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만화 ::쳇, 좀 못생기면 어때서?                                                달나라딸세포9


쳇, 좀 못생기면 어때서?

신딸기

맘보걸 키쿠 5권 표지 맘보걸 키쿠 - Nakayama Noriko

일본 소녀 만화 키쿠를 보다
섯번째 결혼을 한 엄마와 아버지가 각기 다른 4명의 남매, 누구의 아버지도 아닌 엄마의 남편. 평범한 설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굉장히 특이한 설정도 아니다. 굳이 색안경을 쓰고 보자면, 현대 모계 가정의 모델 정도. 아이들의 양육비며 교육비는, 각각 그 아버지들이 부담하고, 생활비는 엄마가 부담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을 많이 해 봤던 다른 여자들처럼 한이 남아 있거나 비참한 삶은 살았던 흔적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키쿠네 엄마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식으면 헤어진다. 그걸로 만족. 대단히 간편한 삶을 살고 있다. 이 가족에 관한 만화 '고!고! 걸즈'는 딸들의 연애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완벽주의자 큰 언니의 한치의 양보 없는 결혼이야기나 살이 찔수록 예뻐진다는 설정의 셋째의 연애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난 역시 돈 없는 아버지를 둔 덕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녀야 하는 키쿠가 좋다. 뭐니뭐니해도 키쿠의 가장 큰 미덕은 만화의 주인공 답지 않다는 것. 예쁘지도 않고 마음이 여리고 착하지도 않다. 합리적으로 사고할 뿐 아니라 심지어 계산적이기도 하다.(사실 이게 뭐 별거라고.) 연애보다는 자기 일에 더 관심이 많다. 물론 토키와라는 멋지고 귀여운 남자친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무서운 키쿠, 맞고 있는 쪽은 토키와 키쿠는 예쁘지도 않고, 착하지도 않다. 그냥 설정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보통 순정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은 자신이 스스로 예쁘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더라도, 실제로는 엄청 예쁘다. 물론 이것은 독자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훌륭한 설정이다. 단지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갈 때 많은 아픔을 수반한다는 것만 빼면) 키쿠는 정말 못 생기고(진짜 안 예쁘게 그려져 있다) 성격도 나쁘고 착하지도 않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자애 답지 않게'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그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물론 도가 지나칠 정도로 개인주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서든 서슴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절대 안 멋진 포즈로 담배를 피우는 키쿠. 싫으면 싫은 것, 남자 친구가 아니라 하더라도 하고 싶을 때는 하는 것. 약간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절대 내숭떨지 않는 그 의연한 모습! 이것들이 나의 우상 키쿠가 가진 매력들이다.

키쿠의 애정 표현 키쿠는 뭇 소녀들의 수많은 욕망 중에서 연애에 관한 욕망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 - 사랑의 힘은 위대하고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다는, 특히, 대부분의 불이익은 여성 쪽에서 인내할 수 있으며(게다가 바람직하다) 대부분 연애 외에 일상사는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 위에서 만들어진 다른 만화들과는 구별된다. '맘보걸 키쿠' 등이 구별되는 지점은 바로 '현실감',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걸림돌들, 현실에 기초한 상상… 그것들이 아닐까? ( 실제로 이 만화들의 스토리 구성 자체는 밋밋한 편이다. 뭐, 이것도 현실적이라 할 만도 하지. 아, 사소하고도 밋밋한 내 인생이여!)

