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2000년 12월22일 606호
몸의 담론 - 여성주의 힘이 되는가
포스트 모던적 문화환경에서 무수히 접하게 되는 것이 몸에 대한 담론이다. 근대적 이성이 지배하던 시대에 외면당하고 억눌려 왔던 몸이 돌아오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 몸에 대한 관심은 푸코의 표현을 빌자면 여성을‘주체로 변형시키기’위한 문제이다.
그동안 여성의 몸은 생식을 위한 존재이자 남성을 위한 대상 또는 가사를 위한 노동력 이외에 다른 존재인 적이 없었다. 지극히 타자화되어 왔던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면서 문학 텍스트 속에서 드러나는 몸에 대한 관점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여성성의 해방이나 여성성의 구현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텍스트에서부터 여전히 남성지배적 몸의 담론을 벗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텍스트까지 혼재해 나타난다.
지난 9일 ‘여성의 몸, 몸의 담론’이라는 주제로 열린 여성문학학회 학술대회에서 김정란 교수(상지대)는 여성문학에서 여성의 몸이 처한 현실은 “타자의 감옥, 찢기는 몸, 늘어나는 몸, 부활의 이미지, 영성”이다. 이연주의‘제3의 살에게’에서처럼 여성의 몸은 “상처 속 어디엔가 숨죽여 살아 있는 제3의 살”이거나 박서원의 ‘악몽’처럼 “주먹만한 우박이 마구 나를 내려치고 검은 손의 그림자가 내 어깨를 밀어제”끼는 몸이다. 또는 노혜경의 ‘레이스 밥상보’처럼 밥상 또는 세상을 덮는, 죽음의 실존을 받아들임으로써 고스란히 바쳐지는 몸이 그것이다.
이러한 몸에 대한 다양한 텍스트들에 대해 변신원(여성문학학회)은 “사회의 다른 토대가 전혀 성숙되지 않은 채 여성의 성적 주체성이 여성 주체성의 대안인 것으로 확대되거나 오해될 때 오히려 여성의 성적 도구화와 가부장 사회와의 타협만을 조장할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분석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여성의 몸에 대한 해체와 은유적 글로 주류 평단으로부터 남성중심적 질서를 전복하는 여성적 글쓰기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언희의 시에 대해 정문제(여성문화동인 샬류쥬)가 제기한 “문학의 상품화가 가속화되고 미시담론이 각광받은 90년대 문단의 사정과 분리하여 사고할 수 없다”는 얘기는 이 점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변신원은 또한“여성의 성욕 혹은 성적 정체성이 여성의 정체성과 동일시 될 수 없는 것이며 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여성의 몸을 초월과 구원의 구현체로만 격상시킬 수도 없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똥을 친근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 모욕에 가득한 현실을 다정하게 껴안는 것이 리얼리티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자본은 더욱 교묘하게 여성을 상품화하고 가부장제는 보이지 않는 손과 입을 통해 담론을 생산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분명 여성주의의 긍정적인 힘이 된다. 그러나 현재 드러나는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들, 모성이나 허여성(gift and gift) 등이 실은 또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위치를 고착시키는 이데올로기가 되는 건 아닌지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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