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비디오 아트] 새로운 페미니즘 미학 / 정치학의 실천
  성 은 이
¤ 제목    : 페미니즘. 비디오. 미술
¤ 저자    : 김홍희
¤ 출판사 : 재원
¤ 발행일 : 1998년

1. [비디오-아트] 들여다보기 -- 서평에 앞서

'비디오 아트'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백남준' '여러 대의 수상기와 정신없이 바뀌는 화면들' 정도?
아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요? 그래도 이와 대중의 접촉이 '백남준=위대한 한국인 예술가'하는 범주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아트 혹은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 등등 용어들로 이루어진 이에 대한 담론들은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미 '아트'가 고급 예술이라는 한정된 범주를 넘어 광범위한 문화현상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으며 미학적, 형식적 요소와 더불어 그 정치성이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비디오 아트가 우리의 문화, 예술 지형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상당한 것입니다. "독립 '영화'"로 불리는 <푸른 영상> <노뉴단> 제작 비디오들이 6,70년대 서구, 이후의 제 3세계 정치적 아방가르드의 대표적인 실천으로서의 다큐멘타리와 연결되어 있으며 강력한 탄압과 통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80년대 한국 사회, 문화, 예술계의 대표적인 사조로 지칭되던 소위 '사회적 리얼리즘'의 전위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요.

또한, 기존의 영화와 TV, 이외 사진, 사운드, 기타 전자 기술의 혼성체로서 이미 매체 자체가 포스트모던적이므로 비디오를 이용한 문화, 예술적 실천은 현재 포스트모던 문화 담론의 지형과 지향점을 가장 적극적이고 첨예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비디오 아트는 소위 제도권의 고급 예술에서 시작되어, 60년대 정치, 미학적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에 의해 고급, 저급의 위계가 해체되면서 새로이 정립된 예술 문화적 실천의 첨병이 되었고, 나아가 오늘날에는 기존의 예술 제도와 일상의 간극, 생산자 수용자의 관계를 재조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80년대에 이르러 홈비디오가 인기를 얻고 이에 대중의 영상 제작과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대중이 관람 및 수용 주체이면서 동시에 창작, 생산 행위의 주체의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 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모던,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던 등의 예술, 문화 현상과 대중의 일상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비디오 아트에 대해 고찰해 보는 것은 지금의 예술, 문화적 실천의 현주소와 지향점을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비디오 아트에 대한 논의는 이제까지 활발하게 논의되어 온 '페미니즘 문학이론' '씨네 페미니즘' 이후의 새로운 페미니즘 미학과 실천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2. 『페미니즘. 비디오. 미술』

이제까지 비디오 아트에서 있어온 페미니즘적 실천들을 해석, 정리하는 동시에 매체 발달에 의해 변화하는 사회, 문화 지형 안의 새로운 페미니스트적 지향점을 짚어보는 방대한 사적 작업을 토대로 한 책『페미니즘. 비디오. 미술』이 98년도에 발행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큐레이터이자, 광주비엔날레 조직위원을 맡고 있는 김홍희씨의 홍대 미술사 박사 논문에 비디오와 페미니즘 이론의 개괄적인 소개 부분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우선, 저자는 비디오 아트가 포스트모던적 매체 속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초기에 모더니즘의 세례 속에서 발전했다면 이를 포스트모던 비디오로 전환시킨 중요 계기 중의 하나가 페미니즘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정리해갑니다. 이것은 남성 작가, 남성 예술 미학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가는 예술사 작업에 대항하여 여성 작가, 여성 미학의 존재와 가치를 발굴하고 이에 따라 예술사를 재기술하는, 기존의 문학, 미술, 영화 등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 온 페미니스트 예술사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디오와 페미니즘을 개괄적으로 다루는 1부와 페미니즘 비디오의 주요 작가, 경향을 1,2세대별로 나눈 2부에서 비디오 아트가 현재의 남과 여의 본질주의적 차이, 미학과 정치학의 분리를 해체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미학으로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풍부한 작품 사례들과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홍희씨의 작업은 기존의 페미니즘 미학과 이론을 근본적으로 변화, 수정하는 계기를 이루는 새로운 개념들 그리고 새로운 예술적 실천의 사례를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논의의 바탕으로 하고 있는 90년대, 시공간 개념 변화 및 반영성 등의 디지털 멀티미디어 담론들, 그로테스크와 사이보그론 등은 기존의 재현과 차이 및 정체성 등에 기초한 페미니즘 담론에 대대적인 변혁을 가하는 것들이기 때
문이지요. 저자가 페미니즘 비디오의 양대 특성으로 주목하고 있는 '나르시즘'과 '그로테스크'에 대해 논의하는 3부에서는 특히, 90년대 신체 담론과 함께 새로이 부상하는 페미니즘 미학의 주요 경향인 그로테스크를 사이보그 개념과 접목시켜 새로운 성/정체성의 구성 가능성까지 타진해 보고 있습니다.


