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기 할머니

이 소 리



   건강하고 의욕이 넘치는 젊은 부부였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전남 광주에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3살 난 아들이 있었고, 이제 막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딸을 낳은 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서울로 가자고 결심했다. 서울로 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쳤던 젊은 아내는 갓 낳은 딸을 친정 어머니에게 잠깐 맡겼다. 그것이 3개월인지 6개월인지 1년인지 나는 모른다. 너무 어려서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 외할머니의 말씀 속에서 그것은 언제나 부풀려 지기만 하니까.
   외할머니는 늘 그때 말씀을 하신다.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내가 얼마나 무력했는지, 엄마에게서 떨어진 어린 아이였던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할머니에게 매달렸는지. 나도 그때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공포스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는 다 지나갔다는 안심도 준다. 할머니와 나는 그 이야기 속에서 일종의 공모 관계를 갖는다. 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거의 내 체험인 듯이 기억한다.
   외할머니가 작년에 간단한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에 오셨다가 불의의 수술로 오래 입원하셨을 때 할머니는 많이 약해지셔서 아기같이 되었다. 할머니의 입원실에 며칠 밤을 있으면서 우리는 또 그때 이야기를 했다. 내 무력한 아기 시절은 더 이상 나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연민을 안겨줄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주사맞는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아 드리고 잠들 때 까지 할머니 옆에서 소곤거려 드린다. 할머니의 무력함, 좌절, 공포를 나는 거의 내가 느끼듯 느낄 수 있다. 퇴원하시는 할머니를 다시 광주로 모시고 온 것이 나였다. 잘 걷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비행기를 타러가는 동안 내내 나를 꼭 붙잡으셔야만 했다. 할머니가 더 잘 붙잡으시라고 등을 꼿꼿이 세우면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성인 여성이 되었다고 느꼈다. 서로를 낳고 키우는 여자들의 관계. 그것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내가 아기를 낳으면 아기는 나를 어머니로 낳을 것이다. 어린 나를 키우셨던 할머니가 아기처럼 작아지시는 것으로 다시 한번 나를 훌쩍 키워놓으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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