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치즈 카나페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

홍선미



나는 쉽게 잠드는 타입이 아니다. 우리 집 내 방에서도 술을 마시고 돌아온 날이면 새벽까지 뜬눈이고, 여행이라도 가서 잠자리가 바뀌면 한밤내 전전반측 괴롭기 일쑤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말똥말똥 점점 깨어서는, 마치 불이 붙여지기를 기다리는 담배처럼 가지런해지는 것이다. 그런 때 나를 구원해 주는 것이 소설책들이다. 한국놈 일본놈 양놈 들의 소설들. 운이 좋으면 친구로부터 혹은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새 책을 읽을 수 있지만, 뭐 불면의 밤이라는 게, 하늘이 흐려서 우산을 가지고 가면 비가 안 오다가, 설마 하고 나갔다 꼭 우산을 사게 되는-혹은 거냥 맞게 되는-요즘 비와 같아서 예고가 어려운 법, 대개는 준비없이 있다가 예전에 읽었거나 읽다 만 후 책꽂이에서 늙어가는 책들 중 하나가 간택되게 마련이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아마 내 안에 죽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보이는 삶은 자질구레하고 민망한 것들로 가득차 있다. 왜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픈지, 왜 오랜 기간 섹스를 못하면 우울하고 초조해지는지, 왜 사람 많은 곳에는 그럴싸한 옷을 입고 가고 싶어지는지 나는 용납하고 싶지 않다. 마치 아이가 빽빽 울고 있는 동네목욕탕에 들어앉아 있는 기분이라서, 확 박차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바깥으로 나가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죽어버리는 대신 멀쩡히 소설을 읽고 앉아있는 걸 보면 역시, 살고 싶어하는 욕망 또한 못지않게, 징그럽게, 커다랗다. 매순간 나를 잡아찢는 머리 둘 달린 뱀을 데리고 사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고,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나는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로 도망친다.

다시, 소설을 왜 읽는가? 오래전 어떤 선배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그 때 나는 "상상력을 잃지 않으려구요."라는 대답을 내었는데, 그건 뭐 좀 그럴싸해 보일까 하는 순간적인 계산이 만들어낸 즉흥적인 생각이었다. 그 대답이 나를 오랫동안 흔들게 될 줄은 몰랐다. 삶의 다른 측면과, 다른 입장과, 다른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지? 욕심? 환상? 위선? 착각? 광기?

그러나 이런 식의 이야기는 맞은편에서 술마시고 있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기 딱 좋은 사변일 뿐이고, 결국 핵심은 어떤 소설들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데 있다. 너무 재미있는 소설들. 시간을 잊게 해 주고, 공간을 잊게 해 주고, 상황을 잊게 해 주고, 나를 삼켜버리는, 매혹적인 아가리. 물론 아무나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오십 권 중 마흔 아홉 권의 소설은, 서점 진열대에서 그 껍데기를 들추어 펼쳐지는 아무 페이지의 아무 문장 하나만 읽어도 벌써부터 지겹다.
"...그녀는 돌연 멍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팀은 깜짝 놀라 에디를 살폈다..." "...완연한 봄..." 오오오오. 제발 부탁이야 이런 것들은 책으로 만들지 말자. 종이가 아깝잖아.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이런, 먹다 남은 탕수육같은 것들 때문에 베어져야만 하겠니. 그런 것들이 거의 절대적으로 대부분이고, 가끔 기적이거나 실수거나 둘 중 하나에 의해 미치게 즐거운 읽을거리들이 내 인생으로 걸어들어오는 얼떨떨한 일이 생긴다. 하루끼, 나의 나만의 하루끼, 그의 작품세계가 어쩌고 하는 평론은 개에게나 줘버리고 나는 그저 그를 즐길 뿐인, 하루끼. 최인훈. <광장>을 반복해서 뜯어고치는데 인생을 퍼쓰다 결혼도 안한 또라이 천재. 좋아좋아 훌륭합니다. 샐린저. 에밀 아자르. 콘라드. 레마르크. 박상륭. 카잔차키스. 그리고 그리고. (나는 또 내 맞은편에서 술마시고 있는 당신을 지루하게 하고 있군 이까지만 할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같다, 라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사람이 좋아진다. 이건 개그맨 이경석이, 자신의 여자친구는 자기가 세 번 웃길 때 자기를 한 번은 웃겨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랑 비슷한 심리다. 재미의 코드가 같다는 것, 친구가 되기 위한 매우 치명적인 요인이다. 오늘밤에는 잠이 안 올 것 같진 않다. 열한 시부터 졸렸는데 벌써 두 시다. 누군가가 내가 잠들 때까지 나에게 책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상상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조건은 까다롭다. 맑고 낮은 음성일 것, 떨거나 의식하지(윽!) 말 것, 읽는 것을 스스로도 즐길 것. 읽어주었으면 하는 것은 오래전에 읽은, 하루끼의 <빵가게습격>이다. 아, 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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