3. 그로테스크-사이보그 : 서구 신체 미술 담론의 현주소

그로테스크라는 용어는 비교적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뭔가 기이하고 과장된 듯이 보이는 것들에 붙이는 명칭이지요. 고야, 프랜시스 베이컨, 마그리트의 그림들 혹은 소위 컬트영화로 불리는 <록키 호러 픽쳐 쇼><핑크 플라밍고><이레이저 해드><델리카트슨 사람들> 중의 하나라도 아신다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습니다. 아니면 <프랑켄슈타인>이니 <드라큘라> 심지어 여러 SF물들(<에이리언>에서 최근의 <맨인 블랙>까지)의 역겹고 더럽고 가끔 소름끼치기도 한 분위기를 기억하셔도 됩니다.

그럼 이러한 분위기, 표현들이 어떤 담론을 가능하게 하는지 알아보지요. 저자가 차용하는 그로테스크 담론은 바흐친의 "카니발 그로테스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로테스크는 시대에 따라 그 양식과 의미가 변화를 하는데, 처음에는 서구에서 '고전 양식'의 변방에 있던 고대 로마의 식물, 동물과 인간 신체의 부분들을 얽어 만든 장식적 패턴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며 16세기 프랑스의 '라블레'라는 작가에 의해 신체 부위를 묘사하는데 쓰이면서 최초로 '그로테스크 신체' 개념이 작품에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문학 작품『가르강튀아 팡다그뤼엘』이 대표작입니다.) 후에는 이것이 잊혀졌다가 20세기에 미하일 바흐친이란 이론가에 의해 다시 소급되어온 것이지요. 그는 17세기 이후 신고전주의, 낭만주의등 각기 시대의 주류 사조에 의해 변경되어 모더니즘에 이르러 형식주의적이었던 이것의 내용적, 정치적 함의를 부각시켰다고 합니다. 그가 강조한 것 중의 하나가 파편적인 신체, 혹은 신체의 물질성을 강조한 것인데, 이것은 90년대 이후의 신체 미술, 신체 담론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최근 서구의 문화, 예술 담론은 "성 정치학/ 정체성의 정치학"에서 이제 바흐친의 그로테스크론과 함께 "신체의 정치학"으로 자리 이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체와 정치의 관계? 그건 '정상, 표준'을 벗어나는 이러한 그로테스크 바디가 신체적 기형 이상의 반항과 위반을 대변하는 정치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바흐친은 나아가 이것을 민속 행사의 하나인 카니발과 연관시킵니다. 그로테스크 바디는 이전의 재현과 감상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카니발 속에서 직접 참여하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신체
(카니발에서 그로테스크 바디가 되지요)는 과도하게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속에서 세상과 교류하며 세상은 '삼킴'으로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음식은 신체의 한계를 초월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인간은 세상과의 만남을 입으로 물질적으로 신체적으로 수행하게 된다고 합니다.
카니발의 연희, 절제를 모르는 음식들의 향연 등등 모두 우리의 신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먹는 입, 감촉, 그리고 살들, 연희를 벌이는 신체의 욕망... 신체는 카니발 그로테스크의 중심이 됩니다. 이때 더욱 부각되는 이미지는 '신체의 구멍들, 오목한 곳, 돌출된 곳들 즉 외부를 향해 열려있거나 외부와 가장 근접한 부위들, 가장 유기적이고 액체적이고 접촉적인 부분'입니다. 이에는 신체와 분리되어 나가게 되는 침, 땀, 이외 분비물, 배설물 등등이 포함되지요. 그리고 이에 교미, 임신, 분만, 낙태, 태아 등 탄생의 이미지도 포함이 된다고 합니다. 즉, 우리의 몸과 그 외부의 경계에 놓인 모든 것들을 뜻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늙음과 탄생, 죽음과 분만 등의 양극이 오고가는 곳이란 점에서 양면성을 갖습니다. 책에 있는 바흐친의 말을 인용해 볼까요.

