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운동

 

정리; 이 소연

1. 들어가는 말

이 땅에 대중여성운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소수의 열걸음보다 다수의 한걸음이 더 중요함을 인식하면서 대중여성조직으로서의 주부조직이 중요한 축을 이루게 된다. 그 동안 주부들은 가정에 고립되어 있어 비정치적인 세력으로 간주되었고 운동의 효율성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받았다.그러나 성인여성의 절반인 전업주부를 조직하지 않는 한 여성단체의 회원확보는 희망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면서 주부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주부운동이 목표로 삼는 영역은 세가지이다. 첫째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성권익영역의 운동이 있다. 취업기회의 확대,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인정과 사회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의 타파, 평등하고 건강한 성문화 및 가족구조를 창조하는 운동이 이 영역에 속한다. 둘째는 현실적으로 가사일을전담하면서 겪게 되는 문제와 시민으로서 겪게 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생활과제운동이 있다. 산업화에 의한 인구의 도시집중과 무분별한 자본의 이윤추구는 많은 도시,농촌문제와 환경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초래하는 다양한 모순의 하나로 시민모두가 관심을 갖고 풀어나가야 할 또 하나의 영역이 되었다. 셋 째는 여성권익과 생활과제운동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과 연결된다는 것을 전제로 이 사회의 민주화 과제와 민족자주화 과제 실현을 운동의 과제로 설정하게 된다. 가족의 안정된 먹거리를 확보 하기 위해서는 농약범벅인 수입농산물을 거부해야 한다고 깨닫고서 농민과 함께 민족자주화 운동에 동참해야 함을 느끼고 우루과이라운드 대책위 활동에 적극 결합하게 된다. 어디 그 뿐인가. 다이옥신을 배출하는 소각위주의 쓰레기 정책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행정당국을 접하고 민주정부의 수립이 주부운동의 과제임을 절절히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주부운동은 생활 자치 과제를 중심으로 여성권익과제와 민주화 과제를 수행하면서 총체적인 주부운동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대중조직화 작업과 정치투쟁을 동시에 진행할수 있었던 것은 한국여성단체 연합(이하 여연)의 연대틀을 통해 정치활동을 수행하 였고 동시에 주부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나갔기 때문이다.

2. 조직구도 및 재정활동

운동단체가존립하기 위해서는 그 단체가 목표하는 바와 이를 운영하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이 필수조건이다. 민우회를 끌고 온 인적,물적 자원은 무엇이며 이를 시대적 상황에 맞게 설정한 조직구도가 어떠한가 를 살펴보는 것은 민우회를 가장 쉽게 이해할수 있는 지름길이 된 것 이다.

