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저자 : 반디나 시바
책 이름 : 살아남기
출판사 : 솔
헤마





처음 책 <살아남기>에 대한 서평을 쓰기로 약속한 지가 두 달이 지났다. 한 달 동안이나 손도 대지 못할 글을 쓰겠다고 버럭버럭 우기며 버틴 것은 이 책이 나에게 너무도 특별한 느낌을 남겼기 때문이다. 생태주의는 당시까지 나에게 접 근하기 어려운 화두였고, 더군다나 에코페미니즘이란 서구의 극성스런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에게나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환경사 랑(!)은 이미 분리수거부터 시작해서 음식물 찌꺼기 버리지 않기까지 온통 전업 주부들에게 떠맡겨진 일이었기 때문에 여성을 또 다시 환경과 연관시키는 것은 약삭빠른 보수주의 외의 다른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살아남기>는 환경을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당위로써가 아니라 경험으로써 보여줌으로 써, 나의 사고틀 밖에 있던 '생태'라는 가치를 마음 속에 스며들게 했다.

여성과 환경을 결부시키는 논의는 자칫하면 '여성은 본질적으로 자연과 가깝다' 는 본질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그것은 남성을 자연의 지배자, 과학의 담지 자로 보는 남성중심적 논리와 구별되지 않는 측면도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기 존의 남성-여성의 이분법을 강화하고 여성들을 더욱더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 그러나, 시대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많은 시대, 많은 곳에서 여성들이 자연을 돌보고 자식을 재생산하는 일을 맡아온 것도 사실이다. 굳이 여성이 월경을 경 험하고,자신의 몸에서 10개월동안 생명을 키운다는 생물학적 사실을 꺼내지 않 더라도 많은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자연을 경험한 육체를 소유해 왔다. 인도의 농촌 혹은 삼림지대 여성들 역시 오랫동안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 생계부양자 라는 그들의 사회적 역할을 통해서 자연과 유대감을 가져왔다. 이들은 그들의 영토가 식민화되고 분할되는 동안에도 생명파괴적인 활동에 참여하거나 타지로 이주해야만 했던 남성들과는 달리 자양물, 음식, 식수 공급자라는 자신들의 역할 을 통하여 계속해서 자연 속에서의 삶과 연관되어 있었다.

제 3세계의 여성들은 많은 측면에서 인도의 여성들과 닮았다. 나와 당신의 할 머니가 부여받았던 살림이라는 짐은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알뜰하게 잘 쓰는 이 상의 전면적인 생계활동을 요구했다. 텃밭에서 일군 배추와 무, 고구마 등으로 가족들의 끼니를 떼우거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먹을 물을 준비하는 일, 아 궁이에 장작을 떼는 일 등 생존에 필요한 대부분의 일이 모두 그들의 차지였다. 이들은 돈 없이 자연이 말없이 주는 선물을 요리저리 이용하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책의 저자 <반디나 시바>는 제 3세계의 여성들이 이와 같이 생계부양자 로서 자연과 밀착된 관계를 가져왔던 것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생계유지 경제에서 자연과의 동반적 관계를 통해 살아가고, 생산하고, 재생산하 는 과정에 대한 전문가였던 제 3세계 여성들은 서구에 의해 폭력적으로 이루어 진 근대화 과정에서 배제되고 만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연과의 관계는 (자본주의 적) 부의 창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비합리적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 나, 이러한 여성들의 자연친화적 관계,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의 배제는 역으로 근대의 환원주의적 패러다임을 깰 수 있는 창조성을 여성들에게 부여한다고 시 바는 주장한다.

