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근대성과 페미니즘
리타 펠스키 지음
출판사 : 거름
헤마 쓰다


    `근대성의 성별(gender of modernity)은 무엇인가?'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근대성의 성별이라고? 응, 그건 물론 남성이지. 많은 이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대답할 것이다. 우리의 일반적 관념 속에서도 근대성은 논리와 인간의 이성, 과학, 자연의 정복 등의 남성성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며, 근대성을 비판하는 포스트모던의 시각이나 페미니즘의 시각에서도 근대성은 남성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책의 서두를 보자마자 나는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미리 예감했던 것 같다. 그래, 이것은 근대의 남성성을 비판하는 책일 거야. 그러나, 나의 예감은 몇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틀린 것이었음이 판명되고 말았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계속, 그동안 내가 근대성에 대한 나의 태도에 별 반성 없이 얼마나 앵무새같은 말들을 반복해 왔는지를 의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근대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근대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참신한' 책이다.

   근대 시기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 합리화, 생산성, 억압 등 남성적인 특성의 지배를 강조하긴 하지만, 근대적 주체성의 수동적이고 쾌락적이며 탈중심화된 성격에서 입증되는 서구 사회의 여성화-그것을 찬성하건 비난하건 간에-를 지적하는 텍스트 또한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p26-27)

   리타 펠스키는 페미니즘 이론의 렌즈를 통해 근대를 다시 읽고자 하는 욕망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그의 이러한 욕망은 위의 인용 글에 나타나듯이 지금까지의 근대성 논의가 근대가 남성이냐 여성이냐의 이분법 속에 갇혀 있었으며 이러한 이분법이 근대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일편 가로막고 왜곡시켰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근대를 이 두 가지가 뒤엉킨 모순적인 과정으로 본다. 그는 근대의 복잡성과 모호성에 천착하여 근대의 구체적인 문화적 텍스트들을 분석한다. 굳이 근대가 탈근대를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말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그가 보는 근대성은 분명 이것이다라고 일반화시켜 버리기에는 놓지는 것이 너무 많을 단어인 것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1947)이라는 책에서 이미 근대의 이러한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의 자유가 계몽적 사유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데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갖고 있지 않으며 이것은 우리의-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전제를 이룬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뒤엉켜들어간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나 사회제도 뿐만 아니라 이 계몽 개념 자체가 오늘날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퇴보의 싹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믿는다.(계몽의 변증법 p49)

    여기서 계몽을 근대의 간명한 표현으로 읽어낸다면, 우리는 근대성의 양가적 성격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근대적 여성성에 관한 우리의 의식/무의식 또한 되돌아 볼 수 있다. 여성성은 보수의 시각에서건 진보의 시각에서건 근대의 바깥에 위치하는 개념으로 자리매겨져 왔고, 특히 진보의 시각에서 근대라는 억압적인 역사적 과정을 넘어설수 있는 해방적 메타포로서 표상되어 왔다. 그러나, 리타 펠스키는 이러한 시각 역시 근대적 이분법의 환영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남성들과 동일한 방식대로는 아니었지만 여성들 역시 사회 안에서 근대를 구체적으로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근대라는 시대에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경계는 각 정체성들이 서로를 넘나드는 모순적이고 흔들리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은 제 3장 상상적 쾌락이다. 부제는 `소비의 성애학과 미학'인데 백화점에 관한 분석을 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백화점에 가는 여성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백화점은 어렸을 때의 나에게는 행복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주었던 곳이고, 지금은 경멸의 대상임과 동시에 은밀한 욕구의 장이기도 하다. 이 장이 마음에 든 이유는 아마도 나의 이 모순되고 일면 반동적인 생각의 구조를 밝혀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생산이 아닌 소비의 관점에서 근대를 조명해 보려는 시도 역시 매우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19세기 말부터 소비자는 여성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이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구매를 담당하게된 계층이 실제로 여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여성으로 묘사되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은 단순한 실제 상황 이상을 이해하는 데 단초가 된다. 여성화된 소비자로서의 근대적 주체는 더 이상 이성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던 예전의 그 근대적 주체가 아니었다. 주체는 자제력을 잃고 상업주의의 이익불리기 농간에 놀아나는 희생양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상황은 여성이 자신의 욕구 중 적어도 상품에 대한 욕망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게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여성의 다른 쾌락에 대한 욕망들도 눈을 뜨게 만들어 사회를 전복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리타 펠스키는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 천국』(1883)을 텍스트로 삼아 이러한 여성 소비자들에 대한 모순적인 가정들이 당대의 사람들의 의식 속에 모호하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임으로써,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관계가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규정하던 것보다 훨씬 더 다층적이고 복잡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겉으로는 손님의 욕망을 모두 이해하는 척 하면서, 속은 경멸로 가득찬 백화점 주인과 그에 혹해 상품을 마구 사들이는 여자 손님의 관계에 대해 리타 펠스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상업이 여성의 모든 변덕을 충족시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고 철저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여성의 이해는 공적 영역에서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근대의 여성성 숭배를 지탱하는 착취적인 경제관계를 은폐한다.(p120)

