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러운 그러나 못미더운 환영

이 소 리



   2000년 입시에서 국립대 의예과에 여성진학률이 50%에 다다랐다. 173명 중 86명이 여 학생으로 87명의 남학생보다 한 명 모자란단다. 50%, 1/2. 새 천년 세상의 절반이 여성 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인 것처럼 신문과 방송에서는 대서특필되었다. 서울대는 이 예상치 못한 일에 대응하여 여자 기숙사와 화장실을 늘리는 등 분주하기만 하다. 하지만 절반의 신입생을 맞이하는 저간의 부산스러움 속에서 못미더움과 우려를 느끼는 것은 왜일 까.
   우선 혹자의 말처럼 이 '사태'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굉장히 비합리적인 편견을 들이민다. "수능의 수리탐구 문제가 쉽게 나와서 (숫자에 약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여자애들 이 고득점을 받은 것이 이 '사태'를 초래했다"는 진단은 수세적인 뉘앙스마저 풍긴다. 예 외적인 몇 몇이 아닌 전체의 절반이라는 숫자가 드러내는 힘을 에둘러서 표현했다고나 할까. 더 좋다고 하는 대학과 학과에 재수, 삼수의 위험을 무릅쓰고 딸을 지원시키는 부모 혹은 고등학교가 적고, 여학생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안정적인 입시지원이 일반화된 상황을 고려 할 때, 이러한 해석은 우습기만 하다. 실제로 의예과의 고위합격자는 안정적으로 지원한 여 학생들이 많이 차지한다. 수능의 출제동향에 좌우될만한 대단위의 '여성예비합격자군'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입시와 점수만큼 합리적인 경쟁의 도구란 없다는 보편적인 사회적 인식과 괴리되게, 사회일반은 다수의 여자들이 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데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비합리적인 편견과 상황의 '예외성'을 굳이 드러내는 것을 통해 무마하 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이러한 출발지점에서의 편견 못지 않게 절반의 친구들이 의사로 수련해 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될 상황 역시 우려가 된다. 성적보다는 체력을 문제삼아 어지간해서는 여학생에게 자리를 할당해주지 않는 전통적인 과가 존재하는가 하면, 전체적으로도 내과와 소아과 산부인과 등 일부 과를 제외하고는 여학생에게 자리를 내주기를 꺼려하는 관습이 의대와 대학병원 내부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서, 준비할 것은 모자란 기숙사와 여자화장실 뿐 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어쨌든 의사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고자 하는 여학생들의 수가 두드러지게 늘어났다 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여기에 대해 어떠한 우려가 따르든지 말이다. "어찌 여자가 의사가 될 수 있느냐"는 환자나 사회일반의 못미더움은 여자의사를 접할 기회가 적었다는 경험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인식 더 나아가 여성의 사회진출에 관한 전반적인 인식이 조금씩 나아지겠다는 희망은 아무래도 50%라는 만만찮은 숫자가 던지는 기대감 때 문일 것이다.

[이소리 글모음  |  달 딸 목 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