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번 글: 난다씨와의 대화 -- 생활의 지혜 4. 눈물 |
| 글쓴이: 무넝이 |
글쓴날: 2002년 04월 29일 22시 54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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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물
이난다
우울한 날이 계속 되다가, 무슨 영화를 보고 엉엉 울어버린 이후로, 날마다 조금씩 운다. 요사이 내 마음은, 내가 사는 집의 오래 된 수도와 같아서 어디선가 조금씩 샌다. 틀림없이 배관이 잘못된 모양으로 뭔가 썩어가는 나쁜 냄새도 올라온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혼자 살기 때문에, 눈물을 감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마음껏 슬픔에 젖을 수 없다. 쓸데없이 엄마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 없는 힘까지 다 동원해 미소를 짓는 것은 사람을 완전히 지치게 한다. 내가 우울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제일 먼저 다치게 하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자기 컨트롤 부족의 증거라고 여긴 적이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 통제란, 슬퍼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슬퍼하되,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지형도에서 자기 감정을 적절한 범위 안에 제한시킬 수 있는 능력인 것이 아닐까.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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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넝이
마음이 심하게 흔들린 날이면 몇 시에 귀가했더라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아니, 그런 날 애써 잠들면 다음 날 일어나기도 싫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들지 않고 2시까지든 3시까지든 깨어 있는다. 그 흔들림이 견딜 만한 날이면 책을 읽고, 그보다 더 심한 날이면 음악만 들으며, 그보다도 더 심한 날이면 지뢰찾기 오락을 한다. 마음은 해가 갈수록 몸을 닮아 가서 쉬게 해 주지 않으면 덧난다. 소화불량과 감기와 근육통의 증상이 다 달라도 아플 때 몸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듯 마음의 흔들림이 짜증이든 슬픔이든 서운함이든 마음을 쉬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차이가 없다. 내게 그 휴식의 방식은 아픈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주는 것이다.
"얘가 또 아프네."
항상 명랑하고 힘이 넘치는 상태만이 정상이라고 잘못 배운 나는 한 때, 마음이 흔들리면 지레 겁을 먹고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우울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신을 억지로 재우고는 아침에도 그 우울이 사라지지 않은 걸 보고 혼자 팔짝팔짝 뛰었다. 우울하다는 것을 참을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었으므로 우울해도 일상을 잘 영위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보려고 일부러 기말고사를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부러 세미나 커리를 더 열심히 읽었다. 중간중간에 농담까지 마구 해 가면서.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이 더 지치고 아플 텐데 미련하게 스스로 몰아붙이기만 했다. 사실은 내가 우울증이기라도 할까봐 겁이 나서 그랬다.
나에게만 그런 날이 있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가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학교 앞 자취방에 살면서도, 속이 상해서 방 밖으로는 물리적으로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날은 나처럼 문제가 많은 사람에게만 오는 줄 알았다. 몇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그런 날이 되돌아오면 겁이 나서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혼자서는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날 데리고 식당까지만 가도록 도와 달라고. 사실 그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다 사실이었는데, 그 말을 하는 것이 한 마디 한 마디 너무나 힘들었는데, 듣는 사람에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까봐 겁이 나서 늘 희한하게 웃기는 투로 말하곤 했다. 내 마음을 읽어내는 몇몇은 내용과 형식이 맞지 않는 내 이야기에 웃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당황하곤 했다.
아무데서나 잘 우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너무나 부러운 나머지 누가 울면 짜증이 났다. 그 때는 내가 그들보다 더 훌륭하게 자기 통제를 잘 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아래로 깔아보는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지만 맑은 눈으로 다시 돌아보면 그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잘 울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나는 지금도 좀처럼 울지는 못한다. 지금도 많이 아프면 스스로 깜짝깜짝 놀란다. 더 많이 아프면 혼자 잘 삭일 수가 없다. 정말 심한 날이면 한밤, 그나마 깨어있을 사람을 찾아 다른 시간대에 사는,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라도 전화를 해야 한다. 지금도 나의 하소연은 자기 삶이 버겁고 피로한 친구 몇몇에게는 짐이 될 때도 있다.
"미안하다. 어쩔 수가 없었어."
전화를 끊고 혼자 중얼거린다.
"다음에는 내가 네 말에 귀를 기울일게. 내 말만 마구 쏟아내지 않을게. 네가 소리내어 하는 말 뿐 아니라 네가 하지 않는 말도 전화선에 마술을 걸어 듣도록 할게. 우리 때때로 함께 있고, 때때로 혼자 있으면서 각자 아픈 만큼 아파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아픈 만큼 앓으면서 타인들이 앓는 소리를 함께 듣는 일의 어려움, 혹은 아슬아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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