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9 번 글: [노동] "생리휴가부터 폐지하라” 경영자측 억지 |
| 글쓴이: 신딸기 |
글쓴날: 2000년 12월 13일 01시 00분 |
읽은수: 18410 |
[여성신문]
"생리휴가부터 폐지하라” 경영자측 억지
남녀고평법 개정안 심사 앞두고 공청회 열려
◀ 여성노동자들이 지난 9월 7일 민주당사 앞에서 모성보호의 사회분담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IMF 경제 위기가 다시 닥치고 있는데 기업에게 비용부담만 주는 법 개정을 하는 것은 기업 망하라고 하는 것이다. 모성보호를 늘인다고 하지만 결국 여성의 경제 참여를 봉쇄하는 개정 방향이다.”
출산휴가 90일, 유급육아휴직 등 모성보호와 관련한 법률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경영자 측은 모성보호관련 법개정 반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난 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남녀고용평등법 전문 개정안에 대한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앞두고 경영자·여성노동자 관계자를 불러 긴급공청회를 열었다.
국회 환경노동위 회의실에서 열린 이 날 공청회에는 모성보호관련법이 경영자 측의 주장에 밀려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등 10여개 여성단체 회원 40여명이 방청석을 메웠다. 그러나 여성단체 회원 20여명은 국회 사무처에서 경총 회원들을 위한 자리 배분을 이유로 방청을 허락하지 않아 되돌아갔다.
이 날 공청회는 90일로 확대되는 출산휴가의 증가분에 대한 비용부담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쟁점이었다.
한나라당(김정숙 의원 대표발의)은 “출산휴가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유급육아휴직은 고용보험에서”라는 원칙론적인 개정안을 내놓은 데 반해, 지난 달 25일 민주당(한명숙 의원 대표발의)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부실이라는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출산휴가 증가분의 비용을 정부 일반회계와 고용보험 중 실업급여로 반반 부담하는 최종 당정합의안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실업급여 중 50%를 부담해야 하는 기업 측이 모성보호 비용부담이 기존보다 더 늘어난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경영자 측은 이미 기업부담을 증가시키는 모성보호관련 법개정에 대해서 전면유보할 것과 유산·사산휴가와 유급태아검진휴가 등의 신설도 유급생리휴가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논의할 수 있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펴 왔었다.
이날 경영자측 진술인으로 참석한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이사는 “유급육아휴직도 연간 최대 약 3조6천억원의 추가 비용을 기업에게 떠안긴다”며 고용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에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자 측의 또다른 진술인인 엄기웅 대한상공회의소 상무이사는 노사정에서 노동시간을 주 40시간까지 단축하기로 했는데 여성노동자들의 생리휴가제도 폐지하지 않은 채 모성보호만 확대하라는 건 이중부담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게다가 엄 상무이사는 “근로조건이 좋아지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물밀 듯 들어와 우리 근로자들의 실업을 초래한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아 방청인들의 조소를 자아냈다.
이에 한국노총 이정식 대외협력본부장은 “기업들이 경제위기와 기업 부담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업이 주장하는 것만큼 비용부담이 과중하지 않다”면서 여성의 모성보호를 위해 조금의 비용 추가도 감수하지 않으려는 기업측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 날 질의의원으로 나선 한명숙 의원(민주당)도 자체적으로 산출한 모성보호비용을 제시하며 기업측이 실제와 달리 과도한 산출비용을 내세워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경총의 주장과는 달리 출산휴가 비용은 928억원, 유급태아검진휴가 비용은 248억원이고 육아휴직도 유급으로 전환됐을 때 지난 해 육아휴직을 신청한 1970명보다 10배가 더 신청한다고 해도 경총의 3조여원이라는 계산은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한 의원은 “경영자측이 생리휴가제가 본래 목적과는 달리 임금보존의 목적으로 변질됐다며 폐지를 주장하지만, 그럴수록 생리휴가는 열악한 여성 근로자의 임금을 보존해 주는 기능적 측면에서 존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반박했다. 한 의원은 생리휴가제 폐지는 주 40시간 노동시간 단축안이 법으로 확정되고 불평등한 남녀 임금 현실이 개선되어야 비로소 논의될 수 있다는 여성계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피력했다.
전재희 의원(한나라당)도 출산휴가 비용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적 장애로 고용보험에서 한시적으로 부담하는 것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공청회를 방청한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왕인순 정책위원장은 “경영자 측이 계속해서 모성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도외시하고 있고 여성노동력을 여전히 비용절감의 문제로만 보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꼬집었다.
이 날 공청회를 거친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 등 모성보호관련법의 개정안은 정부 예산안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여당에서 연내 통과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경영자측이 ‘제2의 IMF위기설’등으로 호소하고 있어 여론의 향방을 주목해 봐야 할 것 같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