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던질 수 있는 자 누구인가? - '장 원씨 사건'에 대한 인터넷 담론 분석 -

이소리



--- '경제와 사회'에 실린글

1. n-1번의 무관심과 n번의 반복

  전 총선연대 대변인이자 녹색연합 사무국장이었던 장 원씨의 여대생 성추행 사건(이하 장 원씨 사건)이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던져준 그 때, 난 솔직히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이 '너무 오래 전 이야기 아니야?' 하고 철지난 유행가 대하듯 시큰둥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대단한 통찰력이 있다고, 인터넷과 각종 매체를 그렇게나 달구었던 장 원씨 사건을 6개월도 채 안된 지금 쉽게 망각하고 마는 사람들에게 '당연하지'라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아마 내 짧은 경험 속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꼽아지는 제 2, 제 3.....제 n의 장 원 사건에 대한 존재감 때문이겠지 한다. 이미 n-1 건이나 되는 그런 류의 사건들을 접했는데, 뭐 한 가지 사건이 더 일어났다고 '어머머'하며 호들갑을 떨게 되지는 않는 것이다. 또한 그만큼 쉽게 잊혀지니까 비슷한 사건이 n번이나 거듭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쉽사리 주욱 연상되는 n건이나 되는 사건의 반복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의가 적어도 n-1번은 미흡하게 끝나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혹은 어지간한 해결 방안으로는 손도 못 댈 정도로 어려운 문제임을 우회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n번째나 거듭되는 동안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는 현실에 화가 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사건에 대한 논의가 '도덕'으로 집중되고 그것도 개인의 사적 도덕 수준에서만 거론되는 것은 더욱 불만스럽다. 요즘 유행하는 광고와 달리,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접근은 2%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아예 2% 이상은 꺼내보지도 못한 것 아닌가?
  '장 원 사건'을 전후로 유사한 별의 별 일들이 많았다. 이른바 386 세대의 선두 주자들이 5.18 광주 묘역을 참배한 뒤 여자 접대부가 있는 공짜 술자리를 말 그대로 대접 받고자했던 사건, 모 중견 시인이 사석에서 후배 여자시인을 건방지다고 때린 일, 어떤 진보적인 출판사에서 일어난 성추행 사건 등등. 이런 일련의 사건이 폭로(?)되는 제일선에 인터넷이란 장(field)이 있었으며,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과 토론들이 각종 NGO의 사이버 게시판에서 '가열차게' 진행되었다. 인터넷 보급률 세계 15위의 위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글에서는 장 원 사건에 대한 인터넷상의 논의들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내 개인의 경험에 비추어 이것이 얼마나 상투적이고 일방적인 결론으로 치달았는가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장원 사건에 대한 온라인 상의 논의는 ― 사실 오프라인도 크게 다른 양상의 논의는 아니었다 ― 실망, 욕설, 시민단체 흠집내기, 진지한 토론 등등 그 모습이 다양했지만, 결국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요한 복음의 한 구절로 모아진다고 생각한다.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 누구인가'

2.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이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당신이 뭔데 우리의 성과를 말아먹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나? 당신도 알듯이 욕망은 참기 힘드니까." "그 여대생은 도대체 생각이 있었나, 진의관계가 판가름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이른 폭로 아닌가?" 모 NGO단체의 웹 게시판에서는 이처럼 수많은 의견들이 올라왔지만, 90%는 실망과 욕설이었고 장 원씨 편들기는 소수에 불과했다. 가장 두드러진 목소리는 믿었던 시민운동에 대한 호된 질타였다. "당신들도 역시 자격이 없구먼."
  그러나 질타의 목소리가 모두 같은 톤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거기에 실린 감정의 무게는 스펙트럼의 양끝을 달린다. 한편에는 '당신들조차 믿을 수 없다면...'이라는 시민 일반의 상실감이, 다른 한편에는 "그래 너희도 별 볼일 없었으면서 큰소리였냐?"라는 보수언론의 거슬리는 거들먹거림이 제각각 자리잡고 있다. 이 모두는 정치를 하는 공인이라면 '사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보수언론과 수구 세력에게 대항하기 위한 순수한 시민운동가는 내가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에 깨끗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나는 비록 더러워도 시민운동을 하는 당신은 깨끗해야 하지 않은가? (ID:누가왜 오마이뉴스게시판)" "남의 죄를 말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이 그를 닮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5월 27일 K방송국 9시 뉴스 장원사건관련 멘트)"

