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번 글: 난다씨와의 대화 -- 생활의 지혜 6. 라면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5월 10일 00시 15분 |
읽은수: 5521 |
6. 라면
이난다
지난 7개월 동안 라면을 세 번인가 끓여먹었다. 집을 나오면서 각오가 제법 비장했던 거다. 엄마, 아빠 없이도 '제대로' 살겠다고. 그런데 왜 라면을 끓여먹기 시작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내 비상식량은, 라면이 아니라, '소면'이다. 밥을 해먹기 싫을 때, 소면은 아주 유용하다. 보통은 멸치와 다시다로 국물을 내어 잔치 국수를 만들어 먹지만, 이도 저도 귀찮으면 김치찌게든지 된장국이든지 호박국이든지 뭐든 남아 있는 것을 한참 끓인 다음 소면을 넣어 먹으면 된다. 별미이다. 국 같은 게 안 남아 있으면 야채나 고기 같은 걸 쓸어모아 카레 가루나 김치, 고추장 등으로 양념을 하고, 잠깐 끓여낸 소면을 같이 볶아 먹어도 맛있다. 이건 그냥 내 취향인데, 나는 소면을 끓인 다음 찬물에 씻는 것보다 그냥 먹는 게 더 좋다. 질감과 온도의 문제이겠지만,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단순히 덜 귀찮기 때문에 그것이 더 맛있다고 믿어 버리는 것인지도.
그 다음으로 '자취생의 벗'이라고 생각하는 음식은, 참치캔이다. 맛있고, 조리가 간편하니까. 나는 참치 통조림을 발명한 사람을 전구를 발명한 사람 다음으로 존경한다. 나는 모든 자취생이 이런 의견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친구에게 물었더니, '자취생의 벗'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미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관이 용이하고,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리법도 다양해서, 간단하게 물에 불려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수도 있고, 국을 끓여먹을 수도 있고, 초무침을 할 수도 있고, 하여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당장 '미역'을 구해놓았다. 과연, 여러가지를 간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았지만, 왠지 자꾸 먹게 되지는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미역은 주로 냉동실에 보관하기 때문인 거 같다. 일단 냉동실에 들어간 음식은 그것이 무엇이건 자꾸만 잊어먹고 꺼내지 않게 된다.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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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넝이
이 시리즈를 쓰기 위해 나는 달나라딸세포(http://dalara.jinbo.net)에서 이난다씨의 글을 한 부분씩 복사해 와서는 오가며 생각을 하곤 했다. 난다씨가 가난을 이야기하면 나도 가난을 생각하고 난다씨가 과일 이야기를 하면 나도 과일 생각을 하고. 나는 본 적도 없는, 만난다고 해도 실명을 몰라 인사를 건넬 수도 없는 이난다라는 인물을 때때로 그렇게 내 일상으로 초대하곤 했다.
나는 이래 저래 이십대의 절반을 집 밖에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살림이라는 것을 살았던 적이 있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밥을 해 먹은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라면도 못 끓일 정도로 구제불능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도 부엌이 무섭다. 나 혼자 부엌에 서 있으면 불을 언제쯤 조절해야 할 지, 언제쯤, 얼마만큼의 양념을 더해야 할 지를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아무리 자세하게 적힌 요리설명이 내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혼자 먹을 것을 만들기 위해 혼자 부엌에 서는 일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외롭고 막막한 일이다.
혼자 음식 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어쩌다 여럿이 모여 떠들썩하게 음식을 하던 기억은 모두 특별한 기억이다. 농활 가서 밥 당번이나 설거지 당번을 하고, 친구의 부엌을 빌려서 중국식 튀김 국수를 만들고, 선배 방에 모인 사람들과 같이 먹을 김치전을 만들기 위해 정육점에서 돼지 고기는 어떤 걸 사야 하는지 갸웃거렸던 기억을 하면 지금도 나는 마음이 흡족해진다. 나의 음식 만들기는 모두 일종의 행사였고, “행사장” 주변에는 늘 누군가가 있어 나에게 잔소리를 해 주거나 나의 잔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 돼지고기를 어떤 크기로 썰 것인가에 대해서, 튀김 기름의 온도가 이제 적당해졌는가에 대해서. 놀랍게도 한참 떠들썩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 누가 만든 것인지 모호한 채 우리 앞에 놓인 음식은 항상 먹을 만한 것이었다.
문득 난다씨가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혼자서도 국도 끓이고, 소면도 삶고, 고기며 양념을 볶아서 먹을 만한 것을 만들어 내니 말이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고, 특히나 서른이 다 되어가는 여자는 다 할 수 있는 것일까? 평균 이상으로 부엌에 대해 겁이 많은 나는 난다씨가 음식을 해 내는 데 있어 평균 정도의 여인인지 아니면 평균을 넘어서는 여인인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다들 나처럼 채썰기를 잘 못하면서 들키기가 두려워 가만히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잘 해서 거기에 대해서 말할 필요들이 없는 것인지. 다들 간장과 소금, 마늘과 다시다를 어디다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알고들 사는지. 회사에서 보고서 초안을 잘못 썼다고 문장을 다 난도질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누가 김치찌개를 못 한다고 구박하면 울어버릴 것 같다.
언제쯤 내가 혼자서도 음식을 해 볼 용기를 내게 될까? 어느 한 부분이 발육부진인 한 여자가 부엌근처를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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