그는 근대의 생태위기가 바로 자연에서 생명을 제거하고 경제적 가치로서만 자 연을 바라본 서구의 환원주의적 과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인구의 1/4이 절대적 빈곤과 기아 상태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안, 지구 반대편의 1/4은 무엇이 든지 끊임없이 소비한다. 북반구에 의한 남반구의 지배,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 배, 서구화된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 그는 지식과 권력의 유착은 환원주의적 체계에 본질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흔히 '과학'이라고 하는 것을 공격 적인 서구의 패러다임일 뿐이라고 보고, 이것이 다른 지역의 환경친화적인 전통 적 지식을 배제해 오므로써 오늘날의 전지구적 환경위기를 초래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그는 제 3세계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일어나던 소규모의 비폭력 생태운동을 그 대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운동들은 생존권이라는 최소한을 요 구하지만 바로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계에서 살아갈 권리와 결합되기 때문에 희 망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는 이 운동들에서 그가 가장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여성적 원리'를 재정립하는 모습을 본다.



인도의 여성들은 상상과 실제에서 자연의 내밀한 일부이다. 자연은 어떤 차 원에서는 여성적 원리의 상징적 화신으로 받아들여지며, 또 다른 차원에서는 생명을 생산하고 생계를 제공할 수 있도록 여성적 원리에 의하여 양육된다. (p83)



그는 생계농업 과정에서 자연과 여성이 맺는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삶에 생명 력을 불어넣는 힘으로서의 여성적 원리를 이론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녀 는 오로지 생존을 위한 매일매일의 투쟁 속에서 환경과 개발위기에 정면으로 맞 서야 하는 가난한 농촌여성만이 아득히 먼 옛날부터 어떻게 생존하는지를 알아 왔기 때문에 위기에 대한 해결책 또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여성적 원리란 오직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다 소 모순적으로 보이나 그는 간디의 비폭력 투쟁을 '여성적 원리'의 투쟁으로 바 라보고 있으며, 간디의 투쟁이 '여성적'인 것은 그것이 단순히 '비폭력'이기 때문 이 아니라, 이 투쟁이 자연, 여성, 그리고 남성에게 창조적인 존재 및 인식 형태 를 회복하게 하는 포괄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언뜻 보 면 남성/여성의 이분 구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성성을 여성에게로 투사하는 듯이 보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여성성 자체를 기존에 흔히 얘기되던 남성성과 여 성성을 함께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대지모로서의 여성, 생명의 창조자로서의 여성과 같은 상징에도 역시 많은 지면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어떤 본질적인 '여성'을 이미 상정하 고 있다는 혐의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여성,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 이라는 책에서는 시바의 이러한 접근을 본질주의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 지만 나는 그의 '여성','여성적 원리'는 본질화된 개념이라기 보다는 경험적으로 자연과 밀접한 존재로서의 여성의 창조적 힘에 대한 일종의 상상력을 제공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또한 많은 부분에서 '성(gender)'을 초월한 '여성적' 투쟁들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가 '인도의 여성들'이라고 말할 때 에는 단일 집단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구체적 경험 속에서의 구체적인 '여성'을 지칭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인도 전역에서 여성들은 유칼립스가 물, 토양, 식량 체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이 나무의 보급에 반대했다. 1983년 8월 10일에 툼쿠르 지역 바르하와 홀라할 리 마을의 여성들과 몇몇 농부들이 무리를 지어 삼림 양식장으로 행진을 해 서 수백만 그루의 유칼립스 묘목을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타마린드와 망고 씨를 심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체포되었지만 이러한 저항 행위는 유칼립스 재배로 인해 토양과 물 체계가 실질적인 계획하에 파괴되는 것에 대한 항변 이었다. 이는 또한 모든 생명 종들을 단일 종(유칼립스)으로, 모든 요구들을 하나의 요구(펄프 산업의 필요)로, 모든 지식을 단일한 지식(세계은행과 삼림 관리자들의 지식)으로 환원시켜온 삼림 과학의 지배에 조용하게 도전하는 것 이었다. (p147)



인도에서는 숲이 생활의 근거지이기 때문에, 서구 자본과 지배엘리트 간의 공 모에 의한 숲의 파괴는 곧 인도의 하층민들에게 '더 이상 생존불가'를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은 북반구의 가구산업을 위해 나무를 베어가거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혼합림을 갈아 엎고 단일종의 나무를 심는 것에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업용수를 마련하기 위해 만든 댐 때문에 자신들의 먹을 물이 고갈되고, 녹색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토양이 빈곤화되는 것을 겪으면서 여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환경이란 감상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곧 생 존이었다. 그리고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는 존재는 여성이었다. 따라서 저항 의 주체는 많은 수가 '실제로' 여성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매여 이것은 우리의 산과
숲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생명을 준다.
살아 있는 나무와 시내의 생명을 품에 안아라.
가슴에 끌어 안아라.
산을 파헤치는 것에 저항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숲과 시내에 죽음을 불러온다.
생명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신시아리 카할라에서.