  나는 깨끗하지 않더라도 나의 대리자는 깨끗해야 한다. 왜냐 더러운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대항하려면 구린 구석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 원씨가 대변인으로 있었던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야 말로 정치개혁을 위해 '자질 없는 정치인을 청산시키자'고 외쳤으니, 같은 논리를 장 원씨에게 적용하는 비판이 더욱 난무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먼저 몸을 바르게 다스린 사람만이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옳은 말이다. 더욱이 부패한 정치권에 대항함으로써 성장한 시민운동이기에, 이런 덕목은 전략적으로도 중요할 터이다. 그렇다면 장 원 사건이 일으킨 상실감의 근저에는 공적 활동과 사적 삶이 별개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가? 더 나아가 공/사 분리를 철폐해서 근대의 성적 모순을 넘어보자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상통할 수 있는 것인가? 아쉽게도 저간의 논의에서 '명망가는 스캔들을 일으켜선 안 된다'는 모호한 도덕기준 이상의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이때의 도덕이라는 것은 그저 아랫도리 잘 다스리자는 천박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의심이 들 뿐이다.
  한편 '시민단체, 너마저도!' 하는 식의 끝간 데 없는 상실감은 우리 사회의 운동단체가 비비고 있는 땅이 얼마나 비좁은가를 새삼 상기시키는 것 같아 우울하기도 하다. 사회단체가 대중적 시선을 모으기 위해 정치적 입장의 정당성이나 대안의 현실성에 앞서 무엇보다도 '도덕성'을 내세워야 한다니. 그래서 혹자는 도덕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보수정치의 상투적 수법이라고 경계하기도 한다. 보수/진보 양당 체제로 구축된 많은 나라에서 보수진영이 '도덕과 안정'을 방패와 무기로 삼아왔던 것을 상기하면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어쨌거나 도덕성의 칼은 그야말로 '양 날'을 지닌 위험한 무기임에 틀림없으며, 시민운동은 한쪽 날로 부패한 정치인을 도려내려 하다가 다른 쪽 날로 장 원씨를 도려내야만 하는, 아울러 자신의 도덕성에도 상처를 입히는 형국이 된 것이다.

3. 그렇다면 아무도 돌을 던질 수 없지 않은가?

(1) 하향평준화
  ①누군가는 돌을 던져야 한다. ①하지만 돌 맞는 사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지 않으면 돌을 던질 수 없다. ③그러나 세상은 타락했고,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다. ④그렇다면 이 타락한 세상에서 돌 하나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대강 이러한 논리로 전개되는 의견, 곧 '아무도 돌을 던질 수 없쟎아'라는 시각은 대개 보수진영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장 원씨를 두둔하는 가운데 튀어나온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같은 분들만 모여서 시민 운동해야 하는 세상이 올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과연 오늘의 우리들 가운데 누가 자유롭게 그리고 또 당당하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ID:honeyduck, 오마이뉴스게시판)
  장원님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런 점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운동가는 성인군자인가? 운동가는 완벽한 인간인가? 운동가는 사생활이 없나? 일반 대중이 운동가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디 성추행을 하는 남자가 장원님 뿐인가요? 어디 성추행을 일삼는 운동가가 장원님 뿐인가요? 제가 알고 있는 운동가만 해도 한둘이 아닙니다. 대볼까요? 뜨끔하셨죠? 보도하는 기자들은 온전 한가요? (ID:자유주의자, 오마이뉴스게시판)


