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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번 글: 왕따만이 살 길이다
글쓴이: 차차 글쓴날: 2001년 02월 13일 14시 35분 읽은수: 24038
역시 여성신문에서..

[여성칼럼] 왕따만이 살 길이다


한 잡지에서 우연히 어떤 영화 소개 포스터를 보았다. 여자 배우의 사진 위로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집안일도 챙겨주고, 필요할 땐 잠도 같이 잘 수 있고.”

그래, 그 여주인공도 아내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당근이지!). 어른이 되어 한국에서 소위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라면 남성이건 여성이건 모두 아내가, 혹은 ‘마누라’가 필요하다.

‘아내’가 없으면 가뜩이나 힘든 사회생활이 보통 고달파지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허둥대도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

아무리 인터넷 등 통신망이 발달하고 편의시설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그래도 은행에 들러 처리할 일부터 시작해서 장보는 일,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본 떼는 일, 세탁소에 옷 맡기고 찾는 일, 자동차 수리 맡기고 찾는 일, 빨래와 집안 청소, 냉장고 구석에서 썩어가고 있는 남은 반찬거리와 음식찌끼를 가끔씩 걷어내고 마루구석에 쳐박아둔 걸레를 펼쳐 빨고… 이런 일을 도통 해낼 수 없어 대충 포기하고 살 수밖에 없다.

이 사회는 누군가가 집안에 있어 전적으로 그런 일들을 해주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역설적으로 직장에 출근부를 찍고 나서부터 가능한 ‘개기는’ 인구도 적지 않다. 이왕에 이렇게 된 것, 틈만 나면 “자는 것이 남는 것이고, 알아서 챙겨 먹는 것이 퇴직금”인 셈이다. 남성들은 이것을 일찌감치 군대에서 배웠다.

심지어 퇴근 후에도 업무는 계속된다. 회식자리에서 빠지면 협상도 안되고 부서의 인화도 손상된다.

툭하면 잠재성 만성 알콜중독자들의 술자리에 참석하고, 남성들은 또 가끔 ‘묘한 곳’으로 2차, 3차까지 가서 흐드러지게 마시고 ‘흐트러진 모습’(?)을 함께 하며 그들의 단합을 확인하고 싶어한다(여성들은 그래서 일찌감치 왕따다).

지난 해 광주영령 추모모임때 그곳의 어지러운 룸싸롱 장면을 들킨 소위 386세대 지성인들도 그런 남성주의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그게 게임의 룰이니까. 별로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 문화다. 그렇지 않으면 금새 ‘왕따’가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관계가 단절될 것 같은 묘한 분위기들이 깔린다.

“어디 너 혼자 얼마나 잘 났나 두고 보자”하는. 아니다, 여기서는 왕따가 되는 것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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