1) 대중조직으로서의 첫발, 독자적인 생협창립

주부조직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가. 초 창기만 해도 확고한 위상이 설정되지 못하고여성문제 교육문제에 관심있는 진취적인 주부 중심으로 소모임이 확산되었다. 주로 여성 문제와 교육문제, 근대사등에 관해 세미나를 하면서 사회, 역사, 여성문제에 관해 공통적관점을 갖도록 노력했는데 그 중에서도 교육 문제에 초점을 두고 활동을 하게ㄷ 된다. 그런데 교육문제에 대한 선전활동은 할 수 있었으나 공동실천과제가 개발되지못함으로서 대중조직화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참교육 실현을 위한 교육제도 개선내용과 일반주부들이 당장 바라는 내용 사이에 괴리가 심해 주부대중조직 건설에 차질을 빚게된 것이 다. 제시된 실천과제가 옳은 일이긴 하지만 주부의 단기적 이익과 부합하지않았기 때문이다. 88년 말과 89년 초 교육문제만을 전담하려 는 학부모조직으로 나아가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결국 주부들의 주요문제(여성문제 및 생활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포괄적인 주부대중조직으로 정리하게 된다. 현재진행되는 교육문제의 조직형태는 대중조직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교육실정을 개혁하려는, 일종의 선도적 학부모들로 구성된 조직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따라서 각 지역에 뿌리를 박고 주부들이 살림을 하면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초보적 대중조직을 지향하는 민우회가 취할 조직위상은 아니었다. 그러면 무엇을 활동 내용으로 삼을 것인가가 시급한 과제였다. 굳이 본부 사무실로 나오 지 않고 동네에서 살림하면서도 할 수있는 일, 살림과 연관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주부가 풀고 이런 대중의 역량이 뒷받침된 가운데 제도를 바꾸는 영역은 없을까 가 최대의 고민이었다. 그런데 88년 마침 '한살림소협'의 활동이 사회에 알려졌다. 89 년 한 해 동안 주부분과 내에 소비자 문제 위원회를 만들어 서혜¶ 중심으로 생활협동조합에 관해 연구를 했다. 살림을 하면서 먹거리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3-5명이 모이지 않으면 공급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 소모임을 결성해야 하며, 물건을 나누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은 서로 봐야 한다는 강제성 때문에 최소한의 활동은 보장된다는 점, 비교적 부담없이 가입할수 있어 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기 때문에 여성대중조직으로서의 활로를 여기에서 뚫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사업을 잘 하면 재정문제까지 해결할 수있다는 것도 우리를 꿈에 부풀게 한 이유였다. 또 올바른 소비생활, 환경보호, 국내농업보호 등과 맞물려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는 활동이었다. . 현재는 이런 선택이 옳았다는 데 일치된 생각을 갖지만 당시만 해도 군부독재정권 시절이라 그런 말랑말랑한 활동 핵심회원들은 민우회 내부에 생협조직을 띄우려 했지만 전문가들은 독자조직을 건설할 것을 권했다. 그 이유는 아무리 목적과 내용이 좋아도 상품을 사서 파는 행위이므로 불법 영업행위가 되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출자에서부터 최고의사결정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자발성을 최고로 높일 수 있는 조직이 협동조합이라는 것. 당시 민우회 가 갖고 있는 강성이미지가 조직을 확대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점 등이었다. 특히 87년 창립이후 그때까지의 정치적 상황 속 에서 수행해 온 정치적 성격의 활동, 예를 들면 전교조 지지 운동, 여연 회원 단체로서 각종 정치집회 참석 등 일반주부들이 보기엔 낯선 활동이 많았기 때문에 세번째의 지적을 고려하여 민우회 내부에 두지 않고 밖에 독자적인 조직을 결성하기로 하였다.

소모임에서 탈피하기 위해 중앙과 지역에서 민우여성학교를 개설하여 핵심주부활동가를 배출하였고 지역에서는 집중지역 교육이라 하여 환경문제, 식품오염문제를 중심으로 노인정, 부녀회관, 혹은 회원집에서 교육을 실시하였다. 초기에 교육 을 실시한 갈현동, 북가좌동, 석수동 지역은 이후 생협조직의 거점이 되었다. 민우여성학교, 집중지역교육, 발기위원회 구성, 마늘 사과 젓갈 고추 김장거리 등의 예비공급, 출자금 모집, 사무실 임대 등 1년 동안 모든 회원들이 총출동하여 준비한 결과, 89년 12월 220여명의 조합원과 1300여만원의 자금으로 '함께 가는 생활소비자 협동조합'을 감격속에 창립하게 되었다. 특별한 사회경험이 없는 주부들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허리에 전대를 차고 지리도 잘 모르는 서울전역을 누비고 다니면서 사과상자를 나르고 마늘 배추를 직접 공급하면서 얻은 성과물이었기에 그 감격은 더욱 컸다.

2) 생협과 민우회의 통합

이 열정은 90년도에도이어져 회원이 700명으로 확대되는 자축할 만한 상황이었다. 산지견학, 산지일손돕기를 통해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이라는 생협의 이념을 몸으로 체험하는 계기가 되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생협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활동하게되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생협활동을 하면서 그 모체인 민우회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는 별로 채워지지 않고 심지어 일부 조합원들은 민우회와생협을 완전 별개로 보기도 했다. 그래서 이의 해결책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조직이 이원화 되는 것을 걱정했으면서도 그냥 회지의 제호를 따라 생협의 이름을 정했으니 '한국여성민우회 생협'으로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총회를 앞두고 촉박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라 조합원에게는 충분한 설명을 못했다. 이런 안이한 대처 로 총회에서 과반수는 넘었지만 2/3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되는 어이없는 일이 생겼ㄷ. 어수선한 가운데 91년 활동에 들어갔는데 상반기에 심각한 경영난에 부딪히게 되었다. 6월들어 적자가 6백만원을 넘어섰고 연말에 가면 1천 5백만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금 생각 하면 그리 큰 돈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모두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민우회 본부의 주부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비상체제로 하면서 4개월의 고심끝에 민우회 인력과 재정으로 양대조직을 다 꾸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통합을 결정했다. 조합원들에게 간곡한 편지를 띄워 자세한 설명을 하고 12월 임시총회를 개최하였다. 이 임시총회에서 통합론을 의결하고 92년 1월 생활협동 사업부로 개편, 민우회와 생협이 단일조직으로 통합된 첫 총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생협은 생협운동의 완결성 을 가지려 하고 민우회는 여성운동의 완결성을 가지려 하지만 두 조직을 담보해낼 인적, 물적 자원이 부족해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생협운동 자체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역할도 중요하지만 여성단체인 민우회가 왜 이일을 굳이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직적 해답이기도 했다.

