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무척 읽고 싶게 만드는 친구를 가졌다.

그 애 입에서 나온 책을 읽지 않으면 난 세상의 놀랍고 신비한 다른 쪽 면을 나만 알아차리지 못한 것같은 느낌이 된다. 그 친구가 책을 조금만 읽어대면 좋으련만, 난 늘 한박자 놓치며 자괴감에 빠지고 만다.


      

별    족    


'영혼의 집'도 그 친구의 입에서 나온 책이다. 그 동화적인 느낌이 좋았노라고, 그 속의 모든 사람에 반했노라고 말했다. 나는 살그머니 그 책을 빌려서 소문 안 내고 읽은 다음 감동하였다.


난 사진이나 영화나 글이나 삶을 옮겨 놓는것은 뭐든 삶을 왜곡시킨다고 투덜거린다. 모르는 사람이 아픈 걸 바로 옆에서 보는 거랑 매체를 통해서 보는 거랑은 다르다. 현실 이 아무리 아파도, 죽음보다 더 심하지는 않은데, 어떤 글도 삶이 아픈 현실을 뚫고 이 어지리라는 확신을 주기에는 허황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늘 살아가는 동안의 낙천성 을 그려내기에 역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저럴바엔 죽어버릴래'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상황 을 묘사한 글에서 희망을 읽어내기란 쉽지않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부드러 운 어조로 위무하는 글을 만나는 것도 어렵다. '영혼의 집'은 그걸 해내고 있다. 선거로 집권한 좌익의 대통령이 군부의 쿠데타로 대통령궁에서 전사한-살해당한 것이 아니라-나라의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곳을 벗어나 있는 자신을 위해서 그녀는 이 이야기를 쓴 듯하다. 정쟁 속에서 언니가 살해당한 어머니, 가장 가난하였으나 국회의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아버지, 혁명가수를 사랑하여 짧은 선거승리 의 기쁨과 곧 닥칠 암흑 속의 고통을 바꾼 딸, 그 딸의 딸. '영혼의 집'은 클라라, 그녀 의 딸 비앙카, 그리고 알바로 이어지는 가족 사이다.


클라라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해외 여행이라고는 제주도가 고작인 내가 상상만 하는 남미는 오랜동안 누린 독자적인 문화 탓에 풍요로운 상상들이 가득한 곳이다. 신 비로운 일들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는 대신, 여신이나 저주나 숲의 정령에 대해 말할 법한 나라와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이 책 때문이기도 하 다. 미래를 보는 클라라의 설정은 가득하게 신비로움을 채워놓는다. 정령이 깃들인 대저 택에 정령과 대화하는 클라라가 억압당하는 사람을 숨기는 거나, 농장을 휩쓰는 개미떼 를 쫓는 앞을 잘 못 보는 노인이나 '죽을때 까지 쭈그러들라'는 저주에 계속 작아지는 사람이나 영적인 면모들이 교차되었으나 현실감각을 잃지는 않는 소설의 분위기가 나는 좋다.
그녀는 언니의 죽음 이후 오랫동안 말하지 않고 지낸다. 언니의 약혼자였던 가난한 사 내와 결혼하게 되면서 다시 말하게 된다. 영혼과 대화하는 그녀가 말을 한다는 건 그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타인을 위해서인 듯하다.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기 위해서 그 녀는 입을 연다. 지금 나의 바램은 그녀가 결혼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거다. 오랜 기억에 의지해 책을 권하고 있다는 게 미안하면서, 그 속에서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는 그 남자의 이름 이 내 안에 남아있지 않다는 게 이상하다. 그는 클라라, 비앙카, 알바로 이어지는 가족 사에서 늘 그녀들과 있었다. 독재로 고통당하는 나라지만 그 속에 남길 결심하면서 손 녀와 남아있는 그는 야망있는 사람이다. 딱히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남자라고 말하는 건 모든 여자가, 혹은 모든 남자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무의미해진다. 그는 지 독히 가난하였고, 그래서 강해지길 원하는 그런 사람이다. 클라라를 사랑하나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다. 비앙카를 사랑하나 그녀의 사랑을 인정할 수 없는, 알바를 사랑하나 알 바의 사상을 인정할 수 없는 그런 아버지고 할아버지다. 군부쿠데타를 사주하고도 자기 나라의 오랜 민주주의의 전통이 독재를 용인하지 못할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무의미해 짐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남자'라고만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격변하는 시점에서 그러한 인물유형이 어디서건 드러나는 때문일게다. 이야기의 크고 작은 부분들에서 나는 놀랐다. 남편이 들판의 처녀를 강간했음을 알고 있는 클라라가 비앙카의 사랑을 옹호하며 남편에 게 '둘은 사랑하'는 거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놀랐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용인할 수 없을 법한 그런 사랑을 변호하는 그녀는 정말 중요한 게 무언지 알고 있었다. 비앙카의 사랑은 농장의 농노의 아들이었고, 남편이 국회의원으 로 속한 집권당에 반기를 든 혁명가수이기까지 하다. 난 모든 엄마들이 그런 건 아니더 라도 엄마들이 아빠들보다 딸들의 사랑에 너그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묘사에 기뻐하게 된다.


