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언니 잘 살고 있구나
- '인간하나 기다리며'(이경미)를 읽고-


별족                                     

나, 이 언니를 안다.알고 있었다.

그 때 난 대학생이었고, 여름에 학생회에서 마련한 캠프를 통해
성폭력상담소로 며칠 안 되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러 갔었다.
물론 나는 ‘음, 얘를 잘 가르치면 둘 쯤 더 데리고 돌아올 거야’ 라는 기대를 줄 수 없는
소심하고 수동적인 인간형이다. 장기적으로 성실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단 며칠간의 활동으로 찾아온 그런 사람이었다.
교육도 없이 상담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고, 난 정리며 뭐 이런 것들을 했다.
배우는 끈기는 없고, 그런 끈기 없이도 풀쩍 상담이나 뭐 이런 것을 하게 될 거라고
상상하는 봉사자는 방학이면 닥치는 밀물같은 학생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 인사를 하면서, 어색하고도 어색하게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근자와 간사들은 바쁜 중에 모여서 속내를 털어놓는다고
얼마나 상황이 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잘 꾸려가고 있는지, 뭐 이런 얘기를 했다.
그건 그 중 누가 한 말이었을까. ‘여기 상근자, 간사들이 한달에 얼마를 받는데, 그 와중에 적금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고. 나를 지레 겁먹게도 한 그 말을 누가 했었던 걸까.

난 지나가는 이름으로 그 언니의 이름을 들었고,
여러 해가 지나서 이프에 성에 대한 글이 실렸을 때 알아차렸다.
아, 이 사람 나 본 적 있어. 와, 글을 멋지게 쓰는데.
그 때 인상이 어떠했는지 생각하려고 끙끙댔다.
음, 그래 조금 냉소적이지. 음, 그래 난 겁이 났었다.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았다.


책을 받았다.
Herstory 2이다. Herstory 1을 알고 있다. ‘담배피우는 아줌마’다.
그렇군, 시리즈물을 만들려고 한 거로군. 여성들의 이야기, 작거나 큰 이야기, 여성주의자의 에세이. 장정도 크기도 딱 ‘담배피우는 아줌마’다.
이야기는 다르다. 다른 여성의 이야기이니 같을 수가 없지, 참.

책날개를 본다.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닌 거 같아 다시 본다.
그 얼굴이다.
웃고 있다고 못 알아보다니 내가 한심하다.
책을 읽으니, 인상이 달라질 만한 다른 이유도 많았다.
그 사이 아이를 낳았구나. 여성 운동이, 혹은 운동을 직업으로 선택한 삶이 얼마나 힘든지,
나를 겁먹게 하던 그 간사언니는 서른 일곱에 벼락 맞듯 ‘임신을 해야겠다’ 결심하고는
엄마가 되었구나. 그래서 저렇게 SF의 순간이동이나 한 것처럼 다른 얼굴이 되었구나.

글도 아주 다른 인상이다. 사랑에 빠졌고,
아이를 낳았고, 살면서 쓰는 개인적인 글은 이전의 다른 글과 다른 느낌이다.
(성폭력 상담소의 성에 대한 글모음 코너에 여전히 언니의 글들이 있다.)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 갑자기 아주 많이 깨달은 것 같은 다른 글을 쓰고 있다.
개인적인 고백, 가족사, 자신이 선택한 남자를 믿어도 좋은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아슬아슬한 글들이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면서, 라는 말이 새어나오게 하는 편안한 수다같은 다르고도 닮은 삶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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