이것이 바로 인도의 유명한 칩코운동이다. 칩코운동은 숲을 보호하기 위하여 1970년대에 인도의 여성들이 나무를 끌어안고 저항하면서 시작된 운동으로 이후 여성조직의 대중적 토대가 된다. 칩코는 생존을 위협하는 상업적 임업의 끝없는 탐욕에 저항하면서 골짜기에서 구릉으로, 산으로 옮겨간다. 이 조용하고, 평화적 이고 그러나 강한 운동을 직접 경험한 시바가 생명을 품고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책의 전반에 가정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간디는 '세상에는 모든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큼 충분한 양이 있지만, 소수 의 탐욕을 채우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앙드레 고르는 나아가 빈곤이 바로 이 소수의 탐욕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빈곤은 원래는 풍부 했던 자원을 출입통제 등의 기제를 통해 인공적으로 희소화 시킴으로써, 특권층 의 과시욕을 위해 특수 고안된 여러 가지 물건들을 생산하고 소비해냄으로써 사 회적으로 재생산된다. 빈곤을 없애기 위해서는 따라서 특권층의 무분별한 소비 가 가능하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고 이것은 바로 재생가능한 환경을 위한 전제이다. 시바 역시 이러한 점을 지나치지 않고 있는데, 시바에게서는 이러한 빈곤층과 특권층의 분리가 제 1세계와 제 3세계 사이에서 중심적이다. 제 3세계 의 근대화 과정에서의 빈곤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며 거기에는 토착민들에 대한 임업권과 광산 채굴권의 박탈, 제 1세계를 위한 댐 건설 등이 주요한 역할 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인도에서는 이 인공적으로 강요된 빈곤에 대한 투쟁을 주 로 여성들이 해왔다. 그리고 그 투쟁은 바로 환경을 살리고 자연을 그 본연의 순환고리에 돌려놓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도시에서 낳아서 도시에서 성장한 근대화 3세대인 우 리들은 과연 자연에 얼마만큼의 유대를 느끼고 있는 것일까? 자연을 한 번도 경 험해 보지 못한 육체, 먹을거리, 입을거리, 잠잘거리를 단 한 번도 직접 자연으 로부터 얻어보지 못한 육체가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친환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바의 책이 나에게 던져준 과제는 바로 이것이다. 생태주의가 환경친화적인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게 되는 것이라 면 아스팔트에서 아파트 숲만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그 아이가 여자애라고 할지 라도- 과연 시바가 말하는 '여성적 원리'를 재구성해 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어떠한 방식으로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 연관된 질문을 또 하자면, 그러한 자연과의 경험적 연계가 아닌 다른 방식-이를테면 지속가능한 개발과 같은-으로는 근본적인 변혁을 이룰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미 이만큼 거대해져버린 사회에서 소비를 일정부분 포기하 거나 의식주를 자연으로부터 해결하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이거나 공허한 외침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러나, 어쨌든 이 많은 의문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의 사고틀과 행동양 식을 많은 부분 변화시켰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인 1988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인도에서 출판된 10년 쯤 묵은 책이 한국의 한 여학생에게 감동을 주었고, 그 책에 대해 친구들에게 쉴 새 없이 떠들도록 했고, 이후로 환경에 관 련된 책을 읽게 하고, 무분별한 소비를 좀 자제하게 만들었다면 시바는 어떤 면 에서 책을 통해 자신이 타인에 끼치고 싶어하던 영향력을 모두 행사한 게 아닐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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