오목하고 구멍 꿇린 이러한 기관들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는데, 그것은 신체와 신체, 신체와 세상의 경계가 그 안에서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상호 교환과 상 호 경사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그로테스크한 신체 생 활의 주요사건 신체적 드라마의 행위들이 모두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그 밖에 땀 흘리고 코 풀고 킁킁거리는 등의 분비 활동 은 물론 성교, 임신 다른 신체에 의해 삼켜지고 잘려지는 모든 행위가 신체와 외부의 경계 늙은 신체와 새로 태어나는 신체의 경계 사이에서 수행된다. 이 모든 사건에서 인생의 시작과 종말이 밀접하게 연결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그로테스크 바디는 형이상학적이고 폐쇄적이고 대칭적이고 자족적인 고전의 신체와는 다르게 외부에 대해 열려있고 또한 다른 기관, 대상, 세계와의 결합이 가능하며 물질적이고 저속 취향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것으로서 의의를 지닙니다.

그로테스크가 어떻게 페미니즘과 관련을 갖게 되는가? 그것은 크리스테바의 '비천함'
(abjection) 이론에 의해 구체화됩니다.『공포의 파워 : 비천함에 관한 논고』(1982)에서 그녀는 카니발 그로테스크와 라캉의 주체성 이론을 접목시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이 비천함으로 불리는 것을 '여성적 표상'으로 규정하여 그로테스크를 여성성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비천함은 오이디푸스기(아동이 어머니와의 '외상적' 분리를 통해 상징계로 진입하게 되는 시기를 칭합니다.-라깡) 이전의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지 않는 여성, 모성의 공간을 은
유한다고 합니다. 이 비천함의 대표적인 예로는 출산인데, '이는 내부와 외부가 치환되고 내가 타자로 도치되는 전환의 순간'이라고 하지요. 즉, 비천함과 모성이 만나는 지점이 됩니다. 크리스테바의 언급을 빌자면 "학살과 생명의 정점, 주저함의 숨막히는 순간, 아름다움, 성용과 성적인 것의 명백한 거부"라고 합니다. 바흐친이 그로테스크바디의 전형으로 든 것도 "웃고 있는 임신한 추한 노파"였던 것을 봐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노쇠한 여성의 몸 등이 그로테스크의 대표적인 형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성의 그로테스크바디는 "구멍없고 세련되고 깨끗한 부르주아적 신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고전주의 신체에 대한 대항 담론으로서 신체 노출
(주로 숨겨져 온 국부, 비만에 주름진 노파의 몸 등), 성욕 표출, 전도된 복장(남장 여성), 동성애 등을 앞세웁니다.

이러한 여성 그로테스크는, 메리 루소라는 이론가에 의하면 단일 범주로서의 여성 정체성을 강조하여 본질주의에 빠지거나, 이를 해체하면서 기본적인 범주를 상실하면서 딜레마에 빠진 페미니즘에 "이란성 쌍둥이 자매" 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다고 합니다. 그로테스크라는 범주 안에서 남녀가 모두 비천함의 공간으로서의 신체와 관계되면서 기존의 성적 다름으로 상정되어 온 남/여의 구분이 와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로테스크는 단일하지 않고 배타적이지 않은 여성성, 복합적이고 모호한 여성 정체성을 유추시킨다고 봅니다.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 형성된 단일한 여성성이 아니라 이렇게 이질적인 것의 섞임, 성별의 붕괴를 담지하는 것 자체가 부계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논리를 좀 더 구체화하지 못하고 개괄적인 몇가지 주장의 나열에 그치는데, 이것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페미니즘 담론의 딜레마-즉, 본질주의와 해체주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는 현실-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렇게 여성-정체적 단일 범주의 설정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시도는 '달딸'에서 이미 있어왔고 앞으로도 좀더 관심을 가지고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

