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2000년12월15일 605호
[여성칼럼] 푸대접 받는 여성의 몸
최 윤/서강대학교 교수, 소설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모든 여성에게 우울한 계절이 다가왔다. 날씨도 추운 취업 시즌인 것이다. 게다가 어느 때보다도 경제의 어려움이 살림 골골이 감지되는 때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뒷걸음질치는 것은 문화 수준과 여성에 대한 대우다. 모든 이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먼저 삭제되는 것이 문화와 관계된 투자나 지출이며, 취업의 전장에서 제일 먼저 제외되는 대상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책을 사보려는 사람도, 어떤 장르이건 공연장을 찾는 사람 수도 확연히 줄어들어 소위 확실하게 상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만 겨우 명맥이 유지되어 취향의 편식 현상이 일어나듯이, 취업 전선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여성에 대한 판단 기준에 적용된다. 문화에 대한 것은 그래도 복잡하고 길게 분석하고 따져볼 거리나 있지만 취업과 관련해 여성에 관계된 기준들에는 인정사정 볼것없는 획일화 현상이 널리 상식으로 퍼져 있다. 양쪽 모두 한 사회의 본질적인 실체를 장식적인 것으로 혼동한다는 면에서 속수무책의 불건강을 드러내는 분명한 지표들이다.
여성이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래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남성보다 더 뛰어나야 겨우 비길까말까다. 그런데 여전히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의 한 귀퉁이에 의자를 놓지는 못해도 서서라도 일을 하고 싶은 여성은 무엇보다도 키도 크고 날씬하고 예쁘거나 섹시해야 하고…한마디로 여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성형수술과 가히 엽기적인 다이어트와 키 늘이기 뿐이다.
이 지난한 고행을 실천하든 안 하든 이렇듯 기괴한 현상이 하나의 상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최소한 얼굴에 덧칠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사방에서 지루하게 비슷비슷한 붕어빵 미인들이 눈에 띤다.
벌써 수년 전부터 여성취업 현장에서 보이게 보이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드러나는 몸의 기준의 적용이 성토되고 비판되고 미온적이나마 제재가 가해져도, 경제 한파라는 이름 앞에 정당성을 부여받으면서 더 박차를 가해 여성을 억압한다. 다시 말하면 여성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자기 몸부터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데, 스스로 자신의 몸을 부정해 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불행한 입사식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었어도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이나 관행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이즈음과 같은 취업시즌이 되면 다시 한 번 아찔하게 재확인한다.
가시적인 학대나 비하만이 단죄될 폭력인가. 너무도 오묘하게 적용되거니와 ‘고용자 마음’이라는 무책임한 논리 앞에서 정색을 하고 따지고 들 수도 없는 여성 취업현장의 선별 기준에도 억압이 있고 폭력이 있기에, 그것을 공론화하고 제재할 수 있는 운동이나 연대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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