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면서 아주 약간, 몸을 사린 적이 있다.
'밝히는 년'으로 찍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난 5월 20일, 식품위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 예고 되었을 때 많은 여성단체에서 반대했지만, 제대로 어설프게 겉만 핥고 만 것도 아마, '밝히는 년들'로 찍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 날 입법 예고된 개정안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남성접대부들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술을 따르게 해서는 안 된다." 누가 봐도 기가 막힌 문구다. 입법의 취지 또한 이에 밀리지 않을 만큼 뻔뻔하다. "주부들의 탈선으로 인한 가정파괴를 예방하고 산업 역군들이 호스트 바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호스트 바를 금지한단다. 이런 훌륭한 문장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만들어내고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내뱉는 이 놈들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부과되는 세금을 받아 먹는 바로 그 놈들이다.

 

우리에게 호스트 바를 許하라
- 아방한 미소년들의 세계(에 빠지고 싶어라~^^;;)

신딸기

특별히 밝히는 년은 아니지만, 나는 잘생기고 귀여운 남자들이 좋다. 길을 가다가 잘생긴 남자가 지나가면 눈을 떼질 못 한다. 눈을 못 뗄 뿐만 아니라 입도 벌리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는다. 이쯤이면 특별히 밝히지는 않더라도 밝히기는 밝히는 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근데 나만 그렇지는 않은 거지? 잘생기고 귀엽게 구는 남자애들이 심부름도 해 주고, 밥도 해 주고, 커피도 타 주고 그러면 좋을 거 같아. 잘 빠진 남자애들이 타주는 커피는 훨씬 더 맛있을 거야. 아마 나이가 더 들고 들어서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여전히 남자애들을 좋아하고 있을 지도 몰라. 하지만, 내 앞에선 남자애들을 끈적한 시선으로 아래 위로 훑어보거나 점수를 매기거나 하지는 않아.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엉덩이를 만지지도 않을 거고 커피 심부름도 안 시킬 거야. 남자애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내가 기분 나빴던 만큼 걔네들도 그런 대접 받으면 기분 나쁘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남자 만화, 혹은 소년 만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가물에 콩 나듯이 있거나 있어도 그 캐릭터가 천편일률적이지만 ( 싸가지 없는 년 아니면 착한 년) 순정 만화에는 남자 주인공들도 많고, 가끔 소위,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기도 한다. 그 남자 주인공들은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쿨가이이기도 있고, 어리숙하고 순해빠져서 가부장이 되는 덴 전혀 소질이 없어 보이는 미소년이기도 하다. 쿨가이들은 그렇게 특출 나지는 않은 거 같다. 적당히 쿨한 성격에 적당히 잘생긴.. 뭐 그런 모습은 소년 만화와 큰 차별점은 없다. 단지 여성 독자들을 위해 약간 더 예쁘고 자상한 정도의 성격이니까. 작가의 성향에 따라 가끔 가부장제를 옹호하기도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하기로 한다.

이 글에서는 미소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싶은데, 그건 바로 순정만화에만 있는 미소년의 장점 때문이다. 옛날에 쓴 글에서, 순정만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빨과 발톱이 빠진 사자라고 한 적이 있다. 그에 비해 미소년들은 정말 귀여운 토끼나 다람쥐 같은 존재들이다. 착하고 순진하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 터프한 누나들에게 성희롱도 당하게 되는 미소년들. 그러나 이 미소년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아방한 편이라,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애완동물처럼 누나들을 따른다. 미소년은 다른 남자 주인공들과는 달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 없으며 잦은 클로즈업에 의해 볼거리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백치미를 자랑하는 헐리우드의 금발머리 백인 글래머 미녀들이 영화에서 하는 역할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white에 연재하고 있는 '납골당의 모녀'(강현준)는 미소년을 쫓는 노골적인 여성 독자들의 시선을 화면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예쁘고 귀엽고 발랄하고 백치미를 가진 여자애를 '따 먹으려고' 벼르는 소년 만화의 <이갈리아의 딸들>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멍청한 금발머리 미녀들과 미소년이 다른 점이 있다면, 미소년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러나 그녀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미소년이 남자라서가 아니라, 순정만화의 독자가 여성이기 때문이며,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나머지의 경우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해 있으므로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미소년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지만, 그럴 바엔 여성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여성 운동과 밀접한 동성애 운동을 생각해 보라.)

