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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에서의 강간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도피 전략 (1)




신 딸 기


공포 순정만화 잡지가 나왔을 때, 난 놀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만화 잡지를 믿고 창간을 축하하고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공포라는 말과 순정 만화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뿐이다. 공포 순정 만화라는 표제를 단 색다를 지도 모를 잡지의 이름을 보고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를 의식하고 놀란 것은 몇분 후였다. 차라리 내가 놀라지 않을 수 있었던 사실이 더욱 놀라웠다. 왜 나는 놀라지 않았던가?

순정만화라는 시장에서 여학생은 소비의 주체이며 순정만화라는 상품은 여학생과 눈높이를 맞추어야만 팔릴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세상의 전부인 순정만화, 그 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은 주인공들의 삶의 의미이며 따라서 원고에는 여고생의 감수성인 순정이 가득 도배되어야 한다 공포 순정 만화라는 상품이 우리 앞에 등장했을 때, 우리들은 아무도 환호하지도 눈여겨 보지도 질타하지도 않았다. 그냥 무심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그 상품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전혀 독특하다고 여겨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다들 그러하겠지만 난 순정만화라는 말을 들을 때면 여고생들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여고생, 학생이라는 말에 공포라는 말이 이미 숨어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무서운 이야기들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많은 학생들이 죽어나가는 우리들의 학교를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입시공부에 찌들어 버린 황폐한 십대를 보내는 아이들,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받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또 다른 이유들로 친구들을 잃어버리게 하는 학교....그 학교는 공포의 대상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공포라는 단어가 순정만화와 어울린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혹시 그 때문이라면, 남학생들이 보는 만화잡지는 여름철 납량특집이외엔 서글프도록 무서운 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일까? 그 만화들에는 소위 쭉쭉빵빵의 글래머들과 폭력적인 가부장들만 나오는 것일까? 왜, 남학생들의 만화잡지 이름이 공포XX만화라고 쓰기 힘든 것일까?

