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돌멩이 된장찌개의 비밀


홍선미

아버지가 쉰살이 되던 날, 그와 나눈 대화를 나는 기억한다. 그는 여느 때처럼 긴 다리를 펼치고 앉아 체조에 열중해 있었다. 불현듯 그가 마침내 쉰살이 되었다는 걸 기억해낸 나는, 그가 어쩐지 불쌍해져서, 그리고 사람의 한 生이라는 것이 두려워져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빠, 쉰살이 되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저처럼 젊은 것들이야 학교를 간다 취직을 한다 결혼을 한다... 인생에서 아직 겪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막연한 기대 같은 걸로 산다지만, 아빤 이제 학교도 끝마쳤고 결혼도 해봤고 직장생활도 실컷 하셨으니 무슨 재미로 사신대요?"

(설마 이런 싸가지없는 질문을 아버지한테 했으랴, 생각하겠지만 정말로 나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궁금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세월, '그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이.) 그러자 그는 "이놈아,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스무살엔 스무살 때만 태양이 뜬다고 생각하겠지만, 쉰 살에는 쉰 살의 태양이 떠오르는 법이다. 너는 들어봤느냐 순수 오십, 이란 말을?"이라고 반문하면서, 약간은 허풍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주름잡힌 웃음, 을 터뜨렸다.

순수 오십..... 그럴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 매우 단단한 편견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나 쓰고 보니 비겁하다. 다시. 나는 나의 부모에 대해 좀처럼 버리기 어려운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늙은이들, 이라고,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아버지/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자꾸만 그들을 밀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내 안에.


그런데, '오십'이 된 것을 비웃는, 나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순수'를. 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고 눈이 밝아지면서 나는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이 사람은, 자신의 딸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자신의 오십세에 '순수'를 다짐하는, 결기를 세운 하나의 생명이다.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자못 순수해 보이는 태양이, 눈, 부시게 떠오르는 것도 같은.

그때까지 나는, 그가 무협소설광이라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조금은 우습게 여겨왔다. 도대체 그런 종류의 로맨티시즘 혹은 비장주의에 사로잡히는 감수성이, 그 마음의 정황이 도무지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런데, 오십세에 자신의 '순수'를 소리내어 다짐할 수 있는 저 사람은, 그 눈물겨운 사랑과 의리의 세계를 정말로 믿고 있다는 것을 나는 순간 깨달았다. 믿음이 부족한 나는, 꿈없는 소녀인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사람이 구름을 타고 날아다닐 수는 없다. 사람이 축지법을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사랑을 위해 죽을 수는 없다. 사람이 의리를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런 일은 무협소설에나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렇지 않다. 벌써 죄많고 아직도 꿈많은 순수 오십세의 사나이는,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해질 날을 진지하게 기다리고 있다. 이럴 수가.

기본적으로 그와 나는 피차에게 그다지 이상형의 딸/아버지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이런 일화가 존재한다.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흔한 저녁, 어머니는 고등어를 굽다가 잠시 옆집 아줌마에게 무슨 볼일인가를 보러 가기 위해, 딸년인 나에게 '고등어 좀 보라'고 외치고 나간다. 방에서 뭔가 외로된 사업에 골몰하던 나는, 다소 짜증스럽게 "아니, 도대체 나보고 고등어를 어떻게 보라는 거야? 나 고등어 못 봐!"하고 대답하지만, 이미 어머니는 사라진 뒤다. 잠시 후 아버지가 마루에서, "너 뭐하냐 엄마가 고등어 보래잖냐?"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한층 짜증스러워진 나는 일단 방에서 나와서 "고등어를 어떻게 봐야 하는 건데요? 저 고등어 안 구워 봐서 몰라요....투덜투덜. (어차피 고등어 좋아하는 사람은 아버지고, 오랜 세월 드셔보셨으니 아버지가 잘 구우시겠네요 고등어구이가 그렇게 소중하시면 직접 보시죠 왜? 엄마 아니면 딸년만 고등어를 구우라는 법이래도 있든가요)"

다음순간 아버지 벼락을 치셨다. "그 나이 되도록 고등어 하나 못 굽고 공부는 해서 뭐하냐? 니가 그래가지고 무슨 일은 제대로 하겠냐?" 아니 이건 또 웬 비약이냐. 고등어 구우라고 보낸 학교였단 말이냐 젠장. 그래서 뭔가 말을 하려고 몸을 움직였는데, 아버지는 어지간히 약이 오르셨던지, "꼼짝하지 마! 누가 너보고 움직이라 그랬어? 거기 꼼짝하지 말고 서 있어!" 오케이 좋다. 그러니까 고등어도 못 굽는 딸년인 나는 내 몸을 내 맘대로 움직일 권리도 없군 그래. 그렇게 해서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순수오십 선언, 은 지금도 나에게 묘한 감동을 준다. 설사 그가 그렇게 순수하지 못한 오십대를 살고 있더라도, 그것이 일종의 자기기만이거나 혹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에서 나온 허세였다고 해도, 그 마음만은 참으로 순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고등어도 못 굽던 괘씸한 딸년은 자라, 저 먹을 것은 대충 굽고 지지고 볶을 수 있는 백수가 되었다. 특히 아이러니하게도, 이 백수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 냉장고에 말라비틀어진 파 몇 조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때에도, 멸치로 국물내고 어떻게 저떻게 신김치며 새우젓으로라도 늙은 애비의 입맛에는 귀신같이 들어맞는 된장찌개를 끓여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니가 어떻게 된장찌개를 이렇게 잘 끓이냐. 참 신기한 일이다. 재료가 훌륭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성을 들이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참고로 나는 여전히 불손하고 대충대충인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그것 참."

고등어와 된장찌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믿는, 순수오십의 사나이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그 딸이 학교에 다닌 이유는 고등어를 잘 굽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비록 그 시절 불 위의 고등어 '보는' 방법도 몰랐지만 그 딸이 어떤 일도 제대로 못하게 되지는 않았다. 최소한 아버지를 조금쯤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이 돌멩이 된장찌개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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