난 이런 종류의 글을 읽을 때마다 '하향평준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모두 다 비슷한 사생활을 지니면서 왜 유별나게 이 사람에게만 린치를 가하는가 하는 질문이 '모두 자성합시다!' 보다는 '입다물고 있자' 쪽으로 야합하려 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위의 '운동가에게는 사생활이 없는가'라는 부분에서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별개라고 쉽게 치부해 버리는 근대의 편중된 태도가 풍겨 나와 절로 짜증난다. 호텔에서의 사적인 지분거림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여러 가지 모습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만나려 했던 피해자의 행동은 결국은 가해자의 '사생활'에 냉큼 편입되어 버리고 말았으니까.
   사생활을 굳이 공적인 부분까지 끌고 나오지 말자 혹은 사생활에서의 잘못은 사적으로 처리를 하자는 말처럼 남성본위 적인 말은 없는 것 같다. 남성에게는 '사소한' 바로 그 문제로 인하여 여성들의 공적 활동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 어떤 여성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을 하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자. 이것 역시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인가? 공적 공간에서 공적인 일을 하다가 당한 폭력인데도... 이것은 남성의 입장에서는 욕망의 문제, 즉 가장 사적인 것이니까, 마음을 진정하여 가해자를 조용히 고소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직장에 복귀하라는 것인가? 무엇이 공적인 것이고, 사적인 것인가?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곧 '침대 위'와 '책상 앞'의 차이란 말인가?

  시민운동가도 어차피 사람이고 깨닫지 못한 부처나 신이 아닌 이상 술 먹으면 그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대 미국제국의 클린턴도 백악관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스님들이나 목사들도 종권을 놓고 백주대낮에 싸움을 벌이는 마당에 시민운동가가 술먹고 성추행을 했다고 해서 이상할건 없다. 오히려 지금 경계할 것은 좃선일보나 헌나라당 같은 곳에서 이번 사태를 호재로 삼아 시민운동, 아니 진보진영 전체에 비난을 하는 것이다. 마치 자기네들은 도덕적이고 순결하다는 척을 하면서....실제로 장원선생 보다 더한 성추행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주제에 말이다. 그럴수록 시민운동 진영이나 이를 성원하는 일반시민들이 이런 보수세력의 공세에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자세를 갖기를 기대한다. (ID:anti보수, 오마이뉴스 게시판)

  어느 새 '사적 영역'이라는 것은 더럽고, 보기 싫고, 책임지기 싫은 것들을 양말로 슬슬 밀어 넣는 침대 밑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한 때' 실수를 저질렀을 뿐인 진보적 남성이 그보다 더 '더러운' 보수 세력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 그들의 더러운 침대 밑은 사소한 문제가 되어 주어야만 한다. 이런 식의 입장은 쉽게 '음모론'으로도 나아간다. 한 피해와 가해 사실을 황당한 첩보작전과 마타하리로 대체하며 너저분하게 지키고 싶은 진보란 어떤 얼굴일까. 궁금하다.

(2) 오, 상징적인 그대!

  대학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이 집회 때, 학생회장이 나오면 모두 일어서는 분위기였다. 권위주의적인 것에 대항하자면서, 또 다른 권위를 만든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나의 적응 여부와 상관없이, 맨 위에 있는 개인에게 많은 것을 몰아서 엎드려주는 방식은, 그가 ― 맨 윗 선이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드니까 '그'라고 하자 ― 지닌 책임감과 위험부담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게는 많은 것이 걸려 있으니까, 그는 소속 단체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나아가 그 단체 자체로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아래와 같은 비약적인 결론은 쉽사리 나올 수 있다.

