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이젠 스스로 밝힌다 :: '한채윤의 섹스말하기'를 읽고...

 

신 딸 기

밝히는 년은 그 년이 우습든 무섭든, 이성의 배우자로서의 점수는 빵점이다. 현모양처란 절대로 밝히는 형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밤에는 요부, 낮에는 현모양처를 바란다지만, 요부에게 현모양처가 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요조숙녀에게 현모양처의 기질이 있고, 요부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것이야 말로 금상첨화인 것이지, 요부의 기질 자체가 비단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밝히는 것으로 찍혔다면, 당신이 우습게 느껴지든 무섭게 느껴지든 일단, 당신은 매장된다. 그것도 더럽게. 어떤 남자도 당신을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어떤 (남성중심적인)사회도 당신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러니는 이런 거다. 당신이 그런 여자로 찍혔다고 해도, 실제로 당신은 그다지 성적으로 성숙해 있지 못 하다는 것이다. 백이면 백 그렇다. 우리 나라에서 태어나서 좋은 부모 밑에서 학교를 다니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독자들은 몇 달 전 난다와 딸기의 섹슈얼한 수다의 결과물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후, 우리는 (심지어 우리 클럽의 좀 더 소심한 회원일 것으로 여겨지는) 친구들에게 이거 너무 심한 것이 아니냐, 너무 밝히는 것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았다. 물론 이 친구들 생각엔, 이런 구박마저도 우리에게 섹슈얼한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난다와 딸기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속상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궁지에 몰렸다.
단지 약간의 섹슈얼한 잡담을 사람들에게 밝히는 정도로, 우리는 밝히는 년으로 찍혀버렸다.그러나 '흐흐 아가씨'들의 미래는 사실 불투명했다.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냐고 억측을 하는 그들에게도, 사실은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녀석들일 거라고 코웃음 치는 그들에게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해주길 바라는 소심한 우리 클럽 회원들에게도, 심지어, 밝히는 당사자인 우리들에게도 미래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득이 한 호 쉬게 되었다. 넒은 아량으로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역시 우리는 수다를 떠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단 말인가?

한채윤의 섹스말하기 표지

그러나, 그것은 기우임이 밝혀졌다.
달딸로 배달된 책 한 권, 그것은 복음의 소리였다. '도서출판 해울'에서 나온 '한채윤의 섹스 말하기'. 섹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학교에서 배운 생물학적 지식, 혹은 가정학적 지식, 그리고 너무나도 잘 알고 길들여지기까지 한 윤리적 행동에 관한 지식 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성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은 일천했다. 아, 그래 정치적으로 어떠해야 한다는 것까지도 어느 정도 말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섹슈얼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적극적인 해결을 위한 지식은 거의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성적인 욕망을 말하는 것으로 영위해 가던 그 섹슈얼한 행위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을 때, 타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반응과 행위에 목을 매달고 있었어야 했을 때(그래야 말할 거리가 생기니까. 추측한 대로, 우리 클럽의 섹슈얼한 욕망은 그 당시를 기억하고 언급하는 것으로 충족되곤 했다), 우리는 안개 속에 가려져 있던 길을 발견한다(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것이 저자의 의도대로 "진정 여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하는 여성들"이 되기 위한 길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한 그 길은, 저자의 길과 이어져 있거나 겹쳐져 있는 길일 것이며 우리 클럽 회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길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한다.

이 책에는 레즈비언 섹스에 관한 거의 대부분의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레즈비언의 건강한 삶을 위한 책이다. 그녀의 몸이기도 한 나의 몸에 대한 깊은 이해로 시작해서, 실전에서의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자세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설명되어 있다. 여성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것을 두려워하기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파트너에게도 자신에게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등이 꾸밈없는 문체로 설명되어 있다. 나아가서, 건강한 성생활 뿐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었을 금기와 상식에도 도전한다. 그러나 그녀는 좀더 세련된 테크닉을 지도하고 좀 더 능숙한 처리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책은 레즈비언이 아닌 여성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자신과 그녀가 가진 욕망에 솔직해지고, 그것을 해소하는 일에 당당할 것. 당당한 여성이 되어야 하는 나와 그녀가 알아야 하는 것들을 과장 없이, 동시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저자의 (여성, 레즈비언) 독자에 대한 연민과 애정 때문일 것이다.

'밝힌다'고 평가 받는 것은, 그리고 그 평가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밝아지는' 길은 어려운 것이다. 나의 성생활이 밝아지는 것은 내가 밝힌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행복한 삶을 떠나 어둡고 불길한 삶을 살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만약 원한다면 그러한 삶이 자신에게 주는 행복감 때문일 것이다, 그 역시 행복한 삶을 원하는 것이다) 여성인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 준비된 것은, 없거나 모호한 기준 투성이다. 특히, 성적인 부분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며 자율성이 배제된다. 내가 내 삶을 밝히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 클럽 회원들을 위해 밝히지 않는다면, 행복한 삶 따위는 모호하고 상대적인 기준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이고, 현실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차악의 수준 -예를 들자면, 귀찮기만 하더라도 빨리 끝내주는 파트너를 만나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는 것에 감사하는 정도- 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은 심각하게 당신의 성정체성을 의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지 밝혀야 한다.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밝히는 년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밝히는 년만이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와 애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혹, 지나치게 밝힌 당신이 마초의 위협을 받아 완전히 (남성중심적 이성애적인) 사회에서 매장당할 위기에 처해 있더라도, 당신은 미래는 밝게 빛날 것이다, 당신은 이미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밝힌 여성일 테니까. 당신과 우리들은 행복해져야 하는 운명이므로, 절대 두려워할 필요 없다. 당신 곁에는 우리가 있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원하고 즐거운 삶을 찾아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같은 길에 동참하길 원하는 우리들이 있다.

난다와 내가 이 책을 돌려 읽고 발견한 것은, 역시 레즈비언의 길이었을까? 아시는 분은, 혹은 토론하실 분은 책을 읽고 메일을 보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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