딴 생각이 자꾸 나는데…
그 연애 이야기라는 것이, 게다가 현실적인 세계에서의 연애 이야기라는 것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누가 봐도 사랑의 작대기가 죽죽 그어지는 그 연애 이야기에서 게다가… 서사성도 없다면…이 잡담 같은 이야기 어떻게 변하는 걸까?
아마도 황미나 이후 '순정만화'의 경향이 노골적인 '연애담'에서 벗어나 역사라든가 개인의 고뇌라든가 가족사라든가 그런 것들을 논하기 전, 바로 김동화와 한승원 커플의 만화, 김숙의 만화 까지만 해도 그저 순정만화의 캐릭터들은 정말 순정적이고 순종적이었다. 겉으로는 왈가닥의 가면을 쓰고는 있어지만, 그 가면은 숨겨진 여성성을 돋보이게 할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에 갑자기 변했나.. 하면 그다지 그렇지도 않았다. 좀더 현실적인 모습을 띠게 되고는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90년대 초에 엄청 잘 나간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 나 그에 버금가는 '늘 푸른 시리즈'에서도 여자 주인공은 쌈 잘하고 돈만 밝히는 인정머리 없는 인간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결정적인 순간에 왕 나약한 여자로 변하거나 '어머니'로 변하고 만다. 후에 몇몇의 카리스마를 가진 여자들이 등장하고 (대표격으로 이빈의 Girl을 들 수 있을까?) 그런 이미지들이 잘 팔린다는 것을 알게 된 잡지사에서는 그런 캐릭터를 장려해 주었지만, 후발 주자인 그녀들의 대부분은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는 '순정적인' 여인네로 돌아가고 마는 신파를 벗어 던지지 못 한다. (T.T) 여중생들 사이에 카리스마의 정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강미정의 '키 작은 해바라기'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 역시 폭력배에 왕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전투 장면 이외의 것, 즉 연애에는 그야 말로 쑥맥인 부끄럼쟁이 소녀가 되어 있기 일쑤인 것이다.(하지만 그녀들의 뺨 옆의 빗금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는 사실 다 아는 것일텐데도 말이지)
그나마 여성용 만화잡지들이 좀 나오기 시작하고 이제 그것이 주류가 되었을 때, 좀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어서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불만 많고 사회성 없는 '사춘기'의 주인공들, 부친살해의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공주들인 '쿨핫'의 동경이와 '신명기'의 타마라,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이빈표 만화의 여주인공들, 비굴의 대명사 Gyo, 졸라 비겁하고 치사한 체리(체리체리고고), 미친년 광년이(야 이노마), 변태소녀 앤(빨강머리앤), 강은영표 폭력소녀 등. 다 좋은데, 아직 연애에서 키쿠만큼 당당하게 행동하는 캐릭터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어디에서든 당당할 수 있는 것, 어느 자리에서건 어떤 사적인 상황에서건 당당할 수 있는 여자애들이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은 연애의 시작이 작품의 결말로 설정되므로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통념상 '연애 중'이라는 거 외부의 장애물이 없다면 지나치게 사적인 부분이라 생각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순정만화에서 연애를 배우고 꿈꾸지만, 더 이상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누구도 그 부분에 대해 감히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그 썰렁하고도 재미없는 이미 시작된 연애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그 연애에서 당당해 질 수 있는 여성 만화 - 순정만화가 아니라 -가 보고 싶다.

사소한 차이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굳이 우리 나라의 소녀용 만화들을 순정만화라 우기고 있는 (여성만화라는 좋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딸기의 모습에 기분이 나빠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만협이 생기면서 '여성만화'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을 때 그 때 '여성 만화'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를 보였거나, 적어도 이전의 순정만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대본소 시절 장르로서의 순정만화에서 벗어나 여성만화라면 그저 이전의 노골적인 연애담을 약간 누그러뜨리는 그 정도 말고, 그 흔해 빠진 눈물을 결정적인 한 순간에 퍼붓는 것 외에도, 무언가 더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닐까? 천편일률적인 캐릭터만 보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역사적 공간적 배경의 변화만 있고 소녀들의 성적 판타지(순정만화라는 거, 사실 기본적으로 여학생들이 성적 판타지에 기원한다는 거 부인은 안 하겠지?)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아닐까?
뭐… 갑자기 마구 회의를 하다 보니 약간 미안해지는 감이 없지 않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재미있는 여성 캐릭터들이(앞에서도 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류라고 할 만한 그 흐름들이 그다지 변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의 위안을 하면서 끝낼까? 뭐랄까.. 가장 재수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이렇게 좀 다른 류의 만화들은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점, 촉망 받는 신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혹은 내세울 수 밖에 없는, 내세우게 만드는) 만화들은 언제나 같은 부류라는 점이다. 그것의 실체는 언제나 출판사의 이익이라는 것이고, 그에 따른 기획상의 검열(적나라한 표현인가 아닌가 보다는 상업적인가 아닌가에 관한)일 것이다. 그 따위 기획에서 탄생하고 편집된 여성용 혹은 소녀용 만화잡지라는 것, 보고 나면 남는 것이라곤 뭐든지 싱겁기만한 3류 놀이동산에서 먹는 반 이상이 녹아버린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씁쓸한 뒷맛. 뭐 그런 것들이 못난이 키쿠를 떠올릴 때마다 자꾸 눈 앞에 아른거려… 잠 못 이루는 봄 밤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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