  나는 구형한다. "피고는 큰 죄를 저질렀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성적 자유를 침범함을 넘어... 이 나라 국민의 정치적 자유... 나아가 인간으로서의 누려야 하는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다. 응당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 (ID:단무지추가요, NGOkorea게시판)
  한 인간의 음심이 한국의 시민운동을 죽이고 있다. 깨끗한 사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죽이고 있다. 장원씨 ! 당신이 저지른 죄는 강제추행만이 아니라 한국의 시민운동과 국민의 희망을 죽인 죄요. (ID: 할말없음, 오마이뉴스 게시판)


  장원 씨가 지은 죄는 일 대 일 인간관계에 끼친 피해를 넘어서 그가 소속한 단체 전체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심지어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행복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사당(私黨) 정치, 보스 중심의 정당이 보편적인 사회라서 가능한 일일까? 어느 단체를 대표하는 그는 그 단체와 마찬가지인 것처럼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한 단체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그에게는 단체의 생존과 번영을 책임지는 인물로써 처신을 더욱 잘해달라는 요구가 부과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장 원씨 소속 단체의 대응을 보면, 여기서의 처신이라는 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 삶'을 의미하는 것인지 의심이 간다. 금방 성명서를 내고 그를 제명시켜 관련을 끊고 말려는 태도는 올바른 처신에 대한 요구가 결국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것을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 정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게 한다.
  녹색연합의 대응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운동단체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짚어보는 차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푸는 것이다. 한 명망가의 상징적 위치와 동일시되는 단체의 위상은 언제라도 무섭게 돌변할 수 있다. 단체의 생존을 위해 그를 신속히 제명할 수 있다면, 같은 이유로 그에게 면죄부를 발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끼칠 수준이 아니라면 말이다.
  장 원씨 사건과 유사한 사례들이 공개되는가 은폐되는가 여부는 반드시 도덕적 기준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그 자체가 다른 정치적 논리에 따라 저울질될 수도 있다. 예전에 ㄱ 대학교 총학생회장의 성추행 사실과 ㅅ 대학교 총학생회장의 성추행 사실이 거의 동시에 드러난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ㄱ 대학교의 피해자가 속한 정치조직이 ㅅ 대학교총학생회장이 속한 정치조직과 같았고, 반대로 ㅅ 대학교의 성폭력 피해자는 ㄱ 대학교 총학생회장의 조직에 속해 있었다. 이때 두 학생정치조직의 선배 되는 사람들이 서로 '함구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합의를 시도했다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처럼 '없는 문제'로 사라져 버린 사례들이 얼마나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4. 그래서 돌은 어디로 갔는가?

  장원사건에 대한 주류의 반응은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돌 던질 자격'을 둘러싸고 양 갈래로 나뉘어졌으며, 이 어정쩡한 양극의 충돌 속에서 튕겨져 나간 돌은 피해자에게로 날라 갔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이 일로 '오양'은 성적인 것을 '밝히는 그녀' 일반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완전히 정착된 듯 하다. 여기에는 이 사건을 무엇보다도 '오양' 사건으로 이름 붙인 언론보도의 역할이 컸다. 원래 아무개 '양'과 아무개 '군'은 손아래 사람을 친근하게 부르는 성별 호칭 아닌가? 그것도 굉장히 제한적인 자리, 이를테면 강의실 책상언저리에서 교수들에게 지목 받을 때, 혹은 드라마 속 다방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다방언니들에게 끈적끈적한 웃음을 보이면서 부를 때만 쓰이지 않는가? 이런 제한적인, 후자의 경우는 여성의 입장에서 못마땅한 쓰임새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매체들은 좀 나이가 어린 여성에게 여지없이 모모 '양'이라는 호칭을 선사한다.

