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 번 글: 장애인의 성, 편견이 '장애' |
| 글쓴이: 해환이 |
글쓴날: 2000년 12월 06일 10시 11분 |
읽은수: 19063 |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MBC의 모 프로그램에서 '황혼기의 사랑'을 그린 것을 보고 노인들에게도 사랑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또 얼마 전, 토요일 밤 12시면 SBS에 사람들의 채널을 고정시켰던 모 프로그램에서 '노년기의 성'을 다루어 노인들에게도 성욕이 존재함을 발설해 젊은 사람들을 당혹케했다.
다시 한번 얼마 전, SBS의 모 방송국에서 장애인 여성의 목숨을 건 출산을 방영했고, 사람들은 당신들과 같은 장애아가 출산되면 어떻게 하느냐, 왜 목숨을 건 무모한 짓을 하느냐며 걱정어린 충고를 했다. 그 장애여성은 자신도 자신들만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항변했다. 더불어 사람들은 장애인들도 성적 욕구가 있고, 성관계를 맺고 살아감에 적잖은 놀라움을 표했다.
사람들은 2`30대의 건강한 신체의 남성이 아니면 사랑에 대한 갈망이나 성적 욕구가 없는 줄 안다. 아니 성을 말함에 있어서 노인이나 장애인 그리고 여성은 자연스럽게 그 대상에서 열외되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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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 2000년 12월 8일 제604호
[여성장애인의 성]
장애인의 성 - 편견이 ‘장애’
일반화장실은 남녀 구분이 되어 있지만 장애인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공용인 경우가 많다. 장애인은 성이 하나인가. 이에 대해 전정옥 장애인 편의시설촉진 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장애인의 성을 부정하거나 믿지 않으려는 사회의 편견을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장애여성은 성적 욕구가 없고 성적 매력도 없으며 성적 기능도 없는 ‘무성’의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특히 여성을 ‘성적 존재’로 혹은 ‘모성 기능’으로만 부각시키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여성은 ‘쓸모 없는’ 인간으로 비하된다.
한편 장애인의 성에 대해 “청각장애인은 성생활이 난잡하다” “정신지체 장애인은 성도착적이다” 식의 편견도 알게 모르게 자리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여성장애인 상담 중 30%가 성폭력 문제라는 보고가 있을 만큼 장애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 최근 장애인에 대한 성교육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부설 아우성상담소에선 작년부터 ‘장애인 아우성 대회’를 열어 “장애인도 성적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장애인아우성 헌장을 발표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선 올해 장애인 성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성표현 방법부터 가르쳐야
◀ 성교육 인형극에 사용될 자료를 만들고 있는 교사들. <자료제공·내일여성센터>
서울 P초등학교 교사는 “수년 전 한 어머니가 정신지체 학생을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는데 갑자기 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얼굴을 부비며 안겼다. 순간 놀라서 아이를 떼어놓았는데 아이 어머니가 몹시 상심한 표정으로 아이를 특수 학교에 보내겠다며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특히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 낯선 사람을 껴안고 공공장소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등의 행동에 대해 주위에선 성도착적이거나 범죄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에 대해 아우성 센터의 김영란 간사는 “장애인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고려하지 않고 또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정신지체장애시설 ‘혜림원’에서 인형극을 이용한 성교육을 실시해 주목받았던 추국화씨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 자기표현이 어렵다는 것 외에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노출행동이나 돌발행동 등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성교육에 인형을 사용하는 것은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시각과 청각, 촉각을 모두 이용해 이해력과 집중력을 높인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신체인형을 통해 생식기의 명칭과 청결 등을 가르친다. 또 길에서 옷을 벗는 등 부적절한 성행동도 직접적으로 비방하기보단 인형을 대리인으로 세워 객관화시켜 보게 해주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
김애란 동천학교 양호교사는 “정신지체 여성에 대해 성교육을 실시할 땐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령 생리대 사용법을 가르칠 때 손을 씻고 생리대 테이프를 떼어내 팬티에 접착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몇 시간에 한 번씩 갈아주는 것이 좋은지, 버릴 때는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장애인 성교육 강사들은 특히 부모와 시설 복지사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인이 되도록 신체의 명칭조차도 모르고 타인과 대화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게 답답하다는 것이다. 추국화씨는 “성표현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기준만 마련해 주면 되는데 왜 계속 제재만 하려하느냐”고 말했다.
함께 하는 사람들 성교육 필요
중복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복지시설 ‘라파엘의 집’(여주)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L씨는 여성 청소년 장애인 2∼3명이 밤에 자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 L씨는 “그땐 장애가 있기 때문에 자위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담당 복지사도 그들을 툭툭 치면서 못하게 했다.
장애인 부모와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한 집담회에서 빠지지 않고 제기되는 얘기가 ‘자위’에 대한 것이다. 나사렛 대학 김종인 교수는 “자위행위는 보통의 행위이지 뇌손상이나 발달의 지진, 신체·정신장애의 원인이나 결과가 아니다”라며 “특히 시설 장애인이 자위행위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안에 대한 탈출구로써 쾌감과 기쁨을 제공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의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보수적인 시각이나 장애인 성에 대한 편견이 장애인의 성을 ‘왜곡시킨다’는 문제점을 시사한다. 특히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우 인지도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지만 몸이 안 따라주기 때문에 겪는 자존감의 상처가 크다.
따라서 장애인의 생활을 비장애인의 그것과 가깝게 하고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적응’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하루의 생활리듬과 연중행사의 생활리듬을 알 수 있게 하고 시설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 비장애인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성 정체성 갖도록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한 성교육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장애인의 80%를 차지하는 지체장애인의 성에 대해선 오히려 무관심하다. 조옥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간사는 “우리 사회 외모중시 풍조는 지체장애 여성을 성적무능력자로 본다”고 비판했다.
지체장애 여성들은 성교육 경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는 “무슨 성적 구실을 하겠나싶어 아예 교육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무방비 상태의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과 사회와 완전히 단절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이 길에서 뽀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개방적이다”라고 생각하지만 대상이 장애인이라면 당장 복지관으로 항의전화가 걸려오는 것이 현실이다. 김정혜 삼성학교 양호교사는 “청각장애 청소년은 성을 거부하거나 환상적으로 보는 등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기 쉽다”고 전한다. 이주희 삼육재활센터 사회복지사는 “지체장애 청소년들은 성에 대한 무지 때문에 이성간 신체접촉만으로도 임신이 될 거라는 식의 불필요한 고민들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재활의학전문가들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성적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삽입성교를 하지 않는다고 성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생식기능이 소실됐다고 성욕이 소실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장애여성공감 박영희 간사는 장애여성에 대한 성교육이 주로 성폭력 예방교육과 결혼·임신·출산에 대한 교육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성에 대한 정체감을 찾기 이전에 사람과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가르치면 장애여성의 성은 ‘아름다운 성’이 아니라 ‘무서운 성’이 된다”는 것이다. 박씨는 또 “성교육의 결론이 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하는 아내·며느리·어머니로서의 성역할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성폭력 예방을 위해 “나는 아기를 낳을 몸이에요”라고 말하도록 가르칠 것이 아니라 인권과 성적 자율권의 존엄성을 인식시켜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여성에 대한 성교육 실상은 우리 사회의 장애여성의 성에 대한 편견과 현재 실시되고 있는 성교육 자체가 갖는 문제점을 함께 드러내 주고 있다. 장애여성의 성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편협하고 획일화된 사회가 장애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성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이제 장애인의 시선을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사회의 시선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이 여울 기자 cognate@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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