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의 여행 - 여자들의 꿈



꿈으로의 여행 - "여자들의 꿈" by 루시 구디슨

헤마


나는 꿈을 무척 자주 꾸는 편이며 꿈꾸는 것을 좋아한다.
밤에 잘 때 오늘을 이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 자면 가끔씩 정말로 꿔지는 때가 있다. 또, 아침에 꿈이 행복하거나 재미있어서 깨어나는 걸 거부하기도 한다. 꿈의 대부분은 해석이 어렵지만, 어떤 꿈의 경우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 꿈이 무엇을 의미할 거라는 확신이 들 때가 있다.
나는 꿈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다음은 최근에 꾼 두 가지 꿈이다.

친구와 기차를 타고 어딘가 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후 자꾸 신발이 걸리적거렸다. 기차엔 옆 벽이 없어서 발을 뻗으면 바로 철로에 닿았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어둔다는 것이 그만 기차 밖 철로에 벗어두고 말았음을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신발은 어머니가 사주신 것으로 매우 비쌌고, 잃어버리면 분명히 야단을 맞을 것 같았다. 아무 준비(지갑이나 기타 등등)도 없이 무조건 뛰어내려 달려가 보았으나 신발이 없었다. 기차를 다시 타려고 했으나 탈 수 없었고 친구가 같이 뛰어내렸던 것 같다.

이 꿈은 내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하고 이틀 후에 꾼 꿈이다. 처음엔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이 홀가분하고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힘들어졌다. 헤어진 것이 정말 잘 한 일일까에 대해서 점점 자신도 없어지고 앞으로 후회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틀 동안 많이 혼란스러웠고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음이 편해졌다. 꿈은 당시 내 마음 속의 혼란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이 혼란스러움을 꿈으로 경험하고 나자 두려움이 없어졌다. 꿈에서 어떤 해답을 나에게 준 건 아니지만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해졌다. 나는 차차와 꿈에 대해 얘기했다.
꿈에서 신발은 나의 옛 남자친구를 상징하는 듯 했다. 나에겐 가려고 하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가는데 신발은 자꾸 나를 저지한다. 그 신발이 구하기 힘들고 소중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신발을 벗을 수밖에 없다. 신발을 벗으면 편하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벗고 보니 그 신발이 기차 안이 아니라 밖에 놓이게 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헤어짐의 충격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단지 연애가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가 내 인생 밖으로 영원히 튕겨 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후회 같은 것이 그 장면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신발을 가지러 나의 길을 벗어난다. 아무 준비 없이 뛰어 내렸다는 건 다시 붙잡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연애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소망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신발은 없다. 무의식 속에 여러 갈등이 있지만 이별을 받아들여야 함을 꿈이 얘기해준 것이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제자들을 불러모았고 그 자리에 갔다. 나는 바쁜데 와야 했기 때문에 좀 짜증이 나 있었다. 누군가가 성추행을 했는데, 너무 화가 나서 곧바로 잡아끌고 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계셨고 나는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엔 끌고 가는데 아빠와 엄마가 모두 잘 도와주시더니 그 애가 자기는 성추행하지 않았다고 둘러대자 이 아이를 동정하는 눈치였다. 급기야는 걔가 바닥에 완전히 뻗어버려서 셋이서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그 애를 들쳐 메고 경찰서로 가기 시작했다. 무거웠지만 나 혼자서도 충분히 들 수 있었다. 결국 그 애는 눈을 뜨고 성추행 사실을 고백했고 가족들은 나를 칭찬했다.

동아리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었다. 원래는 내가 해결을 맡지 않았었는데 가해자가 그 일을 성폭력사건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개입을 해 주었으면 한다는 후배들의 전화를 꿈꾸기 전에 받았었다. 나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을 직접 맡아본 적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 일을 맡아야 할 지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하다가 잤다. 한편으로는 가해자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다. 이 꿈은 스스로 내가 용기를 얻기 위해 꾼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성폭력 사건을 많이 봤고, 또 그 해결을 위해 중재자의 입장에 서는 일이 많았었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을 맡을 때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점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이었다. 가해자는 충분히 벌을 받아야 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그 법의 집행자가 내가 되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후로는 되도록 사건을 직접 맡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태도는 손 안 더럽히고 코풀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의 표현인 것 같아서 사실 마음 속으로는 내 자신을 경멸하기도 했다.
꿈에서 나는 평소의 태도와 다르게 성폭력 가해자를 잡아서 응징하려고 했다. 나는 그가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도 있었다. 꿈에서 나온 부모님은 사실 내 자신인데, 내가 이번에 맡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면서 가해자에게도 약간의 감정이입을 하며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나는 가해자가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결국 나는 혼자서 가해자를 끌고 가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그가 가해자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잠에서 깨었을 때 크나큰 자신감을 주었다. 가해자가 사건을 인정하지 않아도 피해자의 의견, 옆에 있던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그것이 명백한 성폭력 사건이며 가해자는 거기에 대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