3) <가족과 성 상담소>를 왜 만들어야 했나

생협을 통합한 이후에도 두 가지 고민이 남았다. 하나는 생활협동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조직에 비해 양적 확산속도가 늦다는 점이다. 이는 생활과제와 여성과제의 동시수행으로 역량이 분산되면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느 결과이기도 했다. 한정된 자원에서 생협사업에만 몰두하면 운동성을 간과하게 되고 운동에 치중하다 보면 주부운동의 토대가되는 생협활동이 위축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몇가지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생협활동과 지역활동을 기본축으로 하되 지역과제 수행과 여성과제 수행은 놓칠 수 없으며 비록 양적 팽창이 완만하게 이루어지더라도 이를 감수하기로 하였다. 운동적인 측면을 좀더 강조한 결과이다. 다른 하나는 생활협동사업만으로는 조직관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협의 조직적 토대가 되는 공동체 간담회를 갖지만 한정된 내용으로 인해 금방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거기서 지역에서 여성운동의 과제를 부각하는 것이 힘들게 되고, 이는 다시 여성문제를 의식화하는 것이 한계에 봉착하는악순환을 거치게 되 었다. 수천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관심을 담아낼 보완적인 조직방법 론과 영역이 필요했고 여성문제를 매개로 조직화를 해나갈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인위적이 아니면서도 쉽게 공감대를 이끌 매개로 상담소를 설정하게 되고 94년 <가족과 성 상담소>를 개설하게 된다. 이 상담소는 다른 상담소와 같은 상담서비스를 하는 동시에 지역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97년부터 생협공동체를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실시 하고 있는데 이 집단상담이 성공한 다면 조직화의 풍부함이 채워질 것으로 기대되며 상담서비스를 통한 지역여성복지 운동이 자리잡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조직화의 측면 뿐 아니라 기초 자치지역에서 여성문제 이슈화의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인 셈이다.