  장 원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이 어린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또한 경위가 어쨌건 간에 성적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게다가 이미 세간의 화제가 되어버린 오현경 비디오 사건과 결부됨으로써 이 피해자에게는 너무나 확고하게 '오양'이라는 이름이 들러붙었다. 그리고 그녀 뒤에는 계속 '호텔', '가명예약', '혼자 여행', '어떤 부모', '불륜', '신분문책' 등의 단어들이 뒤따른다. 왜 그렇게 성추행·성폭력 사건을 이야기할 때면 피해사실 자체보다는 그 피해자가 얼마나 지고지순한 선의의 피해자인가에 집착하게 되는지. 얼마나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그래 너 성폭력 당했구나 라고 마지못해 긍정해 줄는지 궁금할 뿐이다.
  결국 돌은 피해자를 겨냥하게 되었고, 이는 '성'을 고리로 하는 폭력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성폭력이 '폭력'이라는 것을 아직도 인정 못하겠다는 태도, 그래서 더 큰 대의 ― 보수정치에 반격하기 위해 ― 를 위해서 언제든지 고소를 취하하라는 태도가 그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장원씨 보다도 오모양인가 김모양인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고소를 취하하면 어떨까 싶다. 솔직히 그렇게 분하기 까지 할까 싶다.(처음에야 그랬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고 보면) 무엇보다 장원의 뒤에는 그를 존경하며 산부인과 아이들이 있지 않나. 일개 여학생이 그를 의지하고 사는 지극히 아름다운 이들에게까지 상처를 줄 필요가 있을까. 권리가 있을까. 오모양인가 김모양인가. 자신의 상처를 너무 확대해석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정도는 미친개에게 물린 것도 아니고 약간 할퀸 정도라고 생각해도 좋을 성싶다.(ID:폭설, 오마이뉴스)

  물론 돌은 피해자인 오양에게만 돌아가지 않았다. '껀수 잡으셨네요'하는 비아냥거림의 우표딱지를 붙인 채 이른바 '페미니스트'들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이건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태도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산에서 뺨맞고 한강에다 돌 던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낙선운동을 위해 가두 서명을 받고 길거리 퍼포먼스를 벌였던 여성단체의 활동가들, 장 원씨와 더불어 총선연대의 선봉에 앞장섰던 여성단체 대표들은 과연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지 오히려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 여학생 고소취하를 하기에는 이미 너무도 많이 발이 빠져 버린 것일까요? 여성단체의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뒤에서 지켜주겠다고 하므로 취하하고 싶어도 취하하지 못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ID:폭설, 오마이뉴스)
  그치만... 궁금한 것은 요즘 성과 관련된 사건들을 조장한 장본인들이 어떤 인간들일까 하는 것이다... 머... 페미니스트들에게 좋은 논쟁거리를 던져주기 위해 좀 잘나간다는 남자들이 몸바쳐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닐 거고...뭔가 더러운 정치판의 관심 돌리기 공작 냄새가 난다... (ID: 자다깬한량, 달나라딸세포)


  위의 글은 이즈음에 여성 사이트인 달나라딸세포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의 일부이며, 게시판에 다녀간 많은 남성들의 전반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군 가산점 논쟁이 불붙으면서 여성게시판에 와서 난도질을 일삼던 사이버 마초들의 행각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 되었다고나 할까. 설득하고 싶은 생각도, 설득 당하려 하는 자세도 없이, 그저 '당신들이 뭘 알아?'를 방패삼아, 여성단체를 싸우고만 싶어하는 쌈닭인양 몰아가는 태도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막무가내로 피해자를 다그치거나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사람들만 피해자에게 돌을 던진 것은 아니다. 혹자는 참으로 교묘하게, 장 원씨가 처음에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가 부인에게 물어보고 난 후 다시 그다지 잘못한 게 없다고 말을 번복했던 우유부단한 태도를 지적하면서, 성과 관련된 권력이 여성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 아닌가라는 야릇한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클린턴을 용서한 힐러리와 비교하면서 말이다. 남편의 부적절한 성 관계를 부인들이 판단해서 대처하고 또 용서했다면, 적어도 가해자의 성적인 권력이 여성인 아내들에게 이양되지 않았는가 하는 매우 미심쩍은 논법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남편을 받아들임으로써 아내들이 권력을 갖게되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식과 자신의 가족을 봐서라도 남편의 죄질에 대해 일단 방어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적 고초가 어찌 권력이 될 수 있겠는가?
  도덕성을 기반으로 부패한 정치권에 돌을 던지다, 돌 던질 자격에 관한 모호한 이야기만 되풀이 되었던 장원 씨 사건에서 튕겨져 나간 돌은 엉뚱하게도 피해자에게 향하는 결과를 낳았다. 피해자는 과연 피해를 입었는지, 그 피해자는 과연 구제해 줄만한 깨끗하고 순결한 피해자인지를 집요하게 캐묻는 인터넷 담론들은 은근슬쩍 '장 원씨도 또 하나의 피해자' 인양 사건의 권력관계를 역전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5. n+1번째 장원은 피할 수 없는가?

