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 마
저자: 이케가미 슌이치
출판사 : 사계절

저자 소개 : 동경대학원 서양사학과 박사과정 중퇴/프랑스 국립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에서 수학/ 현재 동경대학교 교양학부 조교수/ 전공 서양중세사

남겨진 역사는 지배자들의 역사이다. 글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 전쟁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었던 사람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사회의 도덕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세련되게 포장할 수 있었던 사람들...... 역사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이외의 사람들을 익명으로 처리한다. 우리는 나머지 이들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들이 어떠한 행동을 했었는지 막연히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남녀유별했을 것이고 만약 그가 여자였다면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기를 키웠을 꺼라는......
우리는 수많은 열녀문의 주인공들을 기억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현대의) 여성들이 열녀들을 본받아야 한다고 아직도 침을 튀기고 있고, 페미니스트들은 그것이 바로 억압의 역사였다며 조선시대가 여성들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억압했는지를 밝히려 하고 있다. 나는 물론 후자의 입장에 동의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였을까? 사회체제가 여성 억압적이었다고 여성들이 순종적으로 거기에 따르기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수많은 열녀문의 주인공들보다 더 수많은 여성들이 거기에 저항하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직접적이고 멋진 저항이 아니었을지언정, 어떻게든 그 속에서 그들 나름의 사는 방식을 만들어 나갔을 거고, 때로는 자신들에게 덧씌워진 굴레를 깨부수기도 하며 살아갔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든다. 만약 모든 여성이 열녀였다면 지배층은 열녀문을 세울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이케가미 슌이치의 <여성에게 문화는 있었는가>라는 책은 서양의 중세에서부터 근세까지 성녀와 마녀의 이분법으로 단죄되던 여성들이 그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의 적극성을 드러내고 자신들의 문화를 일구어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한국의 여성사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들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녀와 성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여성을 차례차례 화형대로 올려보내 죽이던 시대에 또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성녀로 찬양과 우러름을 받고 있었다. 마녀와 성녀 모두 초자연력을 가지고 있다. 마녀는 악마의 마술을 통해 환영을 보고 성녀는 성스러운 환시를 본다.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고 성녀는 공중부양을 한다. 둘은 극단의 양끝에 있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구분하기 힘든 존재들이었다. 쟌다르크만 생각해봐도 처음엔 성녀, 전쟁에 이기고 난 다음엔 마녀, 그리고 몇 백년이 지난 20세기 초에 와서야 다시 성녀의 대열에 끼지 않았는가?
저자는 유럽의 계몽주의 사조, 합리주의와 인문주의의 곁에 항상 역을 이루고 있던 무의식이 '여성공포'로 존재를 드러냈다고 주장한다.

여신님의 몸인 흙으로,
여신님의 숨결인 바람으로,
여신님의 밝은 영인 불꽃으로,
여신님의 자궁인 생명의 물로,
원을 푸나니, 끊지 않는 채 푸나니,
여신님의 평화가 여러분 가슴 속에 깃들기를
즐겁게 만났다 즐겁게 헤어지니, 즐겁게 다시 만나기를

(Eller, 'Living in the Lap of th Goddess' 중,
리타 그로스, <페미니즘과 종교>에서 재인용 :
현대의 위카의례-페미니스트 영성운동 중 하나-에 쓰이는 축복의식>

마녀들이 행했다고 여겨졌던 사바트(Sabat: 마녀들의 악마의식). 마녀들은 사바트에 가기 위해 뱀과 개구리, 머리카락, 성체 빵, 그리고 피로 고약을 만들어 발랐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 사바트에 모여 악마 앞에 이르러 충성을 맹세한다. 사바트 장소는(사바트가 진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은 그 장소까지 지목해 낼 수가 있었다!!) 산악지대나 인적없는 황무지, 심지어는 마을 광장과 성, 교회 한가운데였다.


(사바트의 광적인 향연을 준비하는
마녀와 악마, 그리고 기괴한 동물들)


마녀들을 찾아내는 눈(!)을 가진 마녀 감정사가 있었고 이들이 한 여자를 가리키며 "저 여자입니다. 저 여자의 눈을 보세요. 저 여자가 마녀입니다."라고 외치기만 하면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어느 마을이나 반쯤은 공포, 반쯤은 존경의 대상이던 나이 많은 여성들이 있었고 이들은 이미 민중문화의 결절점에 자리잡고 병을 치유하거나 점, 주술 등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다. 마녀로 한 번 찍힌 여자는 각종 고문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고백을 복창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마녀의 반대 쪽 끝에는 성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세 초기의 성녀는 여성이라는 性을 없애려 하였다. 통상 남자에게만 허락된 보다 높은 수준의 영성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로 여자교황 쟌이 있다. 남장한 여성, 특히 성녀들은 성서가 보증하는 '우월한 성'인 남성을 외모만이라도 닮아 구원을 받아 보려 했다. 그들은 자신의 성을 부정하고서라도 영혼의 구원을 받고자 했던 적극성을 가지고 있었다.
중세 후기에 이르면 오히려 여성임을 적극 활용하는 성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성체 이외의 어떠한 의식도 거부했던 거식 성녀들. 가시덤불과 얼음물로 뛰어들기, 스스로 채찍질하기, 칼과 손톱으로 마구 찔러 대기 등 여성들이 구원으로 다가가기 위한 길은 목숨을 건 메조키즘이었지만 이들은 이러한 행위들로 황홀경에 이른다. 여성의 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주기적으로 피가 흐르는 성흔, 도취상태, 신체 부양, 황홀한 코피, 기적 같은 젖과 향유의 분비, 신비로운 임신 등등 여성에게만 특별히 해당되는 이러한 이변들이 하늘의 선택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들은 여자의 몸을 거리낌없이 내세우면서 구원을 모색했고 예수의 아내나 어머니가 되어 부부관계를 맺거나 젖을 먹이기도 했다. 그러나 성녀들의 황홀경은 항상 교회의 통제를 벗어났고, 종종 정신착란과 히스테리, 이단적인 성적 변이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교회 당국은 이를 경계하고 때로는 이단의 딱지를 붙여 박해를 가했다. 성녀의 도가 지나치면 언제라도 마녀가 될 수 있는 판국이었다.