신체와 심리의 성별의 초월, 정태적 정체성의 붕괴를 수반하는 그로테스크의 궁극은? 저자는 "포스트 휴먼-사이보그"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이보그는 유기체와 기계의 혼성물로서 인간의 신체를 확장시킨다고 하는데, 도나 헤러웨이는 이를 인간과 정보시스템, 인간 공학으로 제어되는 노동과 욕망, 재생산 시스템의 시대의 유기적 피조물로서 그 기본 요소는 소통 시스템, 텍스트, 인간공학으로 디자인된 장치와 같은 기계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사이버
스페이스, 가상 현실에서 점점 비물질화 되어가고 소멸하는 신체 동시에 기아, 질병, 노화 등으로 고통을 겪는 인간의 유기적 신체와 실리콘으로 건조된 불후의 기계적 신체로 이루어진 사이보그는 죽음과 영원한 생명을 한 몸에 지닌 이중적이고 초성적 혹은 양성적인 그로테스크 바디라는 것이지요.

이런 사이보그는 그로테스크 바디의 음식 섭취와 소화, 구토와 배설 등 외부와 접촉하는 방식을 온전히 전도시킨 상태에서 형성됩니다. 즉, 음식을 부정하는 "비음식"을 통해 유기적인 신체의 살을 제거합니다. 유기체와 기계 사이에 먹고 먹히는 심리적인 식인주의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이보그 세계에서 타자의 존재와 동일시 과정으로 바탕으로한 즉, 주체와 비주체 사이의 거리를 상정한 정체적 구축 과정은 와해됩니다. 함몰과 병합 등 구강의 논리가 정립됩니다. 신체를 관통하고 파편화함과 동시에 이를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부활시키는데, 이는 대상을 먹음으로서 내부에 그 대상의 성질을 재부활시키는 식인주의적 환상과 같으며 이 속에서 기계와 인간 신체가 상호 밀착, 병합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이보그는 비유기적인 재생으로 인간 한계를 극복하면서 '정보 바다에로 함몰'되어 최초의 내적 공간 즉, 자궁으로의 복귀를 기원합니다.
(사이버 펑크 소설에서 사이버 공간을 '매트릭스-모체'로 부르는 것도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함몰의 이미지는 어머니와의 전 오이디푸스적 병합을 꿈꾸는 소외된 주체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로테스크와 사이보그 모두 부계적 상징적 질서 이전의 곳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90년대 "후기 신체 미술"로 불리는 서구 예술 조류에서는 바로 이렇게 파편화된 신체, 비천한 신체를 중심으로 한 그로테스크 바디를 재현하고 있으며 비디오 기록과 몽타주는 물론, 설치, 퍼포먼스 그리고 앞으로의 디지털 영상 재현을 포괄하는 혼성적 장르인 비디오 아트가 이를 주도하는 큰 획이 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작업의 대표적인 사례를 제시하면서 최근의 흐름을 정리해 나갑니다. 물론, 작품들을 직접 관람, 경험해야 할 것이지만 스틸사진 자료와 보충 설명을 통해서나마 우리는 논리와 개념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많은 부분들을 유추해보고 공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재현 이미지'는 편재하고 현실 세계를 둘러싸면서 소위 가상 현실을 창조합니다. '혼성hybrid'은 거의 모든 사회, 문화 현상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포스트모던' 시대를 알립니다. 각 예술 매체와 장르간의 혼성, 예술과 일상의 혼성, 인간과 기계의 혼성, 남성성과 여성성의 혼성, 문화간의 혼성......
이러한 혼성 이미지 세계의 행보가 [비디오 아트]에서 펼쳐집니다. 그리고 혼성의 장에서 변화되어 가는 페미니즘 예술, 실천 그리고 이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페미니즘. 비디오. 미술』은 이러한 의미에서 의미있는 저술입니다.


게시판         링크 모음         목 차         웹마스터에게          과월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