다분합니다.

   이 영화는 외설이란 본래 관음증적인 시선과 그 시선에 최대한 봉사하도록 조작되었으면서도 아닌척하는 대상들의 협잡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바, 그 관계에서 풍겨나는 공공연한 은밀함, 내숭, 죄의식 등을 산뜻하게 정리해 내면 '솔직한' 성묘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무차별한 핸드 헬드 촬영과 대역이나 CG 등의 속임수를 쓰지 않은 '유사' 리얼 섹스씬을 고수한다든가 네러티브 구조에 최소한의 극적 장치만을 둠으로써(사람들이 지루해하는 그 에피소드의 나열이 이런 전략 아래 선택된것이지요.) 마치 영화안의 일들이 정리조차 되지 않은 진실인 양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진실을 보는 시선을 한번쯤 고려해 봤어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데, 연이(진희경 분)의 욕실 장면을 보면 몰래 카메라 같은 구도의화면이 나오지요? 이 외에도 아파트 천장에 비스듬히 설치해 놓은 카메라로 찍은 듯한 장면은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당당한 연기는 물론, 관음증적인 시선과 충돌하고있습니다만 무방비 상태인 그들의 몸을 찍어대는 카메라 앞에선 속수무책입니다. 진희경씨의 접힌 뱃살에 대한 뒷소문들, 심지어 그녀가 몇몇 장면들이 계약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고소하고자 했다는 말까지 떠도는데, 이러한 장면은 영화에 빈번히 나오는 물신화된 여성 육체의 미끈함에 대한 대항적인 재현이라는 의미를 갖기보다는 카메라의 윤리에 어긋나는 또 다른 육체의 착취로 볼 수도 있습니다.

  3. 이야기를 마치며

   매우 고전적인 지침이 생각나는군요.
대항적 영화란 그 이미지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생산하는 시선 및 소리의 조직화 양식"에도 혁신적인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말이죠.
理想일 뿐이라고요?
이 영화는 페미니스트 영화가 아니니 그런 식으로 비판하지 말라고요? (그 말도 일리가 있죠.)
   어찌됐든 이 영화의 백미는 그것을 보고 나온 '우리'들이 진짜 저녁식사를 시작하게 될 때 드러납니다. 분명히 거리낌없이 보이기 위한 영화 안에서의 노력들은 우리의 솔직함과 과단성을 도발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찍이서 엿보거나, 엿듣는자 없는 우리들의 저녁식사를 한 번쯤 가져야 하지 않을 까요? 벌써 해 보셨다고요? 좋습니다.
   그 내용을 공공연한 비밀처럼 공유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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