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딸, 당신의 손녀, 당신의 여동생

이 소 리



  "내가 니들만한 손녀가 있어..."
무정한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가족 관계가 강조될 때가 있다. 좌석에 앉아 계시던 한 할아버지가 당신 앞에 서 있던 두 젊은 아가씨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자고로 여자 목소리가 담 밖으로 넘어가면 안된다고 했어. 어디 여자애들이 남들 앞 에서 그렇게 웃고 떠들어? 니네 애비 에미가 그렇게 가르쳤니?"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그 노인이 호통을 치시기 전까지 두 여자분의 목소리를 들 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분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하철에 쩌렁쩌렁 울리는 노인의 목소리가 너무 컸고 그 내용이 지극히 폭력적이고 모욕적이었 기 때문에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 두 여자분을 위해 뭔가 나서서 말해 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일종의 성폭력이니까. 나는 그래도 명색이 여성운동을 하 는데. 음...하지만...만약 다음 역을 지나갈 때까지 할아버지가 소리를 지르고 계시면 ...그 때 하자.
   그 분의 호통은 다음 역을 지나고 그 다음 역을 지날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지만, 결국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고개를 들어보면 아저씨, 아줌마, 삼촌, 오빠... 치열한 권 력 투쟁의 현장인 동시에, 힘에 의한 위계 서열이 분명한 지하철 안에서 나는 서열 꼴 찌 막내딸인 것이다.
   "이와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누구의 손녀, 딸, 조카, 여동생이기 이전에 당신 과 마찬가지의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는 시민입니다."
   이 간단한 말이 내가 용기가 없어 차마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입 속으로만 중얼거렸던 말이다. 그 때 그 할아버지에게, 그리고 얼마 전 지하철 플랫폼에서 "딸 같아서 그러 는데 왜 그러냐"며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던 술 취한 아저씨에게, "내 여동생들 같으면 가만 안 놔둔다"며 생리 휴가 폐지에 반대하는 여성 토론자들을 몰아세우던 피 씨 통신 게시판의 한 남성 토론자에게, 그리고, 미안하지만, "당신의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보라"는 말로 여학생이 절반이 넘는 토론회장에서 공권력에 의한 성폭 력을 성토했던 인권 운동을 하시는 어떤 남자 분에게도.
   어렸을 때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내가 오빠의 누나가 될 수 없고 아 빠만큼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던 적이 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가족 관계를 이루는 것 같은 한국 사회는 가끔 그런 절망을 느끼게 한다. 가족이라는 메타 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타인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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