    아내의 충동적 낭비벽을 알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대해 무력한 남편에 대한 에밀 졸라의 묘사는 그가 쾌락주의의 조장은 개별 남성 자본가에게는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겠지만, 사회전체적인 시각으로 볼 때 남성과 여성의 관계, 가부장제에 미칠 영향은 전복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리타 펠스키는 얘기한다. 이러한 데 대한 공포는 졸라의 또 다른 작품인 『나나』에서도 드러나고 있으며 이러한 태도는 위에서의 백화점 주인과 손님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는 매우 모순적으로 보인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소비주의에 있어서 여성의 해방적 차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소비주의가 여성의 욕망이 명명되고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기존에 소비자로서의 여성을 거짓 쾌락에 속아 이것저것 막 사는 수동적 존재로서만 바라보았던 것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없는 돈 없는 여성들에 대한 분석은 피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분석은 아닌 듯 하다.
   리타 펠스키는 위와 같은 해방적 지점들을 인정하지만 그것들은 상품화된 여성성의 억압적 규범, 그리고 소비에 대한 집착들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발현되어 왔음을 주장한다.

    근대성의 문화는 욕망하는 여성성을 억압했던 몇몇 전통적인 구속을 붕괴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비록 그보다 뚜렷하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사회통제의 그물망을 만들어내기도 했던 것이다. (p147)

    그렇다면 여성화된 남성의 이미지, 남성화된 여성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19세기 말 오스카 와일드를 위시한 소위 유미주의자들의 삶과 텍스트에 드러나는 여성적 취향, 나르시시즘, 인공성, 무절제 등은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서 제기되고 행해지던 생활 양식이었다. 이들은 부르주아 남성 이데올로기에 명백히 대립되는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타 펠스키는 그들이 이를 표면적으로만 부정했을 뿐 되려 성별 위계질서를 더욱 공고히 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저속함'에 대한 깊은 혐오를 가지고 있었던 엘리트주의자들이었다. 저속한 층은 대중이고, 대중의 가운데에 여성이 있다. 그들이 여성성을 자신의 육체에 각인시켰던 부분은 다름아닌 소비의 영역에서였고 다른 부분은 여성들과 끊임없이 경계를 그어가며 자신들의 우월성을 입증하려 했다. 심지어 작품 속에서 여성의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남성이 지배당하는 때에 여성은 단지 무의식적이고 훈련되지 않은 주체성의 통제되지 않은 무절제를 상징화하는 육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리타 펠스키는 말한다.
   나는 그동안 문화를 다루는 페미니즘적 시각이 `여성적인 것은 해방적이다'라는 암묵적 명제를 견지해 온 것은 정치적이고 전술적인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학 작품이나 영화, 미술 등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을 그 이전의 해석들처럼 허약하고 변덕스럽고 사소한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적인 사회적 관계망 틈새에 존재하는, 사회균열의 힘을 지니고 있는 메타포로 바라보는 것은 단지 그러하다의 설명적 의미 뿐만 아니라 그러하게 해야 한다라는 당위성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리타 펠스키의 글은 매우 흥미롭지만,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이전의 일관된 페미니즘의 근대성 분석에 대하여 가지는 보다 나은 실천적 함의는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근대에 나타나는 여성과 남성들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균열을 가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을까?
   그는 7장 성도착의 예술에서 `라쉴드'라는 프랑스 여성작가의 책을 비평한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그의 비평에 의존하여 라쉴드의 텍스트를 추리해 볼 수밖에 없었지만 여성의 성욕을 거침없이 묘사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그는 인식하고 욕망하는 도착적 여성 주체의 비전을 창출하는 가운데 현대 페미니즘 이론과 뚜렷하게 관련된 주제들을 탐구하고 있다.(p285) 『사드 후작부인』(1887)이라는 책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이 뒤바뀐다. 여성은 더 이상 남성 새디즘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사도-마조히즘 텍스트의 거울상으로 이를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존의 남성 사디스트가 자신의 권력에 의거해 도착적 행위를 행해 왔다면, 책에서의 여성 사디스트는 유혹의 방법을 통하여 남성을 지배하고 파괴하는 힘을 얻었다.

