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번 글: 난다씨와의 대화 -- 생활의 지혜 7. 무릎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5월 10일 00시 15분 |
읽은수: 4042 |
7. 무릎
이난다
나는 집에서 일한다. 작업 공간과 주거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것은, 아침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니까 좋긴 하지만, 여러가지 다른 불편함이 많다. 무엇보다 기분 전환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업 시간과 휴식 시간, 재충전 시간이 잘 분리가 안 되어, 낮에 하던 생각을 밤까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잠을 못 잔다. 비슷비슷한 나날이 이어지다 보면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잘 구별도 안 간다.
그래서 나는 생활의 리듬을 주기 위해 조깅을 시작했다. 남들이 퇴근을 하는 시간에 조깅을 하여 나도 퇴근 비슷한 것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아줌마들이 참 많은 모양으로, 내가 뛰는 학교 운동장에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퇴근한 아줌마들로 북적북적했다.
그것은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먹고, 무엇보다 뛰는 게 신이 났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 뛰는 것도 잘 멈출 수가 없었고, 그래서 뛰기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 되어(신기록을 세운지 며칠 안 되어), 무릎이 맛이 갔다. 무릎은 거의 한달동안 낫지 않고 있는데(뛴 날보다 더 아플 셈인가 보다), 이것 때문에 여러가지 곤란을 겪게 되었다. 저녁 퇴근을 못 하는 것이나, 횡단 보도 빨간불이 깜빡거려도 뛸 수 없는 것이나, 지하철 계단을 몇번씩이나 쉬면서 올라다녀야 하는 등의 바깥 일들도 그렇지만, 집에 있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무릎이 아프기 전까지는 무릎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어디 부딪힐 때 빼고는), 주부에게는 무릎이란 아주 필수적인 신체기관이었던 것이다. 무릎이 없다면, 어떤 자세로 걸레질을 할 것이며, 손빨래를 할 때 어떻게 쭈그려 앉을 것이며, 설겆이를 할 때 무엇으로 씽크대 앞에 몸을 지탱할 것인가? 쓰레기를 버리거나 널려 있는 물건들을 치우거나 이불을 정리하거나 기억도 안 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기 위해 주부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무릎으로 지탱하여 온몸을 일으킨다.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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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넝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등이 아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전혀 생소한 회사의 사업내용을 닷새만에 파악해서 보고서를 써야 할 때, 40대의 능구렁이 아저씨를 구슬려서 그 동안 장부에 무엇이 잘못 기록되어 왔는지 찾아내야 할 때, 하루에 다섯 군데 이상의 거래처에서 독촉 전화가 올 때, 지난 일주일 동안 매일 12시간 이상 일했는데도 일이 점점 밀려갈 때, 나는 등이 아프다. 밤 11시에 퇴근해서도 자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점검하지 않고는 안심하고 잠들 수 없을 때, 회사 술자리에서 "대가리 박아"나 "오입" 같은 단어가 농담으로 쓰일 때, 지방 출장지에서 저녁 아홉 시에 불어버린 짜장면을 먹으면서 회사 후배들에게 "지금부터 한 다섯 시간 더 작업하죠."라고 말해야만 할 때, 등 근육이 자제력을 잃고 수축해 버린다.
등을 달래기 위해 웬만큼 바쁘지 않은 한은 퇴근시간쯤에 시간을 내서 회사 지하 헬스장에서 조금 뛰고 스트레칭을 한다. 뛰면서, 느린 걸음으로는 15분이나 걸리던 경영대에서 학생회관 동아리방까지의 거리를 생각한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학생회관에 갔다가 오후 수업을 듣고 학생회관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 하루에 걷는 시간만 한 시간이었다. 많이 걷던 시절에 등은 아프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으므로 나는 등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술을 마시거나 사람을 사귀는데 등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것 같았다.
등이 아프다. 점심을 먹으러 갈 때에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에도,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려고 고개를 숙일 때에도, 자려고 침대에 누울 때에도, 오랫동안 방치해서 때묻은 싱크대를 닦을 때에도, 뻐근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등 아픈 것이 며칠 더 지속되면 참을성이 평소 같지 않겠지……. 짜증이 나고 목소리가 조금씩 날카로워지겠지.
내가 머리와 손가락, 발과 다리만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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