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 번 글: 여인열전 5 - 조사계 김반장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3년 05월 26일 20시 04분 |
읽은수: 8344 |
어제 서울 모 경찰서 조사반장 김모(29세, 여)를 만났다. 그녀를 만나는 날이면 그날 그녀가 겪은
사건ㆍ사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제의 사건ㆍ사고는 철거민연합회(전철연)집회에서 연행된
아주머니들과 관련된 것이었다. 여자들이 집회로 연행되면 성추행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부서와 상관없이 여경들이 불려나간단다. 어제는 서내에 자기와 이순경이 제일 젊은 여경이라
불려나갔는데 과거 동료인 장반장이 전철연 아주머니들에게 물려서 옷 위로 물렸는데도 가슴
살점이 떨어져나간 적도 있어서 오늘도 또 무슨 사고가 터질까 긴장했단다. 분위기도 그만큼
급박했단다. 그러나 현장 언저리에 서 있던 서장이 자기를 김반장이라 부르지 않고 계속 **씨라고
부르면서 이런 일 하기엔 너무 예쁘다는 둥 하여 어이가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주머니 하나가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데려다주었는데 중간에 주저앉고 어쩌고 해서 어떻게 되려나 걱정이
되었으나 화장실에 가서는 생리 시작했다는 이야기였기에 화장실에 생리대 갖다 주고 아주머니와
함께 얌전히 자리로 돌아왔단다. 그런데 서장 왈,
"아주머니도 **씨의 미모에 감복했나봐."
라고 하였다고... 처음에는 전철연과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고 듣고 있었는데 결국 서장이 얼마나
우스운 사람인가 하는 이야기였다. 엉뚱한 순간에 미모를 들먹이는 자기 상사 욕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김반장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국비 유학생 제도를 악용하여 범죄심리학과 복수전공하는 척
하면서 영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할 계획인 경찰경력 5년차이다. 현재 점심 시간 이후에는 매일
땡땡이 치고 영어공부만 하고 있다. 그래서 조사계 동료인 강반장(52세, 남)의 미움을 한몸에 사고
있다는 후문이다.
경찰업계에 대한 그녀의 누적된 불만 중 몇 가지는
1. 왜 내가 경찰이라고 해서 나시 입고 출근하면 안 되나.
2. 왜 경찰은 빨간 매니큐어 칠하고 출근하면 안 되나.
이다. 나는 그녀의 이런 불만을 듣고 있으면 키들키들 웃음이 나곤 한다. 그렇게 불만이면 나시도
그냥 입고 매니큐어도 그냥 칠하고 출근하면 될 성도 싶은데 아직 김반장에게 이야기해 보지는 못
했다. 어제도 정반장은 까실까실한 검정 원피스를 입고 퇴근, 나와 경찰서 앞 찻집에서
만났다. 그렇다고 해서 김반장이 업무는 항상 대충하고 멋 부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을 거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그런 속단은 그 경찰서 서장 같은 자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그녀는 예전
민원실에 있을 적에는 여름이면 무릎까지 오는 바지에 높은 구두를 신고 수다를 떨다가도 전화가
오면 핸드폰에다 대고
"예? 그때 *주임이 피의자에게 수갑을 채우고 있었나요?"
하고 열심히 사실확인을 하곤 했으니까.
그녀는 남자친구 불러다 자기 집 청소를 시키는 데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자로 집에 흩어진 짝
잃은 머리핀 짝을 남자친구가 청소하면서 맞추어 놓고 간 적도 있다고 한다.
뭐, 그녀가 전철연 문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고 굳이 비난할 수도 있겠으나 물린 사람 옆에
있으면 일단 안 물리는 것에 관심이 갈 듯도 하였다. 어제 그녀는 동석한 다른 친구의 권유로
여중생 사망사건 준비위원회에 5천원 냈다. 시위진압에 관여했으니 극우반동일 거라는 생각은 아주
단순한 생각이라는 이야기다.
하여간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가 경찰대학이 낳은 우리 시대의 변태 경찰이라는 생각을
재확인했다.
항상 시트콤보다는 현실이 더 재미있다. 생활의 발견... 곁에 있던 누군가가 사과껍질 같은 내 편견을
깎고 들어오는 순간들이 좋다. 즐거운 칼질의 순간들!
사각사각.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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