아방한 미소년이 주인공이 된다면….?
일단 미소년인 주인공은 쿨가이나, 지독한 남성성을 소유한 주인공들 보단 동일화가 쉽다. 예쁜 소년들은 키가 좀 더 큰 것 외엔 여자애들과 다를 바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말괄량이 캐릭터나 혹은 여자애들만 있는 학교에서 남자애 역할을 하게 되는 캐릭터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면에서 말이다. 여기에 좀더 섬세한 묘사까지 곁들인다면, 동일화는 누워서 떡먹기다. 사실,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이긴 하지만, 남자작가가 남자들을 위해 쓴 소설 읽기 연습을 충분히 한 여자애들은 웬만한 남자 주인공을 이해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반대는 아마도 굉장히 어려운 일일 거다. 여성 소설가의 등장, 여성적 글쓰기의 등장에 남성 문학 평론가들의 대부분이 피상적인 평론 밖에 못 하는데 이런 이유가 때문이 아닌가 싶다.

타로이야기( Ai Morinaga)는 아방한 미소년과 그 주위의 미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다. 겉으로는 모범생이고 부티나게 생긴 타로가 가난한 가계를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타로의 엄마는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다. 미소년 아들이 웃음을 팔아 힘겹게 번 돈을 찾아내서는 하늘이 주신 돈이라 생각하고 쓸데없는 데 써버린다. 모성이고 뭐고 아무 것도 없는 여자다. 애들을 8이나 낳아도 우리가 생각하는 모성이라는 것은 아무데도 없다. 그 뿐이 아니다. 20살 때 14살 미소년인 아빠를 꼬드겨서 애기 낳고 살아온 엄마다. 장남에, 소년가장인 타로는 엄마한테서 돈을 지켜야 하고 어린 동생들의 급식비를 해결해야 한다. 이 정도면, 독한 맘 먹고 하는 자수성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타로는 미소년이라 학교도 다니고 공부도 하면서도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미소가 있으니까 말이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밝고 귀여운 미소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순정만화에서 미소년이란 그런 존재다. 그가 아무리 누추하고 궁핍한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밝은 면만 존재하고, 그의 주위에는 희망만이 떠돌며 꽃들이 피어대는 것이다. 그 만화를 보는 여자애들이 그걸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정당하다. 미소년에게는 꼬이는 건 여자애들만은 아니지. 역시 남자애들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도 동정표를 받는 것은 미소년이다. 미소년을 좋아하는 데는 마초 소년, 미소년 가릴 거 없지만, 역시 약간 아방한 미소년이 동정표를 받고 계속 출연할 수 있는 거다. 이것이 순정만화에서 동성애물이 쉽게 나오고 받아들여지는 까닭이 아닌 가 싶다. 학교에서 이성애만이 정상임을 주입받는 여중고생에게 말이다. (이성애자를 위한 포르노에 레즈비언이 등장하여 남성을 즐겁게 해주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못생긴 레즈비언은 절대 등장 못 하잖아? ) 물론 순정만화에 동성애물이 많은 이유는 그런 이유만은 아니다.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남자말고 여자도 시각적 쾌락은 즐기고 싶은 거고 예쁘고 순종적인 남자를 좋아하기도 한다는 거다. 그게 당연하지 않나? 내가 선천적으로 밝히는 년이든, 그런 만화책을 재밌다고 실실대고 보는 년이 유전적 불량품이든 그런 건 상관없다. 현실에서 눈막고 귀막으라고 한대서, 여자들이 남자는 하늘로 보고 삼종지도 따르며 살까? 아니다. 만화책에서라도 우리는 호스트 바를 즐긴다. 어떤 가부장들은 자기들은 절대 대상화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이 소비의 주체 중에 하나가 되면서부터 남성도 대상이, 상품이 되어 왔던 거다. 가끔, 만화방에 앉아 있다 보면 얼굴이 시뻘개져서 만화책을 보고 있는 남자애들을 보게 되는데, 걔들은 알까? 풍만한 가슴, 풍만한 엉덩이에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여자들이 입을 헤~ 벌리고 야룻한 눈길로 자신만을 쳐다보는 그 여자를 탐닉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꾀죄죄한 누나는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진 온화한 미소의 꽃미남을 뚫어져라 보면서 침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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