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 번 글: 온라인검열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 |
| 글쓴이: 신딸기 |
글쓴날: 2000년 09월 27일 10시 23분 |
읽은수: 13610 |
여성신문
[사이버 창] 온라인검열을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
“검열로는 성차별과 폭력을 줄일 수 없다”
여성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직도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은 어떤게 있을까. ‘자위’‘섹스의 즐거움’ ‘피임과 낙태’ ‘여자들을 위한 에로티카와 포르노’....
‘순결한’ 여성들이라면 꺼내선 안되는 금기어휘들로 여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화적 검열을 동반하는 이런 식의 금기를 깨고 싶어서 21세기 여성들은 사이버세상으로 뛰어든다. 현실적 제약을 넘어 좀더 자유롭게 말하고 싶어서, 좀더 정확한 지식을 갖고 싶어서, 감정적 기쁨과 몸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 인터넷을 찾는다. 이같은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힘든 온라인 환경이지만 현실공간에 비해 훨씬 운신의 폭이 넓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인터넷 내용등급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정보통신확립법의 입법예고에 많은 여성네티즌과 여성단체가 거세게 반발한 건 그나마 지금까지 허용된 운신의 폭도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성관계, 낙태, 피임 등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모든 논의들에 국가가 등급을 부여하고, 동성애자들의 담론도 ‘청소년 유해여부’를 기준으로 일일이‘감시’당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관련 단체와 개인들이 갖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유해매체물에 대한 통신공간에서의 법적 규제를 위해 비영리목적이나 개인이 제공하는 정보서비스까지도 모두 심의대상으로 삼은 이 법안은 시민단체 의견을 수용해 강제등급 부여 조항을 삭제하는 등 ‘일부’ 수정돼기도 했다.
물론 페미니스트들 가운데 인터넷 음란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검열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해악을 끼치는 음란물들을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따져 묻고 싶을 것이고, 이에 대해 검열반대론자들은 “음란물의 기준은 과연 무엇이며, 국가가 일률적으로 그 기준을 결정하고 관철할 자격을 누가 부여했는가”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피임클리닉의 개척자란 이유로 음란죄의 오명을 쓰고 국가에 의해 투옥된 마가렛 생거를 검열비판론자들이 자주 거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92년 결성되어 97년 미국의 통신품위법 위헌판결을 받아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표현의 자유를 위한 페미니스트들’(FFE. http://www.well.com/user/ freedom)은 검열을 반대하는 대표적 페미니스트 그룹이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냐 검열이냐’ 식의 이분법적 논쟁을 지양하고 페미니스트 관점을 유지하면서 검열이 여성들에게 해로운 이유를 논리적으로 전파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들은 여성들의 삶에서 섹슈얼리티를 포함, 모든 영역의 억압조건을 타파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이라고 역설한다.
FFE는 현대 미국에서 가장 검열을 많이 당한 대표적인 작가 쥬디 블룸(공산주의자로 몰려 곤욕을 치른 유명한 동화작가), 친검열론자이자 포르노반대론자인 페미니스트 캐더린 맥키넌의 동료 안드레아 드워킨의 저작들이 캐나다 서점들에서 압수된 아이러니를 언급하면서 검열의 문제점을 든다.
FFE는 성이 그 사회의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가부장제를 구성해온 이들 요소는 여성의 성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둘러싼 여성의 욕망, 이를 대하는 사회의 모순과 적대감, 양면가치, 격렬한 감정 등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박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내용을 반영한 문학·예술작품, 기록 등이 존재하지 못하는 한 여성의 ‘진짜’ 삶은 반쪽짜리로 전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열을 정당화하는 데 가장 큰 명분이 되는 청소년 보호 문제에 대해 FFE는 유해정보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민간 차원의 해결책으로 신기술 개발·보급, 부모들의 관련 학습, 주요 온라인 상업통신망의 차단프로그램 제공 등 다양한 방안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차원에서 FFE는 몇가지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와 생각들을 이해하고 지도하는 방법에 대해 부모들에게 조언해 주고,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오직 섹스나 폭력과 관련된 정보만 만나는 게 아니라는 것, 섹스와 폭력은 반드시 문화예술과 미디어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접하고 있다는 현실을 주지시키는 일이다. 아동포르노 등 형사법에서 규정한 음란물은 애매한 규정으로 문제가 된 통신품위법이 아니라 미 형사법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게 다른 단체들과 함께 통신품위법 반대운동을 펼친 FFE의 논리였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육성을 들어보자.
“전세계로 뻗어있는 네트워크를 규제할 근본책도 없지만, 만약 국가의 인터넷 검열이 현실화된다면 다른 미디어에 미치는 국가의 권력과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권력을 국가에 넘겨주게 될 것이다.”
“여성의 생각과 목소리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완전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역사적으로 검열은 늘 ‘품위’란 이름으로 재생산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정보로부터 여성들을 차단함으로써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이런 방법으로는 결코 성차별과 폭력을 줄일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검열은 여성차별이 심한 국가에서 더 기승을 부린다.”
“검열은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느끼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검열은 역사상의 많은 지식여성을 남성의 이름 아래 숨게 만들어 그녀들을 남성으로 믿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온라인에서 불쾌한 섹스물을 발견했을 경우, 분석하거나 비판하거나 단지 피해버려라.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라.”
(http://well.com/user/freedom/censorship.html)
[이인화 뉴미디어부 부장goodal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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