4) 우리의 자존심, 지역조직활동

민우회 주부운동에서 돋보이는 활동은 뭐니뭐니 해도 지역활동이라 생각한다. 90년부터 지역협의회가 시작되었는데 생협공동체 대표가 전체 모여 지회에 모여 회의를 한 것이 아니라 중앙에 모여 회의를 하는 수준이었다. 더 많은 회원이 참여하도록 91년도에 지역협의회 를 결성하고 지역별로 월례회를 해나갔다. 회원집에서 공동체 대표자 중심으로 모임을 해나가면서 간혹 외부장소를 빌려 일반 주부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본부에서계획한 사업을 지역에서 받아 수행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92년부터 각 지회가 활성화되면서 본격적인 지역중심의 활동이 이루 어지게 된다. 지회대표와 운영위원이 조직되면서 기초 지역단위에서 대중화 작업이 본격화된 셈이다. 기초지역단위에서 운동을 대중 화하기는 어려운데 생협이 매개가 되니 일반주부들이 거부감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사업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지역특성이 드러나는데 서대문, 은평지회 는 회원 연령층이 높아 살림의 경륜이 쌓여서인지 밑반찬 사업이 잘 되었고 노원, 도봉지회와 구로, 양천지회는 젊은 회원들이 많아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된 편이다. 강동송파지회는 이미 활성화딘 고덕지역을 중심으로 모임이 꾸려졌 고 강남서초지회는 문화매체를 이용한 강좌가 ㅁ낳이 진행된 편이다 뒤늦게 출발한 분당지회와 일산지회는 신도시지역의 특성에 따라 젊은 회원 중심으로 활동이 전ㅀ났품i 있다. 또 지역별로 민우여 학교를 통해 활동가들이 배출되면서 이 활동가들은 포스터 붙이랴 전단배포하랴, 수강생 모집하랴 정신이 없게 된다. 생협공동체 활성화까지 기본적인 활동으로 하기 때문에 지치기도 하지만 시간을 쏟은 만큼 애정이 깊어가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과 함께 본부에서 주관한 체육대회, 생산지 견학, 그리고 수련회를 통해 전체의 공동체 의식이 더욱 샘솟는 시절이었다. 지역활동에서 도출된 결론은 핵심활동가의 유무에 따라 조직활성화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많은 공동체 활성화 의 경험이 그랬고 강동, 송파지역의 경우 고덕동 중심으로 운영되었 는데 핵심활동가들이 이가함에 따라 모임이 유지되지 못한 점에서도 핵심활동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할 수 ㅇㅇ있는 지역활동경험 의 역사였다 사무실이 있는 지회활동은 교육활동이 중심이다. 주부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데 주부교육은 크게 두 종류로 이루어진다. 주부 의 사회의식을 고취하기위한 사회교육과 여가시간도 민우회에서 보낼 수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실시한 문화강좌가 그것이다. 문화 강좌는 일반주부들에게 민우회를 알리고 그들을 쉽게 만날 수있는 통로로 사회교육은 수강 이후 소모임으로 묶여 활동가 배출의 통로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문화강좌를 실시하는 기관이 늘어나 지회의 교육활동은 사회교육과 어린이교육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역활동 초기에는 동네에서 민우회를 아는 주부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교육내용을 알리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돈 안들이고 홍보할 수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아파트 경비실 입구마다 전단을 두지만 이 방법은 편한 만큼 효과가 없었다. 결국 전단이 주부의 손에 직접 닿게 하려면 고달픈 방법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전철역, 백화점 주위에서 전단을 나눠주기도 하고 아니면 엄마, 아이가 힘을 합쳐 아파트 개별 투입구에 전단을 집어넣든가 경비아저씨의 눈을 피해 우편함에 넣어야 했다. 이렇게 몰래 눈칫밥을 먹으면서 하던 홍보작업도 민우회가 알려지면서 부녀회장 도장을 받아 포스터를 게시판에 합법적으로 부착하는 장족의 발전을 하게된다. 물론 돈을 받지 않는 부녀회를 골라서 해야 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도계속할 수는 없는 고달픈 방법이어서 교육전단을 유료로 신문갈피에 집어넣는 방법을 택했는데 별 효과는 없었다. 이런 모든 경험을 통해 효과적인 홍보는 중앙일간지에 단신으로라도 싣는 것과 회원의 입을 통해 알리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지방자치선거과정에서 알게 된 것인데 초창기에 뿌려진 전단이 비록 교육수강생 확보 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민우회가 있다는 사실만은 주민에게 많이 알려주었다는 점이다. 이런 지속적인 활동은 민우회를 쓰레기 소각장 대책활동 및 지역환경운동의 중심단체로 자리잡게 하였고 95년 지자체 선거에 6명의 의원을 배출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 결과 민우회의 지역활동이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고 지역조직활동은 민우회의 자존심이 된 것이다. 97년 현재 행정구역에 따라 명칭이 조정되었는데 서울지역은 남부지회 남서지회 동북지회 서부지회 로 나누어 활동하고 있고 경기도 지역에 고양여성민우회, 성남여성민우회가 있다. 6월 19일에는 진주여성민우회가창립되었는데 이곳은 지금의 본부형태를 띤 지부이다. 앞으로 지부활동을 하려면 최소한 상근인력과 사무실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는 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내용은 주부대중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고민과 이를 해결해 나간 실천적 모색들이다. 생활과제운동과 여성권익 운동이 상호보완하면서 때로는 긴장관계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각각의 운동이 개별적으로 전개되기보다 총체적인 관계속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해 나갔음을 볼 수 있다. 조직구도를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변수는 다음의 네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가 지도력과 회원층의 계층적 성격이다. 생산직 여성노동자 운동을 포기한 데에는 이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 민우회 회원과 지도력은 사무직과 전업주부운동을 잘 할 수 있는 인적 구성원이었다. 둘째. 조직대상층과 대외적 홍보활동의 일치 여부이다. 초기 교육문제에 관심있는 주부회원이 많을 때에는 교육문제가 핵심홍보사업이 되었지만 이후 포괄적 주부조직으로 정리되고 나서는 포괄적인 이슈를 다루게 되었다. 셋째 대중조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실천활동의 유무가 중요한 관건이 되었다. 초기 일상적인 실천활동이 개발되지 못해 생협조직을 띄운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넷째 운동적 상황 및 재정적 토대이다. 그 시대가 시금히 요구 하는 상황을 고려하고 단체의 재정적 상황을 고려해서 조직구도 를 정하게되었다. 생협활동이 중심축을 이루면서도 95년을 전후 해 지역활동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민우회가 생협활동가 지회활동 을 양축으로 세운 것 등이 여기에 속하고 상담소 활동에서 지역활동 강화 사업이 늦어진 점은 재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3. 생활과제 운동