클라라가 사랑한 검은 개와 관련해서는 전세대의 기억이 어떻든지간에 다음 세대가 그 걸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다른 추억을 만든다는 것 때문에 흐뭇했다. 그 개는 언니 로즈 가 독살당하던 날 함께 죽는다. 그녀의 남편은 결혼할 첫 날 그녀를 기쁘게 할 의도로 검은 개의 가죽을 침실에 깔고, 그녀는 놀라 기절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가죽은 지하 실에 있는데, 그녀의 손녀 알바는 그녀의 연인을 미로와도 같은 그녀의 집에 데리고 와 서 그 가죽 위에서 사랑을 한다. 난 클라라 남편의 선량한 의도가 그렇게 어긋나 있는 게 우습고, 그녀가 어찌 여겼건 그녀의 손녀가 그 위에서 행복한 섹스를 한다는 게 우습 다.


아버지가 보수적인 집권당의 국회의원인데도 딸이 사랑하는 이는 혁명가수고, 손녀가 사 랑하는 좌익운동권이고. 난 세대를 배신하는 장면에 매료된다. 적대적으로 뒤엎는 배신이 아니라 가치를 달리 하는 그런 배신, 아버지 세대에 중요하던 것이 전혀 중요치 않은 다 음 세대들, 그런 게 좋다. 배신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비앙카는 실제로 아버지의 의도대로 결혼했었다- 절대 참을 수 없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서 못하겠는 게 좋다. 결코 당해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이에 심한 상처가 나지 않아서 좋다.


난 클라라의 아들들에 대해 기억해내는 데 오래 걸렸다. 그들이 클라라만을 닮았다고 말하려다가 곧 아닌 걸 깨달았다. 큰 아들은 참으로 열성적인 사람이다. 그는 의사였고, 자신의 의술로 다른 사람을 돕기에 바빴고, 전사한 대통령의 친구였다. 클라라가 주는 인상이라면 늘 존재하는 그 평화다. 삶이 성실치 않아서가 아니라, 미래를 아는 사람의 여유가 가득하니까, 큰 아들의 그런 삶은 성공을 잡으려던 가난한 그의 아버지의 모습과 더 많이 닮았다. 작은 아들은 클라라의 정신적인 면모를 많이 닮았다. 신비롭고 영적인 매력으로 사람을 불러모으는 그런 사람이었다.

난 긴 소설에서 드러나는 인연의 고리들이 즐겁다. 알바의 탄생을 지켜보던 다락 속의 소년이 알바의 연인이 되고, 농장의 지주였던 클라라의 남편이 찾았던 읍내의 창녀가 독재의 감옥에서 알바를 구해낼 때, 인생의 부침이 드러날 때가 즐겁다.


영혼의 집에 대해 설명하면서 난 늘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문을 걸 듯이 그 누구에게도 심한 비난을 할 수 없게 하는 매력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 랑에 대한 너그러움 때문에 나는 쉽게 여자들에 동조하게 되고, 그녀들을 느낀다. 내 곁에 누군가에게서 클라라나, 비앙카나 알바를 느꼈다면 그녀들의 강함이나 평화로 움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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