    여성은 타자의 시선과 관련된 위치를 갖기 때문에, 남성이 결코 획득할 수 없는 상당한 자의식을 소유한 존재가 된다. 여성은 더 이상 미분화된 자연과 무의식적 욕망을 상징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p300)

    리타 펠스키는 라쉴드가 남성 주체야 말로 통일적인 정체성이라는 향수어린 환상에 강박을 가지는 존재로 보았으며 여성은 자기 자신이 외부세계에 의해 규정되는 불안정하고 정해져 있지 않은 존재라는 걸 이미 인식하고 있는 근대성의 특권층이라고 보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남성을 죽이고 그와 똑같이 만든 사이보그가 그 남성의 대체물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성애의 원천임을 펠스키는 얘기한다. 역시 근대성의 주체가 여성으로 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라쉴드는 매우 급진적인 존재였을 듯 하지만 그녀는 『나는 왜 페미니스트가 아닌가』라는 책을 써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녀는 여성이 `유혹'과 `과장'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거부하고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이야기로 생각했다. 그녀 자신은 남성과 같이 행동했으나 그것이 대중화 되는 것은 매우 싫어했다. 이러한 지점에서 그의 텍스트는 여성 성욕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해방적 의미를 띠고 있지만 또한 한계도 가지고 있다. 펠스키는 책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근대적 주체의 필연적 복수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키는 데 있어서, 그러한 기획은 기존의 시간적 도식과 시대 구분의 구조를 허물고 개조하는 것을 수반한다. 상이한 사회집단의 이질적이고 비동시적이지만 서로 교차하는 근대성들이 나타날 때, 근대의 미학과 정치학에 관한 일반적인 교의는 필연적으로 논쟁과 개정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p327)

    `근대의 성별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해 어떠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책이 제시하는 내용이 매우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거기에 대한 분석을 공감하였기 때문에 근대성의 성별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근대성이 남성과 여성이 모호하게, 그리고 모순적으로 뒤섞여 있다는 사실은 여성을 근대라는 역사 내부로 가져옴으로써 근대성이 남성이라는 기존의 관점에 대해서 그것이 가지고 있는 성별 이분화의 틀을 깰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처음에는 책을 읽으면서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차 이러한 분석의 실천적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기존의 포스트 모더니즘, 페미니즘 이론은 근대성을 남성으로 고착시키고 그에 대해 공격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여성성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는 그것들이 공격하던 거대서사에 있어서의 환원론적이고 이분법적인 틀을 오히려 공고화하는데 기여했다는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이다. 어쩌면 근대가 보여왔던 자기모순의 지점들을 파헤치고 그 계기들을 추적해 봄으로써 우리는 좀더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 막연한 상징과 은유로서의 해방적 함의를 지니는 여성성에 비해 좀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관계 내에서, 차이들이 권력에 기반한 것임을 인식시키므로써 근대 내부에 여전히 싸울 공간이 남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