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번 글: [하니 리포터/오조영란] '어머니날' 없애자 |
| 글쓴이: 신딸기 |
글쓴날: 2000년 05월 09일 09시 13분 |
읽은수: 6306 |
역시.. 인터넷 한겨레에서 퍼온 글.
오조영란님은 지금 캐나다에 계신답니다.
(아앗.. 이런 썰렁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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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영란] '어머니날' 없애자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는 드라마 '허준'에서의 비극은 그가 사또의 '사생아'라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그로 인하여 자식은 자식대로 절망하고 어미는 어미대로 온갖 비인간적인 수모를 참고 사는 것이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부계혈통주의에서는 멀쩡하게 패런트(parent, 즉 생모)가 있어도 자식은 '서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 없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없고, 어머니에게 '서자'인 자식은 없다. 어머니에게는 모두가 적자인 것이다. 어머니의 권리가 무시되는 사회일수록 '사생아'의 개념은 강하게 남아 있다.
'사생아' 개념의 존재는 그 사회에서 '어미됨'이 가부장제의 억압적 기제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주는 증세의 하나이다. 이것 외에도 가부장제의 억압기제로서의 모성을 나타내는 몇가지 증세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엄마가 됨으로써 여성은 결혼/남편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엄마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피임법이 없거나,
피임법에 대한 지식의 유포가 저지되거나 방해받는다.
---아버지의 권리가 우선되는 반면, 아빠의 실제적인 양육에서의 책임은 이름뿐이다.
---남녀의 차별 임금이 존재한다.
---공공 탁아시설이 부족하거나 부적절하다.
---엄마로서의 정서적 및 실제적 일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증세들을 기준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억압기제로서의 모성'의 측면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몇가지만 살펴보자. 기혼여성의 50퍼센트가 직장일을 하는 현실과는 무관하게, 기혼여성의 본분은 가정에 있다는 이데올로기가 횡행한다. 육아의 어려움을 참아낸 엄마 직장여성들조차 집에서고 직장에서고 늘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또 신문지상에 오르는 인기연예인 OOO은 '당연히 아내(될 사람)는 집에 있어야 한다'고 남자답게 말한다.(여기 OOO에 들어갈 수 있는 이름 석자는 한둘이 아니다.)
'미혼'여성과 성관계를 하는 남자는 무지 많으나, 미혼여성이 또는 미혼여성에게 피임약이나 피임법을 말하는 것은 금기시된다. 또 '사랑'에는 적극적인 남성들이라도 피임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반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경우 그녀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그녀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위태롭게 된다. (지난해 발생한 '미혼모' 진현숙씨의 사례) 호주제 하에서 자식은 무조건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된다.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한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남아 있고 어머니에게는 같은 주소에 거주하는 '동거인'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정상으로 보기보다는, '아빠-엄마-자식'의 가족형태만이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강요한다.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어머니의 다른 이름인 '아줌마'에게 인간적인 기본권은 없으며, 아줌마는 온갖 조롱과 무시와 경멸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요즈음은, 대중매체에 '나 아줌마 안될꺼야!'라고 발버둥치는 여성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줌마'에서 오히려 주체적이고 강인한 긍정적인 모습들을 새롭게 보고 스스로를 아줌마라고 칭하는 아줌마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 ...
몇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같은 상황으로 해서 대다수가 어머니가 되는 한국여성의 어머니로서의 경험은 참으로 양면적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아가를 기르는 일에서 무엇에 비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는 반면, 어머니가 됨으로써 따르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노동량과, 차별과, 죄의식 등 부정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엄마가 되어서 행복해야 할 것 같은데 행복하지만은 않은 상반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백화점과 신문 들은 '선물은 뭐가 좋다' '아니다, 현금이 더 좋다'는 기사를 띄워댈 것이고, 카네이션은 기본에다가 외식이나 여행이나 선물 등이 감사의 뜻으로 오가야 한다고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기쁘고 만족스럽고 창조적인 모성의 경험을 방해하는 각종 억압적인 관습과 제도를 그대로 둔 채 행해지는 이런 어머니날의 위선이 나는 싫다.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탄압하던 군사독재 시절의 '근로자의 날' 행사처럼. 이런 위선 대신에, 엄마에게 정의가 행해지도록 호주제 폐지를 포함하여 불평등한 사회제도와 고정관념을 바꿔나가려는 노력에 힘을 모아다오. 그것이 어머니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물이 될 것이다.
초청칼럼니스트 오조영란 youngran@chass.utoronto.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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