교회에서는 악녀-이브와 성녀-마리아가 여성의 유일한 두 전형이었고 교회의 품안에 살수 있었던 여성들이야 마리아가 될 수 있었지만 세속의 여성들은 어떠했을까? 그들에겐 타락한 이브만이 유일한 길이었을까? 이들에겐 제 3의 길이 있었다. 본래 타락한 여자였다가 회개하여 예수에게 죄를 사면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가 그들에게 종교적 모델이 될 수 있었다. 11-12세기 사이에 프랑스 중부의 은둔수도사들에 의해 막달라 마리아를 숭배하는 바람이 거세게 일어났고 이들은 창녀와 세속의 여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다. 막달라 마리아는 세속의 여성들에게 위안이 되었고, 수녀가 되지 않고서도 종교적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인 노력들은 12세기 중반에 이르자 여성들의 이단교회에 참여로 그 물줄기를 바꾼다. 가장 컸던 카타르파와 발도파의 두 이단 종파는 여성신도가 상당히 많았고 또 적극적이었는데 이들은 여성도 죽으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하였고, 발도파의 경우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설교권을 인정하였다. 카타르파에서는 교리 전파에서 여성이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주로 어머니, 할머니, 숙모가 아이의 양육자 뿐 아니라 교육자로서 역할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녀들은 이단에 이끌렸는가? 여성들이 이단에 이끌린 이유를 밝히는 것은 학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과정인데, 어떤 학자는 당시 생존의 길이 막막하였던 여성들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으로 찾아들어 갔다고 보고 있지만 저자는 이단에 참여했던 여성 중 상당수가 귀족이나 대상업가 출신의 여성들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여성들이 카톨릭 교회보다는 여성차별이 덜한 것을 매력으로 여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결론은 쉽게 내려질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드는 근거가 소극적이고 설득력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잊혀졌던 과거를 복원해 내고 거기서 미래에 대한 해방적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 작업은 중요하지만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어쨌든 결국 종교가 삶의 중심이었던 시대에 수녀였건 속인이었건 여성들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마녀가 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기적을 바랐고, 때로는 스스로 이단의 대열을 선택하기도 했다. 마녀와 성녀를 만들어낸 여성관에 포위된 가운데서도 여러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을 한 여성들도 있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남성의 가치관에 대해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평등을 요구하는 대신 이러한 여성들 자신이 과연 적극적으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 냈는지의 문제에 관심을 둔다. 그녀는 여성들의 적극적 문화로서 수다와 이야기, 노래 등을 들고 있는데 여성들은 이를 통해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처세술, 속담, 실용적인 지혜들을 알아가기도 했다. 이들은 남성과 독립된 여성들만의 공간 속에서 행해졌다. 한편 세속의 여성들은 남성들보다도 독서를 많이 했고 어머니에게서 딸로, 딸에게서 다시 그 딸로 책이 전해졌다. 이 책들은 종교적인 교리를 전해준다는 목적 이외에도 경험적인 지식과 오락적 요소까지 두루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배경 하에서 근세 이전에 여성 지식인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현재 어머니만이 자신의 딸, 딸들에게 딸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데 전념할 수 있다.
자유의 필요성에 관한 문제를 좀더 의식하고 있는 딸로서
우리는 또한 우리의 어머니를 교육시키고, 우리들 서로서로를 교육시킬 수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문화적인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1987.9. 뤼스 이리가레이>

여성 지식인들은 여성이 모성을 가지고 있음을 찬양하고 여성도 배울 자격이 있으며 그것을 이해할 만한 능력이 있고 자유롭고 날카로운 지성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들이 곧 여성의 해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능력이 뛰어남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여성 전체의 대의를 내세워 남성들의 멸시와 가혹한 처사에 침묵으로 인종하는 것을 거부하고 반항의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수많은 보통의 여성들이 있었고, 그녀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당시 절대적인 가치였던 구원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교회는 여성들이 종교적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못박았지만 그녀들은 그 한계를 넘나들며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 공적 영역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여성들의 삶 속에서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지혜가 있었고 마을 여인들의 커뮤니티가 있었고 독자적인 문화가 있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여성혐오-공포와 여성숭배로 얼룩진 지배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이브도 마리아도 아닌 그 자신으로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남성적) 사회가 덧씌운 이미지, 창녀와 어머니의 이분법은 아직도 생생히 살아 여성들의 삶을 질곡하고 때로는 거기에 맞출 것을 강요하지만, 이제는 여성들 스스로 여성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해야 한다. 여성들은 과거에 대한 역사를 다시 써야할 뿐 아니라, 미래의 역사도 새로 기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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