1) 교육운동

교육문제는 민우회 초창기에 중요한 사회문제로서 주부들이 가장 문제의식을 느끼는 분야였다. <전교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교사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교육운동은 교사의 단결 권을 주장하는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으며 학부모들은 과외비같은 사교육비가 엄청나게 들어 고통스러웠고 학생들은 입시중압감 때문에 한해에도 수십명이 자살을 택하는 지경이었다. 1987년 11월 민우회가 앞장서 '정화여상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 하여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여론형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다음 해에는 학부모들의 관심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를 논의한 끝에 어머니회같은 학교내의 공식기구에 민우회 회원들이 참여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학부모운동을 이끌어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 결과 5월 13일에 <서울교사 협의회>와 공동으로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하는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이 토론회는 교육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함께 교사와 학부모가 진정으로 만난 최초의 토론회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이어 88년 6월 18일 동숭동 대학로에서 '자살학생위령제 및 참교육 실천대회'를 다른 4개 단체와 공동개최해 사회에 큰 반향 을 일으켰다. "시험없는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는 애도의 뜻으로 시작하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 낭독으로 마무리 된 이행사는 88년 상반에만 45명의 학생들을 자살로 이끈 비인간적인 교육현실에 대한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하반기에는 과외허용이 결코 교육정상화를 위한 근본대책이 될 수 수 없음을 발표하고 학교 교육정상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89년들어 소모임을 통해 활동했던 몇몇 회원들이 학부모회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가 창립(89.7)되자 교육문제 활동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2) 환경운동

생협운동이 단순히 건강한 먹거리 공급에만 초점을 맞춘 활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협창립 이후 환경운도에 적극 나서게 된다. 90년과 91년에는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을 거부하는 다양한 활동과 우리 농산물 먹기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꼬 92ㄹ년부터는 유기농업에 대한 홍보활동을 전개하였다. '생산자, 소비자 만남의 잔치'를 통해 농민과의 연대의식 을 다져나갔고 '환경과 밥상을 살리는 나눔장터'를 통해 일반주부에게 유기농산물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해 나갔다. 물문제에 대한 홍보사업은 마침 90년 7월 정부가 신도시 건설에 쓰일 골재를 팔당호에서 채취한 다는 발표를 함으 로써 불붙게 되었다. 8월에는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인 THM이 검출되고 수도물의 오염도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공해추방운동연합>여성위원회, <경실련> 여성위원회, <정농회>소비자협의회. <주부아카데미>가 연대하여 <수도물 살리기 운동연합>을 만들게 된다. <수도물 살리기 운동연합>은 정부의 수돗물 정책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발표하고 수차례의 성명서 발표와 함께 공개질의 항의방문 토론회를 진행했으며 11월 10일 에는 환경처 앞에서 피켓 항의시위를 열었고 골재채취에 대한 설명회마다 쫓아다니며 소리높여 우리주장을 강조했다. 드디어 정부는 91년 7월 팔당호에서 골재채취를 백지화 하였다. 이는 다양한 방법의 압력과 전문가들의 조력, 3년에 걸친 수돗물 오염파동을 겪은 후에 환경에 대한 시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얻어낸 성과였다. 91년 3월에는 두산전자에 의한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이 일 어난다. 민우회는 즉각 성명서를 발표한 후 대구로 내려가 진상조사를 하고 각 정당을 초청해 '수질관련 정책과 법규' 라는 제목의 정책토론회를 개최하여 정당에서도 환경오염에 대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였다. 물문제 이외에 91년 4월에는 쓰레기 분리수거 실태조사를 하였고 이 결과를 토대로 환경처가 주최한 쓰레기 분리수거 관계회의 에 참석하여 우리의 입장과 요구를 전달하였다. 이는 쓰레기문제로가지 관심영역을 넓히는 계기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종량제 감시활동과 쓰레기 문제해결을 위한 녹색주부의 역할, 지역운동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생협운동만큼이나 민우회 환경활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 지하고 성과를 올린 사업으로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운동과 소각장 설치 반대운동을 들 수 있다. 93년 94년에 서울의 노원구, 강동구, 산본 지역에 소각장 설치 계획이 구체화 되면서 우리나라의 쓰레기 정책이 소각위주라는 점을 인식하고 소각장 설치 반대운동을 벌이개 된다. 이는 지회가 지역여성운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게 되었고 지역 내에서 공신력을 확보하게 되어 이후 김은경, 김영숙회원 웸O 지방의회에 진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업은 제도적 정책적 뒷받침만 있다면 주부들의 실천력 이 대단함을 보여준 사례가 되어 환경부와 서울시에서 각각 표창을 받기까지 했다.

