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와 철학자

이 난 다

방학 동안 나는 게으름뱅이 딸이다. 느즈막히 일어나서 하는 일이라곤 고작 이리저리 뒹굴면서 책을 읽거나 비디오를 보고 웹 서핑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부지런히 일하시는 동안 마냥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부끄러우니까 가장 간단한 집안 일들을 돕는다.
그 날은 어머니가 파 김치를 담으시겠다길래 파 다듬는 것을 거들었다. "이제 됐으니 볼 일 봐." 파 다듬는 일을 끝내자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나는 허리도 아프고 눈도 따갑던 차에 신이 나서 얼른 손을 털고 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이제부터 김치 담는 일을 시작하실 것이다.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책을 편다. 시간이 천천히 가는 여름 오후, 부엌에서 들려오는 덜덜덜 믹서 돌아가는 소리. 나는 철학 책을 읽고 있다. 청년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와 언어, 세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언어를 아주 단순한 요소들로 분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 단순한 요소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단순한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라고 했다. 단순한 사실들은 결합되어서 복잡한 사실을 만들고 이 복잡한 사실들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언어 역시 단순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있고 그것의 본질적인 기능은 세계를 서술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언어는 한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결국 세계의 한계이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말들은 모두 '무의미'하거나 '헛소리'이다.
"난다야, 저녁 먹어라." 어머니가 부르시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책에서 눈을 떼자 세계가 달라보인다. 나는 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세계에 대한 여러가지 철학적 상상들이 재미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보여주는 세계에 대한 차가운 그림에 감탄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아주 커다란 폭의 상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녁을 먹고 나서 설겆이를 하기 위해 개수대 앞에 섰다. 수북히 쌓여 있는 음식 쓰레기들. 고기에서 떼어낸 지방들과 야채의 쓸모없는 부분, 버리려고 내놓은 상한 국, 그릇에 남은 음식 양념. 그것들을 쓰레기 봉투에 담으면서 나는 왜 주부가 그렇게 명쾌한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가 될 수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세계가 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주부가 하는 일들은, 해놓고 나면 그대로인 것 같아서 잘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녀들은 쓸모있는 것들만큼이나 쓸모없는 것들을 많이 다룬다.
그러나 어머니는, 비트겐슈타인과 달리, 파김치를 구성하는 단순한 요소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건 내가 직접 보았기 때문에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그날 오후, 그것을 손수 만져서 단순한 요소로 분해한 뒤 여러가지 사물을 결합하여 파김치라는 하나의 사물을 탄생시킨 분이 바로 우리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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