그건 순전히 여학생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에 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먼저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귀신도 도깨비도 화산도 지진도 외계인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사람들은 학교나 지하철 역 앞에 서 있는 전경들, 조서를 꾸미는 경찰, 조퇴 허락을 받으러 간 내 손을 꼬옥 잡아주시던 선생님들, 관공서의 아저씨들, 그리고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뜨겁게 부딪히는 아저씨들..... 내가 경험한 일 중 가장 무서웠던 일은 지랄탄 연기가 가득한 종로 3가에서 백골에게 쫓기고 있을 때 였던 것 같다. 내가 두려워 했던 것은 백골에게 잡혀서 죽도록 맞고 경찰서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잽싸게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찰서에 끌려간 나는 어떤 취급을 받을까...라는 말로 시작하는 끔찍한 상상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바로 백골 앞에서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칠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밤길에서 낯설고 불친절하고 무례한, 그러나 힘이 아주 센 아저씨에게 어두운 곳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강간은 세상의 어떤 폭력보다도 무섭게 각인 되어 있다. 강간을 당해보지 않은 내가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강간의 두려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좀 우스운 일일 지도 모른다. 어쨌든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보다도 조심해야 할 것은 강간이 틀림없다라고 아직도 믿고 있다. 강간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묶여있는 것은 우리나라 여성의 숙명인지도 모른다.이런 강박관념은 여성들에게 일종의 폭력으로 작용한다. 모든 남성들을 보면서 강간 당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몸을 추스려야 하는 것이 여성의 미덕으로 박혀 있어서, 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기는 커녕, 가슴을 옥죄는 브래지어조차 벗어두고 다니기 민망한 이 나라에선 허벅지가 조금만 보여도, 붉은 옷만 입어도 섹스를 떠올리는 아저씨들의 핀잔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강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아저씨들은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나에겐 그 강박관념 덕인지, 강간 다음으로 무서운 것이 섹스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난 섹스 와 강간을 구별할 수 없었다. 강간은 폭력이 아니라 섹스라고, 원하지 않았지만 정조를 잃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강간을 당한 여성들이 다시 피해를 보는 것일 게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 주로 어른들이 강간을 섹스라고 생각하고(정조를 잃게 됨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주의를 주었다면, 나는 섹스를 강간(이라는 치명적인 폭력)이라 생각하고 무서워했다. 나는 섹스를 무서워했으므로 (사실은 대학교에 다니고 여성운동을 하고 있는 지금도 무서워한다) 섹스를 전제로 하는 듯한 연애를 두려워했다. 우습게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연애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여학생이라면 다들 학창시절에 남자 친구 가지는 것이 소원이었으니까. 그리고 연애도 했다. 나의 남자 친구인 그는 내가 믿을 수 있는 단 한 명의 남자였다. 물론 그는 나의 결벽증에 치를 떨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몸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을 단 한 사람이어야 했으니까. 당연히 나는 남자친구와 손을 잡을 때마다 무서웠다.(그러나 사실 남자 친구와 손잡는 것이 좋았다~) 그 때마다 난 이 녀석의 감정이 갑자기 격해져서 나를 강간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 내가 그 녀석의 손을 좀더 다정다감하게 잡아주면 그 녀석에게 내가 갑자기 끌려 섹스를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건 영화로만 본 섹스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나는 그런 두려움들에 둘러싸여 그 친구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눈빛이 가지는 마력에 대한 환상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순정만화라는 상품이 잘 팔리기 위해선, 아름다운 연애 얘기를 아름답게 그려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던 그 갈등들, 그리고 나의 구시대 친구들이 가지고 있던 그 두려움과 갈등들 즉, 연애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섹스와 강간이라는 두려움은 감추거나 걷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연애에는 그런 두려움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두려움이란 여자 주인공의 노파심으로 판명되는 스릴있지만, 결과에 대해선 자신만만할 수 있는, 언제나 독자와 작가, 여자 주인공이 이길 수 밖에 없는 시뮬레이션 게임. 자신의 인생을 걸지 않아도 되는, 두려움 없는 사랑 게임에 여학생들이 빠져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마치 어릴 적 하던 인형 놀이, 자신이 그 모든 사항을 제어할 수 있으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인형놀이처럼 말이다. 아무런 부담도 없고, 게다가 잘생긴 남자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며 같은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어서 낯설지 않으며, 그러나 예전의 인형놀이 보단 좀더 잘 짜여진 구조를 가지고 있는 순정만화에서 공주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여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키는 경험에 빠지지 않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순정만화에서 단 하나의 위험인 연애-섹스-강간으로 이어지는 독자들의 강박관념을 치유해주거나, 그것을 덮거나, 그 위험을 거세시키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 것은 '캐릭터' 설정일 것이다. 그래서 순정만화엔 꽃미남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수려한 외모와 착한 마음씨, 진실한 성격, 믿을 만한 인간성 등등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그런 그들이 지니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부장의 폭력을 드러낼 지도 모르는 근육질의 몸매다. 어머니와 이모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던 그 우람한 팔뚝도 커다란 발도, 억센 손가락도 그들은 거부한다. 그들은 중성적이라고 일컬어지고는 있지만 사실은 여성스러운 매끈한 몸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걸맞는 얼굴도 가지고 있다. 남성에게 있어 근육이 없다는 것은 이빨과 발톱이 빠진 사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가부장의 권력이 거세된 남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독자들을 그윽한 눈길로 감싸안거나, 혹은 분명한 표정으로 독자들을 향해 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 뿐이다.(그들의 위엄은 그 예쁜 얼굴에만 어려있다는 것은 여성들에겐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여성이 말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여성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여성 독자를 위해 봉사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무조건 여자주인공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충실한 개와 같은 인물이거나 혹은, 강인하고 냉정하며 무례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여성의 사랑과 보살핌 없이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후자의 남성들은 주로 악역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여성(등장인물과 독자)의 무한한 연민과 보살핌 덕에 구원 받는다.

순정 만화라는 특수한 매체를 제외하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어떤 매체도 여성의 쾌락에 관심을 가졌던 적은 없다. 그 관심이 상업적인 의도에서 비롯되었건, 그 줄거리가 조금도 진보적이지 않으며 체제순응적이고 심지어는 가부장제 혹은 봉건적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하더라도 매체로서의 순정만화의 가치마저 깡그리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순정만화는 쾌락을 느끼는 주체로 여성을 전제하고 있어서 여성들을 배려할 줄 아는 그나마 가장 친절한 매체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순정만화의 내용들이 현실과는 다른 환상이라고 욕하기 전에, 그것들이 우리에겐 마약이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들은 우리의 현실부터 보아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도피하는 그들의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들이 그런 식으로 피할 수 밖에 없는 가를 보아야 한다. 우리들을 둘러싼 가부장적 문화, 그 안의 폭력의 메시지, 길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여학생들의 사고와 벗어나고픈 그들이 마음에 대해 말하고 싶다. 마치 그것은 자신을 옭아매는 가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그 합법적인 방법으로의 탈출인 결혼은 역시 자신을 또 다른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관리인으로서의 자리에 묶어두는 것임을 아는 딸들의 갈등과도 비슷한 것일 게다.

  그래서 나는 이후에,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원수연의 <풀하우스>와, 신세대의 감각이라 칭송 받는 지혜안의 <에스할름 이야기> 분석을 통하여, 우리들의 연애관(결혼관)과 순정만화가 취하는 [강간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도피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목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