3) 인천 해님방의 지역운동

지금도 많은 자원봉사자가 끊이지 않는 해님방의 공부방은 초등학뼈C 학습과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 94년부터 중학생 공부방도 운영하고 있다또 지역여성 대상으로 한글교실, 영어교실도 주 2회 열고 있다. 88년 10월에는 가족 계획운동의 하나로 널리 시행된 복강경 수술의 후유증 문제를 다루는 간담회를 개최, 각 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병원이나 보건소는 복강경 수술환자가 많을수록 국가에서 보조받는 시술비 가 많아지기 때문에 홍보를 통해 주로 강제로 환자를 끌어 모았고 주로 저소득층 여성에게 시술하였으며 후유증, 합병증에 대한 사전교육 없이 반강제로 수술을 강요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또 하나의 사건은 어린이들의 '침뱉기'부업 이었다. 사람의 침은 노인들의 백내장, 노화방지 약품의 원료가 되는데 이 원료를만들어 일본에 수출한 동아제약은 십정동 같은 가난한 지역에서 돈을 주고 침을 수거해갔다. 100cc당 250원씩 받고 하는 이 부업을 열심히 한 이들은 초등학생들. 아이들은 껌을 씹어 침이 빨리 생기게 해서 하루평균 300cc정도를 뱉고 750원을 받았다. 침을 뱉고 나서는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목이 아픈 경우도 있고 안나오는 침을 억지로 뱉다가 쓰러진 아이도 있어 십정동에서 큰 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가 여론화되고 나서 이 부업은 사라졌다.

4. 여성권익운동

가족법 개정운동의 활동은 <여연>이 89년 가족법 개정 특별위를 설치하면서 시 작됨. 그 밑받침이 된 단체가 민우회이다. 각종 토론회, 서명운동 등 여러 활동 끝에 12월에 가족법이 개정되었다. 이후 가족법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세법 개 정, 재산분할 청구권의 실질 확보를 위한 노력들을 했음. 또한 가사노동가치 인 정사업을 수행하였다. (전문가 대체 비용법에 의한 가사노동의 가치가 88만원정 도라는 조사결과 발표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음) 그 밖에 96년 미인대회 방송중계에 대한 대책활동. 매매춘 대책활동. 건강한 가족문화 형성 위한 '열린 가족 이야기 한마당'과 '부부 24계명'발표 성폭력 예방활동 등 전개

5. 지방 자치 참여운동

91년 부활된 지방의회 선거는 여성의 지방자치 참여가 여성운동의 새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갖게 함. 이를 위해 민우회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도록 격려, 감시하는 일과 우리의 대표를 내보내는 것에 힘을 집약. 95년 6월 27일 개표결과 - 6명 후보 모두 당선 # 광역의회 - 이금라, 홍미영, # 기초의회 - 김영숙, 김은경, 유송화, 최찬애

6. '사회주부'대회

창립 10주년 맞으면서 그동안 건강한 주부들의 힘으로 벌여온 사업을 집약시키 고 이를 사회적으로 알려나가기 위해 민우회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주부상을 '사 회주부'라는 용어로 함축시키고 '21세기 주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제 1회 사회주부대회 를 개최(97년)하였다. 사회주부선언의 내용 : 1)사회주부는 자신을 돌보고 가꾸며 살림의 주체로 민주가정을 꾸린다. 2) 진정한 인간교육, 깨끗한 자연환경위해 노력 3) 시민운동에 적극동참 4) 민주정치의 주역으로 5) 여성차별 없애기 위해 법과 제도의 개선에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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