지금까지 나는 내가 꾼 두 가지의 꿈을 해석해 보았다. 해몽서, 혹은 프로이트의 견해를 따른다면 내가 한 해석이 전부 뒤집어질 수도 있다. 심하게 말하면 두 꿈이 이별이나 성폭력 사건에 관한 꿈이 전혀 아닐 수도 있다. 이를테면 프로이트는 구두는 여자의 성기를 상징한다고 했으니까 첫 번째 꿈은 유아기의 특정한 경험이나 현재 나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꿈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꿈이 우리 자신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외부의 권위에 맡기게 되면 삶의 모든 면-친구, 연인, 가족, 성, 노동, 정치, 삶의 기술, 질병, 결정, 죽은 이들에 대한 느낌, 삶의 목적 등에 조명을 줄 수 있는 밤의 '선물'에 대한 통찰력을 빼앗길 위험이 있다. ('여자들의 꿈', p17)


꿈을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인류 역사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꿈에서 개구리를 보고 백제의 간첩들을 물리쳤다는 선덕여왕의 꿈. 태조 이성계의 꿈-등 뒤에 몽둥이 세 개-을 아들 점쟁이가 해석하자 몽둥이 세 대를 맞을 꿈이었는데, 아버지 점쟁이는 왕이 될 꿈이라고 했다는 이야기. 그리스의 어떤 신전에서는 잠자는 곳이 있어 왕들이 그곳에서 꿈을 통해 신탁을 받았다는 이야기 등등. 사람들은 꿈에서 신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미래를 보기도 하고, 죽은 자와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프로이트라는 거인이 나타나서 꿈은 예지로서의 의미보다는 무의식의 세계를 엿보는 열쇠로서의 의미가 강조되었지만 어쨌거나 사람들은 꿈이 무언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그러나 자신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위해 거대하고 보편적인 꿈 해석의 원리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꿈이란 너무 풍부하고 특이해서 기존 '해몽서'로 풀이될 수 없고, 너무 다양하고 복잡해서 여태까지 제기된 어떤 일반 이론에도 완전히 들어맞을 수 없다고 믿게 되었다. 이론들은 '모든' 꿈을 설명하려 하고, 모든 문화, 모든 성, 모든 인종의 꿈 경험을 다루려 한다. 현장에서 꿈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가끔 '브랜드에 대한 맹종'으로 한 가지 이론, 한 주인, 한 기관을 선호하기도 한다.

남성 '전문가'들이 대부분 이 이론들을 만들었다는 점 때문에 여자들은 특히 곤란을 겪는다. 프로이트는 꿈이 억압된 욕망, 예를 들어 남근에 대한 욕망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융은 여자들의 꿈을 형성하는 여성적 원형은 직관적, 부정적이고 세속적, 수용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리들은 모든 여자들이 다 똑같다고 보며, 우리를 긍정적으로 그려내지 못한다. 우리 자신을 이해할 실마리가 주어진다면 기운이 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우리보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만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여자들의 꿈', p18)


여성들의 꿈은 남성들의 꿈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여성들의 경험과 욕망은 남성과 다를 수 있다. 월경, 섹스, 임신, 병 등의 생물적 경험과 노동, 육아, 취업, 교육 등의 사회적 경험. 분노, 공포, 기쁨, 애정과 같은 감정들. 관계맺기의 방식과 육체에 각인된 기억이 다른 사람들의 꿈이 과연 한 가지 틀로 해석될 수 있는가?
깨어있는 시간동안 여성들의 육체와 정체성은 자주 부정 당한다. 그러나, 그 부정은 의식의 차원에서 뼈 속 깊이 내재화 되어있어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우리 내면의 어떤 부분은 거부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한다. 꿈에서는 내 안의 이러한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 꿈이 모든 면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아직 채 언어화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에게 들려줄 수 있다. 루시 구디슨은 꿈이 잊혀진 모욕을 다시 떠올리게도 하고, 아주 중요한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루시 구디슨에 따르면 꿈이 주는 선물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꿈은 인간관계에서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꿈은 잊어버릴 필요가 있었던 과거를 상기시키고 과거와 화해를 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또한 꿈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논평을 가할 수도 있다.
어떤 때 꿈은 놀라운 통찰력을 보이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내가 앞에서 얘기한 꿈들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꿈이 항상 명료하게 방향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며 결정을 하는데 꿈의 도움을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내면의 감정들과 몸의 느낌, 희망, 환상, 공포를 인식하게 되면 길을 결정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꿈의 주인은 '나'라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해석을 내리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가 꿈을 해석하는 이유는 백점짜리 답안지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작은 느낌, 변화, 생각들에 좀더 민감해지고 생을 살아나가는 에너지를 얻기 위함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상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밤에 스치는 무의식의 그림자들을 기억해내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삶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말로 되어지지 못한 나의 이야기들이 꿈의 흔적을 밟아나가는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경험을 하는 것이야말로 꿈이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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