  이런 구태의연한 과정을 돌이켜 보건대, 나는 n+1번째 장원이 더 이상 없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술이 좀 되어서' 재수 없이 걸렸다든지, 이 일로 인해 보수진영으로부터 받을 공격만을 우려한다든지, 아니면 그저 '너 때문에 시민운동의 물을 흐렸어'하면서 한 사람만 찍어누르는 태도들이 난무하는 사이버 게시판과 토론방들. 이 사건을 둘러싼 '전자 민주주의'의 열풍 속에서 '한 남자의 아랫도리' 문제를 넘어서는 더 큰 의미의 도덕을 성찰하고 고민하는 태도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인지라.. 이것을 가지고 기사로 다루어야 하는 입장인 나로선 참 무안하단 생각까지 듭니다. ..(중략).. 이제야 시작되는 '폭로'이지만, 모두 다 까발겨서 온통 세상을 뒤덮었으면 좋겠군요. (ID: 여울, 달나라딸세포)

  위의 글은 한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쓴 것이다. 진보진영에 있는 남성들도 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집에서 익히고 실천해온 예의 가부장적 태도에서 더 '진보'하려 하지 않는 현실을 확인하는 구질구질한 에피소드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원씨의 성추행과 386 술자리 사건 이후 광범위한 진보진영과 사회단체의 여성활동가들 사이에서는 그 동안 감추었던 일들을 이제는 공론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나왔으며, 실제 몇 번의 토론회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작 와서 진지하게 토론에 참여하고, 단체 안에서 구태의연하게 깔려져 있던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문제들을 자성하는 단체의 모습은 왜 그렇게 적었을까. 씁쓸하다.
  수면 아래 누적되어 왔던 이런 일들에 대한 '커밍 아웃'이 단지 가해남성들을 단죄하려는 것으로 느껴져서 였을까? 남성'동지'들에게는 단지 사적이고 사소한 일들이 여성의 활동과 행동반경을 위축시키는 폭력으로 다가온다는 것, 지금까지 무시되어 왔던 운동진영의 사적인 영역에서의 진보가 얼마나 그놈의 '진보'에 필요한지 이야기 해야할 때다.

  소위 '386세대 술자리사건'과 '장원씨의 성희롱 사건'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보다는 소위 깨끗하다는 사람들의 도덕성이 더 문제가 되는구나. 물론 여성에 대한 태도가 도덕성이라는 덕목에 추가되었음을 인정하는 투의 사람들의 모습은 참 보기 좋습니다만...(중략) 이번 사건들이 386만의 도덕성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신문지면에 성희롱기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논의의 방향이 잘 유지되기를 바라며, 무엇인가가 변화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ID:softwar, 달나라딸세포)

   누군가가 주장했듯이 아무도 성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남성이라면 누구나 성추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더 이상 그것을 모두가 묵과하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터부부터 만들지 말아야 한다. 모두가 자유롭지 못한 그런 관계야말로 공적인 관계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장 원씨 사건은 장 원씨 개인을 시민운동에서 분리시킴으로써 끝나는 것 인양 안이하게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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