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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번호 168 글쓴날 2002년 07월 22일 00시 56분
이름 무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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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난다씨와의 대화 -- 생활의 지혜 13. 친구
13. 친구

이난다

친구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내 '사회적 안전망'은 친구들이다. 든든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밖에 나갔을 때 안정감 있어 보이는 것처럼 나는 친구들을 빽으로 가지고 있어서 무서운 걸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아무 것도 없이 집을 나와버렸던 것이나 불투명한 전망을 앞에 두고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다 친구들 덕택이다. 금전과 애정과 여러 끼니들, 이념적 연대감과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는 친구들.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리 다정하고 언제든지 나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받을 수 없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이 자식에게 더 중요한 과제가 되는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로부터 새로운 가족을 발견한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처럼, 애정과 증오를 켜켜이 쌓아가고, 서로의 인생에 개입하여 영향을 주고, 서로에게서 할 일을 찾고 쉴 자리를 찾는다. 별 일이 없으면 아주 긴 시간동안 함께 있으리라는 것이 무엇보다 가족과 닮은 점이다. 우리가 좌절하고 성공하고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동안 한곁같이 지켜봐주는 눈, 그래서 우리가 우리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바로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아닌가.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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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넝이

혼자 사는데 아프면 서럽지 않은가 하고 어느 친구가 묻는다. 나는 그냥 소리 없이 웃는다. 아마도 많이 아프면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가기가 쉽겠지만 만에 하나 그럴 형편이 못 된다 해도 두렵지는 않다. 내가 정말 많이 아프면 누군가 하나는 내 방으로 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 줄 거라 믿으므로, 가족말고도 누군가 내가 청하면 그리 해 줄 사람이 언제든 하나는 있을 거라는 걸 믿으므로. 어느 친구는 급한 일로 야근 중이고, 누구는 출장 중이고, 누구는 자느라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하나쯤은 올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으므로.

때때로 늦은 밤, 지하철 역에서 방까지 골목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곤 한다. 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일자리를 잃고 살아갈 일을 걱정하게 되면 그 때 그대가 나에게 일자리를 구해 주겠어요? 내가 강간당하면 그 때도 나와 함께 경찰서에 가서 침착하게 그렇게 버텨 주겠어요?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어딘가 오래 몸이 불편해도 가끔 나에게 밥을 사고 나와 함께 영화를 보겠어요? 내가 언제 또 다시 한없이 날카로와져도 정신 없이 떠드는 내 입을 막고 내게 밥 한 끼를 해 주겠어요?

그렇게 해 주겠어요?"

친구가 곁에 있다고 해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거나 내 몫의 아픔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내가 마구 흔들릴 때, 너무 흔들려서 흔들리는 것을 내색조차 할 수 없을 때, 놀라지 않고 거기, 평소와 다름없이 무연한 표정으로 나를 만나러 올 것이라고 그저 믿는다.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지난 30년이 헛되지 않다. 언젠가 그 믿음으로 하여 내가 세상사의 그 수많은 예측할 수 없는 浮沈 앞에 조금은 의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아이처럼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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